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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세 낼 돈 없던 마흔 살 로봇광, 안드로이드 연합군 사령관 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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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지난 4월 구글 창업자 래리 페이지(Larry Page·38)는 최고경영자(CEO)에 취임하자마자 승진 인사를 냈다. 구글에 합류한 지 6년밖에 안 된 앤디 루빈(Andy Rubin·48·사진)을 18명의 부사장 중 한 명으로 발탁했다. 그로부터 딱 4개월 만에 루빈은 ‘대형사고’를 쳤다. 모토로라의 휴대전화 사업부를 125억 달러(약 13조4000억원)에 사들이며 세계 통신시장의 판도를 바꿔놓았다. 이번 인수합병 의 뒤에 루빈 부사장이 있었다고 월스트리트 저널(WSJ)이 1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그는 로봇광이었다. 2003년 설립한 ‘안드로이드’라는 회사 이름도 인간을 빼닮은 로봇이란 단어에서 따왔다. 당시만 해도 그는 월세를 낼 돈이 없어 친구에게 손을 벌려야 하는 신세였다. 이듬해 ‘안드로이드’라는 스마트폰 운영체제(OS) 구상을 들고 삼성전자를 찾아갔다가 퇴짜를 맞고 나온 일화도 있다. 그러나 2005년 그에겐 인생 역전의 기회가 찾아왔다. 구글의 창업자 페이지를 만난 것이다.

 당시 페이지는 루빈이 ‘데인저’라는 벤처회사를 운영할 때 제작에 참여한 ‘사이드킥’이란 전화에 열광했다. 사이드킥을 만든 사람이 도대체 누굴까 궁금해 했던 페이지에게 루빈은 안드로이드 OS 구상을 설명했다. 마침 페이지는 고민이 있었다. 구글의 검색엔진과 맵을 휴대전화에 얹어야겠는데 통신사업자의 횡포가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이를 뚫을 묘안이 없을까 고심하던 페이지와 루빈은 의기투합했다. 그해 구글은 안드로이드를 인수했다.

 2년 동안 루빈은 구글의 비밀 프로젝트에 몰두했다. 당시만 해도 스마트폰 OS 시장은 마이크로소프트(MS)가 주름잡고 있었다. MS는 자사 OS를 쓰는 휴대전화 사업자에게 윈도를 채택한 PC 제조업체에 하듯 비용을 물렸다. 이와 달리 루빈은 처음부터 OS코드를 휴대전화 제조업체에 공개할 생각이었다. 대신 안드로이드 OS를 쓰는 휴대전화가 많아지면 거기에 광고를 얹어 투자비용을 뽑아내자는 계산이었다.

 구글은 OS와 콘텐트만 제공하고 스마트폰은 휴대전화 제조회사가 만들며 여기에 통신사업자가 결합하는 ‘안드로이드 연합군’ 구상도 이때 탄생했다. 2007년 중반 루빈은 이 구상을 들고 LG전자를 찾아갔으나 거절당했다. 급기야 그해 6월 애플이 ‘아이폰’이란 스마트폰을 내놓자 루빈은 궁지에 몰렸다. 다급해진 루빈은 당시로선 지명도가 떨어졌던 대만의 HTC를 찾아갔다. 그 결과 탄생한 게 첫 안드로이드폰 ‘G1’이었다.

 한데 아이폰의 등장은 전화위복이 됐다. 세계 휴대전화 시장이 급격하게 스마트폰 중심으로 재편된 것이다. 애플의 돌풍에 놀란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물론 노키아도 안드로이드 연합군 진영에 합류했다. 2008년 안드로이드 본부가 있었던 구글 캠퍼스 44동은 전 세계 통신시장 CEO로 북적댔다. 마침내 2009년 여름 미국 통신시장의 1인자 버라이존의 CEO 로웰 맥아담이 44동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안드로이드는 애플과 노키아를 제치고 세계 1위 스마트폰 OS 자리에 올랐다.

 이번 모토로라 휴대전화 사업 인수로 구글은 콘텐트 공급에서 휴대전화 제조까지 완결하는 통신업계의 공룡으로 부상했다. 루빈이 앞으로 어떤 그림을 그릴지에 세계 통신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뉴욕=정경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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