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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lf&] “타수 줄이려면 백전백승보다 백전불태 알아야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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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7면

손자병법 등 고전을 현대인의 시각에 맞게 재해석해 인기를 끌고 있는 박재희 교수가 LED전구가 장착된 아이언 클럽으로 멋진 스윙을 하고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사회 곳곳에서 ‘인문학’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특히 고전에 대한 인기가 뜨겁습니다. 실제로 최고경영자(CEO)나 정치인들의 필독서 중 하나가 바로 고전입니다. 이 가운데 ‘손자병법’은 ‘논어’ ‘노자’ ‘주역’ 등과 함께 중국 4대 고전으로 꼽히는 베스트셀러입니다. 골프전문채널 J골프는 ‘골프와 인문학의 만남’이라는 주제로 다음달 25일부터 J골프 CEO 최고위 과정을 개설합니다. 내로라하는 석학들이 골프와 인문학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철학을 제시할 예정입니다. 이 가운데 골퍼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강의가 있습니다. 바로 ‘골프와 손자병법’입니다. 민족문화컨텐츠연구원 원장이자 포스코 전략대학 석좌교수인 박재희(47) 교수를 만나 ‘골프와 손자병법’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박재희 교수는 최근 밀려드는 강의 요청으로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판이다. 그럼에도 J골프 CEO 과정에서 강의를 맡은 이유는 고전을 통해 골프의 본질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손자병법이야말로 골프와 가장 잘 어울리는 고전이다. 전쟁터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냉철한 판단과 치밀한 전략이 필요하다. 골프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손자병법은 중국의 손무(孫武)가 지은 병법서다. 내용은 크게 13편으로 계(計), 작전(作戰), 모공(謀攻), 군형(軍形), 병세(兵勢), 허실(虛實), 군쟁(軍爭), 구변(九變), 행군(行軍), 지형(地形), 구지(九地), 화공(火攻), 용간(用間) 등으로 구성돼 있다. 예부터 작전의 바이블로 여겨져 동·서양을 막론하고 많은 무장의 지침서로 자리매김했다. 국가 경영에도 비범한 견해를 보이고 있어 인생문제 전반에 적용되는 지혜의 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박 교수의 골프 실력은 얼마나 될까. 박 교수는 “구력 3년에 실력은 보기 플레이어 수준”이라고 말했다. 각계각층의 많은 CEO를 상대로 강의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골프에 입문하게 됐다고 그는 말했다.

박 교수는 “손자병법의 핵심은 지피지기(知彼知己)이면 백전백승(百戰百勝)이 아니라 백전불태(百戰不殆)”라고 강조했다.

“백전백승을 하려다 보면 무리하게 되고, 결국 크게 질 수도 있다. 이기는 것이 아니라 위태롭게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최근 경영에서도 리스크 매니지먼트가 유행하는 이유다. 골프도 매홀 버디를 잡으려고 욕심을 내다 보면 오히려 ‘양 파’를 할 수 있다. 18홀에서 모두 위기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것이 지지 않는 게임을 할 수 있는 비결이다.”

18홀에서 더블 보기만 안 하고 보기만 한다는 생각으로 플레이하면 쉽게 파 세이브를 할 수 있고 버디도 잡을 수 있어 안정된 80타대, 나아가서는 싱글 핸디캡 골퍼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병법에 있는 우직지계(迂直之計)도 예로 들었다. 우직지계는 ‘우회하는 게 힘들고 어렵지만 곧장 가는 것보다 더 나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전략이다. 박 교수는 “빠른 길이 좋지만 그런 곳에는 항상 매복 등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골프장에서도 도그레그 코스에서 질러가는 곳에는 항상 OB나 해저드, 벙커가 자리잡고 있다. 냉철하게 판단해 끊어갈 줄 알아야 현명한 골퍼”라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손자병법에서 장수들에게 강조하고 있는 말을 골퍼들도 명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손자병법이 싸움에서 승리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라면 골프 역시 자신, 동반자, 코스 설계가, 클럽, 자연 등 많은 적과의 싸움이라고 말한다. 박 교수는 골퍼들이 하지 말아야 할 다섯 가지를 소개하기에 앞서 손자병법의 시계(始計)를 인용해 “골프 라운드는 사람의 마음이 다치고 상하는 것이며, 내 돈과 시간을 허비할 수도 있으니 하나라도 살피지 않을 수 없다”며 말문을 열었다.

