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저축은행 비리, 이럴 바엔 특검 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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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나라를 뒤흔든 저축은행 사태를 지켜보는 국민의 답답함과 분노가 커지고 있다. 현 정부에서 드러난 최대의 부정부패 사건이지만 그 검은 실체가 무엇 하나 제대로 규명되는 게 없기 때문이다. 국회가 저축은행 국정조사에 나섰지만 유명무실하게 끝날 거란 우려가 만만찮다. 검찰 수사도 지지부진해 국민 기대에 못 미치기는 마찬가지다. 이러다간 자칫 국회와 검찰이 저축은행 비리를 흐지부지 덮는 꼴이 될 공산이 크다. 국민의 공분을 더 키울 게 불 보듯 뻔해 걱정이 앞선다.

 부산저축은행 사태는 단순히 대주주·경영진의 도덕적 해이와 사금고화 문제만이 아니다. 서민과 중소기업의 등을 친 저축은행의 가증스러운 비리 뒤에는 한통속이 되다시피 한 금융위·금감원 등 감독기관과 청탁·로비에 놀아난 정치인·관료가 얽혀 있다. 따라서 밝혀져야 할 게 한둘이 아니다. 100여 개의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해 고객 예금의 절반에 가까운 5조원을 불법 대출받는 게 어떻게 가능했는지, 대출금의 사용처는 어디이고 비자금 조성에 활용되지는 않았는지, 영업정지 당시 부당 예금 인출 실상은 무엇인지 등 갖가지 의혹에 대한 명백한 진상이 낱낱이 드러나야 한다.

 국회 저축은행 국정조사특별위원회는 그제부터 국무총리실·금융위·금감원 등을 대상으로 기관보고를 받는 등 활동을 본격화했다. 그러나 국정조사가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청문회 없는 국정조사 상황으로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특위가 증인 채택을 놓고 대립하느라 활동 시한을 절반 가까이 허비하고 늑장 가동에 들어갔지만 증인 선정 작업은 여전히 난항을 겪고 있다. 증인 선정 문제가 금명간 타결된다고 하더라도 국정조사 기한이 12일이어서 청문회가 제대로 이뤄질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국회가 정말로 국정조사를 통해 저축은행 사태의 실체를 파헤치려는 의지가 있는 건지부터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검찰도 지난 3월부터 부산저축은행의 정·관계 로비 의혹과 예금 부당 인출에 대해 수사를 벌여왔지만 이렇다 할 실적이 없는 상태다. 부산저축은행에서 겨우 85억여원만 불법 특혜 인출됐다는 중간 수사결과 발표가 있었을 뿐이다. 오죽하면 이명박 대통령까지 나서 검찰의 지지부진한 수사 상황을 질타했겠는가. 이 대통령은 엊그제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캐나다로 도피한 부산저축은행 로비스트 박태규씨를 거론하며 “그를 못 데려오는 거냐, 안 데려오는 거냐”고 검찰에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고 한다. 검찰은 수사 초기 “수사로 말하겠다”며 의욕을 보였지만 김준규 검찰총장이 물러난 이후 지리멸렬한 양상이다.

 국회 국정조사나 검찰 수사로 저축은행 비리를 규명하지 못하면 남는 방법은 하나다. 특검을 도입하는 수순으로 가는 것이다. 검찰은 그런 최악의 상황에 맞닥뜨리기 전에 전열을 가다듬고 저축은행 비리를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 저축은행 사태를 어물쩍 덮어서는 제대로 된 사회도 아니다. 철저히 원인을 규명하고 비리를 척결해야 재발을 막을 수 있다. 국민이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