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신 아버님 카드 연체이자 내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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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회사원 강모(45)씨는 최근 신한카드로부터 황당한 전화를 받았다. “지난 6월 사망한 부친의 카드대금 7만여원이 그달 말부터 밀려있는데 연체이자를 붙여 대납하라”는 거였다.

 강씨는 금융감독원의 상속인 통합조회를 통해 갚아야 할 아버지 명의의 신용카드 대금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정확한 금액이나 결제방법은 안내를 받지 못했다. 강씨는 당연히 ‘계좌에서 자동으로 결제되거나, 그러지 않을 경우 카드사가 전화를 해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느닷없이 연체이자까지 내라는 독촉전화를 받은 것이다. 강씨는 “상속인 조회를 신청할 때 전화번호와 e-메일 주소를 적어줬는데 한 달 반 동안 연락 한 번 없었다”며 “금액이 많고 적음을 떠나 고인을 우롱하는 것 같아 화가 난다”고 말했다.

 카드사들이 고인의 카드대금까지 돈벌이 수단으로 삼고 있다. 사망자의 카드대금이 연체되는 걸 그냥 놔두다 뒤늦게 유족에게 알리고 연체이자까지 받아 챙기는 것이다. 상중에 경황이 없는 유족은 영문도 모르고 당하기 십상이다.

 문제는 사망자의 카드대금이 연체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현재 법규에선 사망자의 유족이 금융감독원에 상속인 일괄조회를 하면 그 즉시 고인 명의의 모든 금융계좌가 동결된다. 카드와 연결된 은행계좌도 막힌다. 카드사들이 고인의 사망 직전 한두 달 이용대금을 빼내갈 수 없는 것이다. 카드사들은 이런 상황을 곧바로 알게 된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유족이 상속인 일괄조회를 신청하면 고객의 사망 사실이 전 금융사에 자동으로 통보된다”며 “해당 계좌는 ‘사망자 계좌’로 분류하게끔 돼 있다”고 말했다.

 카드회사들은 ‘사망자 계좌’인 걸 알면서도 결제일이 지나면 꼬박꼬박 연체이자를 가산한다. 그러면서 유족에겐 안내 문자나 전화 한 통 하지 않는다. 한두 달 뒤에야 유족에게 ‘고인의 카드부채를 갚으라’고 통보하면 그만이다. 한 카드사 콜센터 관계자는 “고객이 황당해하며 강하게 항의할 경우 ‘오늘까지 내면 연체이자를 깎아주겠다’는 식으로 납부를 유도한다”고 털어놨다. 고객이 군말 없이 내면 연체이자까지 챙기고, 아니면 원금이라도 받으면 된다는 식이다.

 신한카드 관계자는 “전산시스템상으로 고인 명의의 밀린 대금을 일반 연체채권과 똑같이 취급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라고 해명했다. “연체채권은 대개 연체 한 달이 지나 콜센터에 넘기고 상담원을 지정하는데 이러다 보니 유족에게 뒤늦게 결제를 요구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이런 시스템은 다른 카드사들도 마찬가지다. 삼성카드 등 일부 카드사는 “유족의 심정을 고려해 갚아야 될 카드대금이 있다는 걸 일부러 장례절차가 끝난 뒤 천천히 알린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결제일이 지나자마자 연체이자를 물리는 건 마찬가지다.

이장혁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사망 사실과 상속인의 연락처, 결제금액을 모두 알고 있는 카드사가 연체 이전에 유족에게 사실을 알리고 대납 절차를 알려줘야 하는 건 상식”이라며 “유족이 늦게 알수록 연체이자가 많아져 이익이라고 여기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사망자는 28만4000명에 달한다. 경제활동인구 1인당 평균 카드 이용액은 연간 2003만원, 월 167만원이다. 사망자 대부분이 경제활동을 그만둔 고령자라는 점을 감안해 평균의 25%인 월 40만원만 연체됐다고 가정해도 1136억원에 이른다. 평균 한 달간 이 금액이 연체돼 15%의 추가금리가 가산된다면 카드사는 고인의 이용대금을 연체시켜 약 14억2000만원의 이익을 얻게 된다.

나현철 기자

◆상속인 통합조회=고인의 금융거래 상황을 유족이 쉽게 파악할 수 있게 금융감독원이 운영 중인 시스템이다. 유족이 신청하면 금감원이 은행연합회와 금융투자협회·생명보험협회·손해보험협회·여신금융협회·저축은행중앙회·새마을금고연합회·우체국 등 전 금융회사에 일괄조회를 요구해 그 결과를 7~15일 내에 알려준다. 다만 계좌의 존재 여부만 통보한다. 잔액 등 상세 내역은 해당 회사에 직접 신청해야 알 수 있다. 올 상반기 이용자는 2만5000여 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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