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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세 아들 집 한채 있다고 92세 노인 지원 끊길 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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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광주광역시 김모(64·여)씨는 뇌졸중으로 신체 일부가 마비된 3급 장애인이다. 소득이 없어 정부에서 생계보조금을 받는 기초생활보장수급자(受給者:옛 생활보호대상자)다. 김씨는 지난달 주민센터에서 “아들(42)이 돈과 재산(2억원가량)이 많아 지원 대상에서 탈락할 예정”이라는 통보를 받았다. 김씨는 “25년 전 이혼한 뒤 연락을 끊고 살아 아들이 어디에 사는지도 모른다”며 “이제 와서 연락을 어떻게 하느냐. 병든 몸으로 어쩌라는 것인지…”라며 한숨을 쉬었다.

 기초수급자가 되려면 자식이나 부모의 부양 능력이 없거나 적어야 한다. 보건복지부가 지난달부터 기초수급자 155만 명의 부양의무자 소득·재산을 샅샅이 검증하고 있다. 여기에서 소득·재산이 지원 대상 기준 초과로 나오면 지원이 끊기거나 생계보조금이 깎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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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검증 과정에서 부양의무 규정이 현실에 맞지 않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광주 김씨처럼 10~20년 연락을 끊고 살던 자식에게 부양의무를 지우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서울 서대문구 김학식(63·지체장애 5급)씨는 지난달 생계보조금 7만2720원이 깎였다. 사위의 소득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김씨는 1998년 가족과 헤어졌다. 김씨는 “당시 딸이 고교 1학년이었고 지금의 사위는 얼굴도 모른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관계가 사실상 단절된 사실이 입증되면 지원 자격을 인정한다. 탈락예정자 10만3000명 중 3574명은 구제했지만 4만 명은 탈락이 불가피하다.

 노인이 된 아들에게 부모 부양의무를 지우기도 한다.

경기도 고양시 임대아파트에 사는 이모(92)씨는 아들(69) 때문에 수급자 탈락 위기에 있다. 아들의 재산(2억4000만원짜리 아파트)이 지원 대상 잣대를 초과해서다. 아들도 칠순을 바라보는 노인이라 손자한테 신세를 지고 있다.

 부모가 자식을 돌보는 일은 당연하다. 하지만 60대 부모가 40대 자식까지 먹여 살려야 할까. 기초수급자인 박정혁(42)·지영(44·여)씨 부부는 박씨의 아버지(65) 소득이 드러나면서 생계보조금이 30만원 깎였다. 아버지가 부양의무자 규정에 걸린 것이다. 박씨는 뇌병변(뇌성마비) 1급, 지씨는 지체 1급 장애인이다. 지씨는 “시아버지가 신용 회복을 위해 월 180만원의 소득신고를 하면서 이런 일이 생겼다”면서 “30만원은 한 달 집세인데…”라고 말했다.

 실직수당(실업급여)·장애급여(산재)를 부양의무자 소득에 포함하는 것도 비판을 받고 있다. 중증뇌성마비 장애인(선천성 뇌병변 1급)인 윤국진(36)씨는 올 2월 기초수급자가 돼 매달 생계보조금 43만원을 받다가 지난달 16만원이 깎였다. 강원도 태백의 터널공사장에서 목수 일을 하던 아버지(58)가 실직하면서 5개월간 월 120만원의 실업급여를 받았기 때문이다. 실업급여는 구직활동에 필요한 생계비인데 수급자 부양비로 간주한 것이다. 아버지 윤씨는 “고시원을 전전하면서 사는데 아들을 도울 수도 없어 답답하다”고 했다.

 복지부 권덕철 복지정책관은 “부양의무 규정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있어 종합대책을 강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성식 선임기자, 박유미 기자, 윤지원 인턴기자(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부양의무자=기초수급자의 1촌(부자 관계) 이내 혈족과 그 배우자. 부양의무자 4인 가구의 월소득이 256만원이 넘으면 수급자에서 탈락하고 188만~256만원이면 생계비가 깎인다. 재산이 대도시 기준 1억5286만원(중소도시는 1억2836만원)이 넘어도 탈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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