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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그을린 사랑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2면

“영화가 끝난 후 자리에서 한동안 일어설 수가 없었다” “망치로 뒷통수를 치는 것 같았다”. 영화 ‘그을린 사랑’에 대한 관객 반응이다. 영화 맨 뒷부분, 베일이 벗겨지는 순간 헉, 하는 탄성이 절로 터져 나온다.

 주인공 나왈(루브나 아자발)의 삶은 비극 자체다. 어찌 한 여성에게 저 모든 불운이 다 일어날까 싶을 정도다. 나왈의 애인은 이슬람교와 기독교의 내전 중에 총살당한다. 나이 어린 나왈은 아들을 낳자마자 고아원에 보내고 친척 집에서 새 출발을 한다. 학교에 다니던 나왈은 아들이 들어간 고아원이 폭격 당해 폐허가 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모든 비극을 초래한 당사자를 찾아내 살해한 그는 15년간 옥살이를 하며 거듭되는 성폭행이라는 뼈아픈 대가를 치른다.

 ‘그을린 사랑’은 나왈이 감옥에서 낳은 쌍둥이 딸 잔느(멜리사 데소르모-풀랭)와 아들 시몽(막심 고데트)이 어머니의 과거를 추적하는 형식이다. 어머니의 유언은 쌍둥이가 죽은 줄 알고 있던 아버지, 있는 줄도 몰랐던 형제를 찾으라는 것. 남매는 어머니의 고향과 학교 등을 찾아 다니다 차마 감당하기 어려운 비밀과 마주치게 된다. “‘1+1=2’여야 하는데 알고 보니 ‘1+1=1’이었다”는 시몽의 말에 잔느가 절규하는 장면은 힘든 운명에 맞닥뜨린 고대 그리스 비극의 주인공을 연상시킨다. 광기 어린 역사가 개인을 어떻게 파괴하는지에 대한 집요한 묘사, 진정한 용서와 화해란 무엇인지를 파고드는 주제의식이 놀라울 따름이다.

 비밀을 알게 된 남매가 자신의 눈을 찌르는 그리스 비극의 파국에 이르는 게 아니라 “함께 산다는 건 멋진 일”이라는 어머니의 유언을 받아들이는 결론은 압도적이다. 분노의 순환고리를 끊어내는 건 용기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다는 것을 빼어난 예술성으로 보여준 캐나다 출신 드니 빌뇌브 감독이 궁금해진다. 영화 배경은 레바논 내전이지만, 등장하는 지명은 모두 가상이다. 서울 광화문씨네큐브, CGV압구정·대학로·상암·강변·KT&G상상마당, 부산 국도&가람예술관 등에서 상영 중. 청소년 관람불가.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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