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깅그리치 교훈’… 미국 디폴트 막은 매코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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깅그리치

협상 초기만 해도 미치 매코넬(Mitch McConnell·69)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는 주연이 아니었다. 상원은 민주당이 장악한 만큼 그는 해리 리드 민주당 원내대표의 그늘에 가려 있었다. 야당대표는 공화당이 장악한 하원의 존 베이너(John Boehner) 의장이었다.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대통령과 베이너가 백악관에서 담판을 벌일 때도 그는 ‘플랜B(협상이 깨질 때를 대비한 비상책)’를 마련하는 역할에 머물렀다.

 그런데 미국 정부의 디폴트(채무 불이행) 시한을 코앞에 두고 벌어진 마지막 협상에서 매코넬이 돌연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그는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새벽 미국 CNN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협상 타결이 임박했다”는 소식을 처음 전했다.

켄터키주 5선 상원의원인 그를 워싱턴 포스트(WP)를 비롯한 미국언론은 “이번 협상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낸 스타”라고 평가했다. 애초 협상은 베이너가 주도했다. 그는 지난해 말 부자 감세 법안 연장과 지난 4월 2011회계연도 예산안 협상 때 오바마의 양보를 이끌어내며 야당대표로서 입지를 굳히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당내 강경파 티파티(Tea Party)의 힘을 얕잡아보는 실수를 저질렀다. 28일 하원에선 자신의 법안을 처리하려다 티파티 반대에 부딪혀 표결을 하루 연기하는 굴욕을 겪기도 했다. 협상 타결은커녕 티파티에 휘둘리기만 한 셈이다.

미국 정부를 디폴트 위기에서 구해낸 미치 매코넬(앞줄 오른쪽)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동료 의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워싱턴의 상원 복도를 걸어가고 있다. [워싱턴 로이터=뉴시스]

 협상이 벼랑 끝에 다다랐을 때 산전수전을 겪은 매코넬의 노련함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는 20년 동안 상원을 지키며 합리적이면서도 정직하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그 덕에 그는 라이벌 조 바이든 부통령을 통해 오바마와의 대화 채널을 살려낼 수 있었다. 2008년 금융위기 극복을 위한 구제금융 법안 마련 때 호흡을 맞춘 리드 원내대표도 합세했다. 30일 밤부터 시작된 10시간에 걸친 마라톤 회담 끝에 극적인 타협이 이루어졌다.

 오바마로선 2012년 대통령선거 때까지 정부 디폴트 위기로 다시 발목 잡히지 않는 게 가장 중요했다. 공화당엔 부자 증세 폐기와 협상을 통한 추가 재정지출 삭감이라는 ‘당근’이 제시됐다. 때마침 미국 경제가 올 2분기에 예상치보다 훨씬 저조한 1.3% 성장률을 기록했다는 소식도 양측의 타협을 압박했다. 1995년 뉴트 깅그리치 전 하원의장이 주도한 ‘예산전쟁의 악몽’도 공화당의 양보를 이끌어냈다. 공화당은 94년 중간선거에서 압승한 뒤 95년 정부 폐쇄를 불사하며 빌 클린턴(Bill Clinton) 대통령에게 예산을 삭감하라고 압박했다. 그러나 정부 폐쇄의 역풍으로 공화당은 이듬해 대통령선거에서 클린턴에게 진 데 이어 98년 중간선거에서도 많은 의석을 잃었다. 이를 되풀이하지 말자는 ‘깅그리치 학습효과’에 대해 매코넬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는 얘기다.

 협상 타결로 미국 정부는 디폴트를 면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미국은 이번 정쟁으로 씻기 어려운 상처를 입었다. ‘미국 정부도 디폴트를 낼 수 있다’는 가설이 사실로 입증됐기 때문이다.

빚더미에 올라 앉은 미국의 치부를 세계에 낱낱이 드러낸 셈이다. 당장은 답이 없지만 앞으로 달러와 미 국채를 대체하는 대안을 찾으려는 움직임이 더 구체화하고 활발해질 전망이다. 특히 1조2000억 달러에 달하는 미 국채를 안고 있는 중국은 팔짱만 끼고 있지 않을 공산이 크다. 정부를 운영해야 하는 현직 대통령과 여당으로선 ‘정부 부채 한도’가 앞으로도 두고두고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부자도 부담을 나눠 져야 한다”는 입장을 고집했던 오바마가 결국 세금인상안을 포기한 것도 ‘미국 정부 디폴트’라는 리스크를 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뉴욕=정경민 특파원

◆깅그리치 학습효과=1994년 야당대표에 오른 뉴트 깅그리치는 과감한 정부지출 삭감을 골자로 한 ‘미국과의 계약’이란 공약을 앞세워 중간선거에서 압승했다. 여세를 몰아 그는 빌 클린턴 정부의 예산안 통과를 저지, 정부가 폐쇄되는 초유의 사태를 맞게 했다. 클린턴은 이를 역이용해 96년 대선, 98년 중간선거에서 승리했다. 깅그리치는 그 책임을 지고 하원의장직을 사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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