박 교수는 손자병법에서 장수가 하지 말아야 할 다섯 가지를 예로 들었다. 첫째로 죽기살기로 싸워서는 다 죽는다는 ‘필사가살야(必死可殺也)’, 둘째로 살아남으려고 자신의 안위만 걱정하는 소심한 자세를 꼬집는 ‘필생가로야(必生可虜也)’, 셋째로 분노를 제어하지 못하고 서두르면 낭패를 본다는 ‘분속가모야(忿速可侮也)’, 넷째로 지나치게 원칙을 고집해 실속을 놓치는 ‘염결가욕야(廉潔可辱也)’, 마지막 다섯째로 인정에 얽매여 과감한 추진력을 잃어버리는 ‘애민가번야(愛民可煩也)’다. 그런데 이런 항목은 골퍼들도 반드시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골프에서도 너무 의욕이 앞서거나, 너무 소심하거나,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거나, 지나치게 스윙 자세를 의식하거나, 특정 홀에 집착하면 좋은 스코어를 기록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라운드에서 항상 승리할 수 있는 다섯 가지 비법도 공개했다. 손자병법에 나오는 ‘도천지장법(道天地將法)’이 그것이다.

골프에서는 몸과 마음이 하나 되는(道)가 중요하며, 기상조건(天)을 체크해야 되며, 코스의 지형지물(地)을 잘 살펴야 하며, 어떤 클럽을 사용(將)할 것인지, 홀까지의 남은 거리를 정확하게 계산(法)해 라운드에 임하면 항상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충북 괴산군 감물면 골짜기에서 훈장을 하던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일찍 한학을 접하게 됐다.

“고전은 나에게는 숙명과도 같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대학을 마치고 마땅히 갈 곳이 없어 석·박사까지 하게 됐다. 논어 ‘도덕경’에 보면 ‘거꾸로 가는 것이 정답이다’라는 뜻의 ‘반자도지동(反者道之動)’이란 말이 있다. 지금처럼 고전이 유행되고 인기가 있을 줄 정말 몰랐다. 남들이 안 가는 길을 묵묵히 걷다 보면 언젠가는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박 교수는 골프와 고전의 공통점은 결국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고전은 인간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오랜 시간 깊고 폭넓은 토론을 거쳐 얻어낸 결과이기 때문에 시대와 공간을 넘나드는 보편성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수천 년이 지나도 관심을 받는 것이다. 살아남았기 때문에 고전이다. 골프 역시 세월이 흘러도 기본은 변하지 않는다.”

손자병법에서 장수들이 갖춰야 할 다섯 가지 자질인 ‘지신인용엄(智信仁勇嚴)’은 골퍼들이 반드시 갖춰야 할 덕목이기도 하다. 지(知)는 원론에 얽매이지 않고 산전·수전· 택전·육전 등 다양한 상황에서 현명하게 헤쳐나올 수 있는 냉철한 분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신(信)은 동반자들과의 신뢰다. 동반자가 안 본다고 ‘알까기’를 하거나 타수를 속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仁(인)은 동반자에게 관대해야 된다. 동반자가 있어야 라운드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된다. 용(勇)은 캐디나 날씨 탓을 하지 않고 모든 것이 내 탓이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엄(嚴)은 돈이나, 타수 계산을 정확하게 해야 된다는 것이다. 골프에서 말하는 ‘자신에게는 엄하고 동반자에게는 관대하라’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말이다.

박 교수는 “골프가 서양에서 온 때문인지 정신적 세계에 대한 철학이 없다. 골프에 동양의 고전을 접목시킨다면 외국인들도 좋아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타이거 우즈의 부진 원인도 분석했다.

“맹자가 말하는 부동심이 흔들리고 호연지기가 떨어졌는데 볼이 제대로 맞을 리가 없다. 우즈가 처음 골프를 시작했을 때의 초심으로 돌아간다면 다시 예전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박 교수는 “한국인들의 몸에는 기본적으로 인문학 유전자가 흐르고 있다. 손자병법을 통해 골프 실력이 아닌 골프의 기본과 본질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면 훨씬 즐거운 라운드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재희 교수의 ‘골프와 손자병법’ 강의는 J골프 CEO 최고위 과정에 참가하시면 들을 수 있습니다. www.jgolfceo.com, 문의 02-3446-3881.

글=문승진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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