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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주 회장이 ‘몰빵 투자’에 제동 건 이유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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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3호 31면

주식시장에서 때 아닌 ‘외상’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발단은 이달 초 시작된 주가 급락이다. 신용융자 거래를 하는 투자자들이 주가가 더 떨어지면 큰 손해를 볼 수 있다는 우려가 증권가 일각에서 제기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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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기야 주식 신용융자를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금융 당국이 나서 조치를 취할 거라는 섣부른 전망도 제기됐다. 그런데 정작 칼을 뽑은 곳은 대형 증권사 중 하나인 미래에셋증권이었다. 미래에셋의 박현주 회장은 지난 16일부터 신용융자 서비스를 전격적으로 중단했다. 나흘 전 언론 인터뷰를 통해 “약세장이 시작됐다. 이런 시기에 빚내서 투자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말한 것을 실행에 옮긴 것이다.

인터넷에선 논란이 거세다. “겁 없이 빚을 내는 개인투자자들에게 경종을 울렸다”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주가 하락 땐 가만히 있다가 왜 이제야 막느냐” “언제부터 증권사가 내 빚까지 걱정해 줬느냐”는 불만이 터져 나온다.

이런 논란을 어떻게 봐야 할까. 먼저 박 회장이 ‘몰빵 투자’에 제동을 건 이유가 고객·투자자 보호를 위해서라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 신용융자 이자는 증권사의 주요 수익원 중 하나다. 그걸 포기하면서까지 신용융자를 막은 건 1980년대 이후 증시 경험을 통해 ‘몰빵 투자’의 끝을 잘 알기 때문이리라. IMF 금융위기 당시 빚을 내서 주식을 샀다가 깡통계좌를 찬 수많은 개인투자자가 그런 사례다. 그런 만큼 박 회장이 투자자들에게 빚 내서 투자하는 게 위험하다는 충고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전문가로서 약세장이라는 전망을 내놓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박 회장의 결정이 일종의 월권으로 비칠 수 있다는 생각은 지울 수 없다. 약세장이건 강세장이건 투자금액을 결정하는 건 투자자의 몫이다. 빚을 내서 투자하건, 현금으로 투자하건 자금 조달방법 역시 투자자의 선택이다. 아무리 경험이 많고 예측력이 날카로운 전문가일망정 그것까지 통제할 수는 없다. 미국·유럽 재정위기가 지금처럼 확산될 것 같았으면 좀 더 빨리 경고의 목소리를 냈어야 했다.

권리를 막았으면 책임도 져야 한다. 만약 박 회장의 약세장 예측과는 달리 주가가 오른다면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미래에셋 고객들이 “나는 주가가 오를 거라 생각했는데 신용융자가 막혀 돈을 못 벌었다”고 항의한다면 난감하지 않을까. 물론 박 회장으로선 ‘그런 고객들은 다른 증권사로 가면 된다’고 답할지도 모른다.

박 회장은 국내 최대의 금융투자그룹을 이끄는 수장인 동시에 주식시장에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전문가다. ‘박현주’란 이름의 무게를 보고 많은 투자자가 투자 방향을 결정한다. 박 회장과 같은 최고 수준의 전문가 전망은 다른 이보다 맞힐 확률이 높다. 개미투자자들이 전문가들의 결정을 믿고 따르는 이유다.

하지만 주식시장의 흐름을 100% 맞힐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이번에 박 회장이 내린 조치는 ‘내 판단이 맞으니 나를 따르라’는 식으로 들린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은 최근 뱅크오브아메리카(BOA)에 50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그 이유는 뭘까. 박 회장에게 조언하되 강요하지 않는 모습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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