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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엔 술자리, 새벽엔 조찬...한국은 미스터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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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9호 14면

내가 한국을 좋아하는 이유는 한국을 알면 알수록 새로운 게 나온다는 점이다. 내가 한국의 관습과 의식을 이해했다고 느끼기 시작한 순간, 다른 미스터리가 나타나 궁금증은 계속된다. 그중 하나가 한국인들의 ‘조찬 예찬’이다. 조찬 모임은 대부분 오전 6시30분부터 오전 7시 사이에 열리고, 늦잠을 자는 이들을 고려한 조찬도 오전 8시면 열린다. 한국의 교통 상황을 감안하면 참석자들은 새벽 5시∼6시30분에 잠을 깨야 한다는 얘기다. 내가 보기에 한국 성인 남성의 절반 정도는 각종 조찬 모임에 참석하는 것 같다. 밤 늦게 술자리를 가지는 사람들이 새벽부터 조찬 모임에 나서는 걸 보면,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지 나로선 정말 궁금한 미스터리다.

외국인이 본 한국 조찬 문화

한국에선 아침마다 무수한 로터리클럽 회원들이 호텔을 채운다. 인구로 따져보면 한국은 전 세계 어느 나라보다 로터리클럽 지부가 많을 것이다. 대학마다 거의 모든 학과에 졸업생 모임이 있다. 대부분의 대학은 여기에다 최고경영자들을 위한 모임까지 만들었고, 이런 모임들은 대체로 새벽 골프처럼 참석자들이 더 친밀하게 교류하는 ‘세부 모임’으로 가지를 친다. 기업에선 연수 모임과 교육 세미나를 열고, 최신 트렌드와 정책을 따라잡기 위해 수없이 많은 포럼이 결성되고 있다. 나 역시 환경·금융·관광에서 여성 인권에 이르기까지 대여섯 개의 포럼에 몸담고 있다.

주한 미국상공회의소나 전경련 모임, 전문직종별 모임이나 여성 CEO 조찬처럼 재계의 각종 모임도 빠뜨릴 수 없다. 한국인은 직장 내에서건 직장 바깥에서건 모임을 좋아한다. 언젠가 미국 친구에게 내가 정례적으로 참석하는 월례 모임들을 얘기해 줬더니만 그 친구의 첫 반응은 “그럼 너는 언제 자느냐”였다(나는 주로 일요일에 잠을 몰아 잔다).

이런 모임들이 경제에 활력소가 되는 것은 물론이다. 조찬 모임에 참석해 아침식사를 하고 출근하느라 돈을 쓴다. 조찬 모임이 없었다면 사장됐을 소비를 촉진하는 효과가 있다. 한국에선 강연 시장도 커졌다. 재미와 통찰력을 갖춘 강연자들에겐 부가 수입을 얻을 수 있는 시장이다. 또 우리가 집 바깥에 오래 머물러 있을수록-한국에선 진짜 집 바깥에서 오래 머문다- 한국의 원화 지폐는 더 잘 돌 것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무엇보다도 이런 모임들은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누가 연장자인지 확인하고, 어떤 사업이 잘나가는지를 배우는 데 효과적이다. 정치권의 얘깃거리와 경제 상황, 정부 정책을 파악하게 해주는 기능도 있다. 솔직히 말하면 가끔씩 조찬 모임에서 아주 괜찮은 정보를 얻는다고 귀띔해 주고 싶다. 한국에서 대규모 조찬 모임이 열리고 있는 이유는 한국인들의 놀라운 교육열, 자주 얼굴을 보여주고 만나야 한다는 한국인의 인간적인 정서 때문임이 분명하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더 곁들여 이따금씩 미국이나 유럽으로 건너가서 늦잠을 자보는 것도 한국인들에겐 괜찮을 것이라고 말한다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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