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국정조사 증인 선정이 포로교환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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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국회 저축은행 국정조사 특위가 시한(8월 12일)까지 절반을 넘기고도 출발조차 못하고 있다. 증인 선정을 놓고 여야가 대립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야는 검토대상 100여 명 중 저축은행 임원 등 ‘실무형 증인’ 60여 명에 대해선 합의했다. 그러나 야당 중진의원, 대통령 형과 수석비서관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동생 박지만씨 부부 등 ‘정치성 증인’을 놓고 지루한 공방을 벌이고 있다.

 국정조사 증인석에 앉아 의원들의 추궁을 받는 것은 인격에 대한 상당한 부담이 된다. 특히 한국처럼 죄인 다루듯 하는 청문회 문화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그러므로 증인 선정은 엄격하고 신중해야 한다. 범법이나 의혹의 혐의가 구체적이어서 증인의 입을 통해 실체적 진실이 규명될 필요가 있는 경우여야 한다.

 그러나 작금의 논의를 보면 이런 기준에 해당되지 않는데도 무조건 증인으로 요구하는 게 많다. 일단 증인석에 앉혀 상처를 줌으로써 증인이나 증인과 연관된 정치인에게 손해를 입히려는 의도다. 민주당은 박지원·김진표 전·현직 원내대표를 포함한 7인을 출석시킬 테니 민주당이 요구하는 증인을 채택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대상자 개인별로 필요성을 따지는 게 아니라 전체를 뭉뚱그리는 정치공세다. “우리가 먼저 벗을 테니 너희도 벗어라”라는 옷 벗기 게임 같다. 정치적으로 타협하는 포로교환 같기도 하다.

 특위가 증인 선정으로 허송세월하고 있으니 여든 야든 정말 국정조사를 할 생각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은 저축은행 사태의 충격적 실태를, 민주당은 민주당대로 부산저축은행 경영진이 호남 출신 일색이라는 점 등을 부담스러워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있는 것이다.

 국정조사는 증인 몇 사람 얘기만 듣는 게 아니다. 갈 길이 멀다. 부실 저축은행 대주주 및 임직원의 은닉재산과 범죄수익을 환수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영업정지 정보가 어떻게 유출됐는지를 파악하며, 감독부실 책임을 규명하는 것도 특위가 해내야 할 숙제다. 여야가 증인에만 매달리는 건 학생이 시험지를 앞에 두고 연필 타령을 하는 것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