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세 한마디에 … 은행들 “실수요자는 대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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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세 금감원장

가계대출을 중단했던 은행들이 한발 물러섰다. 대출 중단으로 인한 파문이 커지자 각 은행들이 “실수요자 대출은 열려 있다”며 진화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실수요’임이 입증되지 않는 대출을 중단한다는 기본 방침은 바뀌지 않았다. 농협중앙회는 22일부터 전세자금대출과 고정금리형 주택담보대출을 재개한다고 19일 밝혔다. 주택담보대출을 포함한 대부분 가계대출을 중단한다던 조치를 이틀 만에 일부 수정한 것이다. 농협 관계자는 “17일 이후에도 긴급한 실수요자 대출은 해왔고, 22일부터는 영업점 전결로 취급할 수 있는 대출 범위를 더 늘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리은행도 17일 전 지점에 내렸던 대출심사 강화 관련 공문을 18일 급히 회수했다. 이 은행 개인심사부 관계자는 “정부 정책에 따라 대출심사를 강화하려고 했지만 서민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내부 의견에 따라 공문 자체를 거둬들였다”고 설명했다. 신한은행은 고정금리 주택대출이나 서민대출은 여전히 취급하고 있다고 밝혔다.

 은행들이 다소 후퇴하는 모습을 보인 건 금융당국의 경고 때문이다. 권혁세 금융감독원장은 19일 “대출을 전면 중단해서는 안 되고, 꼭 필요한 사람에겐 대출을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세밀한 내부기준을 마련해 우선순위를 놓고 대출을 관리해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대출을 갑자기 닫아버리는 식이 아니라, 심사를 좀 더 꼼꼼히 하는 방식으로 대출 규모를 조절하라는 뜻이다. 신제윤 금융위원회 부위원장도 이날 김태영 농협 신용대표와 서진원 신한은행장, 김양진 우리은행 수석부행장을 여의도 금융위로 불러들였다. 이 자리에서 신 부위원장은 “가계대출 증가율은 관리해야 하지만 불요불급한 대출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은행들은 순순히 말을 듣고 있지 않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이미 각 은행의 이달 대출 증가율이 당국이 제시한 한 달간 목표치(0.6%)를 넘어섰거나 근접했다”며 “긴급자금 대출만 해도 가이드라인을 위반할 상황이어서 통상적인 가계대출은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농협은 이달 들어 가계대출이 전월보다 이미 0.84% 늘었다. 신한(0.57%), 우리(0.52%), 하나은행(0.47%)도 여유가 별로 없다.

 이에 따라 농협은 이달 말까지 변동금리형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은 계속 중단하기로 했다. 신한은행도 변동금리 주택담보대출과 직장인 신용대출 등을 계속 막아두고 있다. 우리은행은 대출자의 상환 용도를 면밀히 검토해 주식투자용 신용대출 등을 제한하기로 했다.

한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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