[이용근 금감위원장 중앙일보 인터뷰]

중앙일보

입력

"정부가 앞장서지도 않겠지만 그렇다고 손놓고 있을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

이용근(李容根)금감위원장은 2차 금융구조조정에 관한 정부의 입장을 이렇게 정리했다.

평소 말을 아끼는 것으로 소문난 李위원장은 지난 18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례적으로 앞으로의 정책구상과 방향을 거침없이 털어놓았다.

"때가 되면 관련부처 협의를 통해 공적자금 추가조성도 논의할 필요가 있다" 거나 "주식 가격제한폭은 시장이 안정되는 하반기께 폐지하는 게 바람직하다" 는 등 민감한 내용들도 거론했다.

李위원장은 지나치리만큼 스스로를 낮추고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다.

올초 금감위원장 취임 일성도 "전임자의 정책기조를 잘 유지하겠다" 로 대신했다.

그는 "좌고우면(左顧右眄)않고 위원장의 본분에만 충실하겠다" 고 취임 후 줄곧 밝혀왔다.

그런 그가 이례적으로 입을 연 것은 총선 후 느슨해진 금융.기업개혁의 고삐를 다시 쥐려면 정부의 야전사령관 역할은 금감위원장이 맡을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李위원장의 정책구상과 방향을 본지 김정수(金廷洙)전문위원이 들어봤다.

- 은행 등 2차 금융구조조정에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시장자율이 원칙이지만 그렇다고 정부가 손놓고 있는 건 아니다. 정부는 법과 제도를 정비해 구조조정 '환경조성' 에 주력할 것이다.

예컨대 현재 관계부처와 마무리 협의 중인 금융지주회사법의 조속한 제정이 그것이다.

금융지주회사법이 통과되면 이를 통해 한빛.조흥 등 국영화한 은행이 먼저 기능별.업무영역별로 특화할 수 있게 된다.

산업.기업.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도 예외는 아니다. 정부가 솔선수범하는데 시장이 안따라올 수 있겠는가.

2차 금융구조조정은 국내 금융산업의 생존이 걸린 문제다.

메가머저(초대형 합병)와 디지털 금융으로 급속히 개편되는 세계 금융시장과 맞설 수 있는 은행시스템을 만들자는 것이다.

이는 불가피하고 시급한 문제다. 국내은행 중 일부는 세계 초대형 은행과 맞설 수 있는 국제적 규모를 갖춰야 한다."

- 최근 '인력감축 없는 유연한 금융구조조정' 을 거론했는데, 구체적인 대안이 있는가.

"인력감축을 겁내고만 있으면 구조조정이 이뤄지기 어렵다. 예컨대 스스로가 퇴직함으로써 조직 발전에 기여하겠다는 동료에게는 일정규모의 스톡옵션을 주는 방식 등이 유연한 인력조정의 한 방편이 될 수 있지 않겠는가."

- 공적자금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얘기가 많다. 예상에 없던 대우 빚까지 금융기관들이 떠안게 돼 추가로 30조원 이상의 공적자금을 조성해야 한다는 민간연구소의 추정치도 나오고 있다.

"추가 공적자금 조성이 필요하다는 데는 정부도 공감하고 있다. 그러나 어디에 언제, 얼마를 지원해야 할 지는 견해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또 공적자금을 조달하는 방법이나 시기도 차이가 날 수 있다. 당장은 이미 투입된 64조원을 자산관리공사.예금보험공사를 통해 회수해 써도 큰 무리가 없다.

모자랄 때가 되기 전에 추가 공적자금 조성여부를 관계부처와 논의하겠다."

- 최근 주식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가격제한폭을 아예 없애는 게 시장기능을 활성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의견도 많다.

"검토 중인 사안이다. 가격제한폭을 없애는 게 바람직하다. 그러나 시장충격이 우려돼 당장은 어렵다. 채권시가평가제 시행 등을 통해 채권시장이 안정되고 주식.채권시장의 자금이동이 원활해지는 하반기 중에 가능할 것이다."

- 공모주 청약물량이 워낙 적어 과열조짐을 빚고 있다. 청약증거금이 너무 많다는 불평도 있다.

"장기적으로는 공모주를 기관투자가에만 배정하고 일반인은 기관투자가를 통해 간접투자를 하는 게 바람직하다.

그러나 투자자의 자금운용에 혼란을 주는 등 시장충격이 우려돼 당장 공모주 배정방식을 바꾸기는 어렵다.

단계적.점진적으로 전환해 나가겠다. 청약증거금은 주간사 회사가 시장수급에 따라 자율결정하므로 감독당국이 조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

- 6월 말까지 주가지수 선물 등의 선물거래소 이전문제를 매듭짓겠다고 했는데.

"현물은 증권거래소에서, 선물은 선물거래소에서 거래되는 현.선분리가 원칙이다. 그러나 주가지수 선물은 증권거래소에서 개발해 성공적인 관리를 맡고 있으므로 가능한 한 두 거래소가 협의해 이관문제를 결정하도록 하겠다.

대신 주가지수 선물 외에 (코스닥 선물을 포함해)다양한 선물상품을 개발해 선물거래소의 활용도를 높여가겠다."

만난 사람〓김정수 전문위원, 정리〓이정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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