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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택 화백의 세계건축문화재 펜화 기행] 창덕궁 후원 소요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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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종이에 먹펜, 25×35㎝, 2011


이번 호에 인도 자이푸르의 ‘하와마할’을 보여 드리려 했습니다. ‘바람의 궁전’이라는 하와마할은 창문만 176개인데 돌로 만든 창마다 구멍이 수백 개여서 연필로 초를 잡는 데 일주일이 넘게 걸렸습니다. 펜으로 구멍 하나하나를 그리고 있노라니 머리에 쥐가 나더군요. 도저히 참기 어려워서 카메라를 들고 창덕궁으로 달려가 후원 소요정(逍遙亭)에서 마음을 추슬렀습니다.

 외국 건축 문화재를 그리면서 크고, 세밀하고, 화려한 건물이 인간을 지배하기 위한 수단인 것을 알았습니다. 인공적인 것이 많을수록 사람의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한옥이 왜 좋은지 밖에 나가니 더 잘 보였습니다. 외국 사람들이 한옥에 반하는 이유로 ‘마음의 편안함’을 듭니다.

 소요정은 옥류천의 폭포를 감상하기 위한 정자입니다. 뒷산에서 흘러내려온 물이 ‘위이암(逶迤巖)’이라는 바위 앞에서 둥글게 흘러 폭포가 됩니다. 분명 사람의 솜씨인데 너무나 자연스럽습니다. 바위에 새긴 시에 ‘비류삼백척(飛流三百尺)’이란 글이 보입니다. 5척 정도의 폭포를 보며 장대한 폭포를 꿈꾼 것입니다. 창덕궁 후원은 인공적인 요소를 최소화했기 때문에 세계적인 정원으로 손꼽힙니다.

 인조 14년(1636)에 세운 소요정은 단출한 형태입니다. 옥류천이 주인공이기 때문입니다. 위이암 위로 초가지붕을 얹은 청의정이 벼가 자라는 논 속에 서 있고, 오른쪽에 태극정이 있어 ‘상림삼정(上林三亭)’이라 합니다. 울창한 숲에 둘러싸여 있어 창덕궁 후원에서 가장 은밀한 곳입니다. 임금과 신하가 둘러앉아 잔을 들고 시를 읊던 멋진 곳입니다.

김영택 화백 penwhag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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