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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때 고아 돼 동생 업고 다니면서도 일기 썼죠 … 기록은 역사예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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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네의 일기』는 전쟁의 참상을 어린 아이의 시각에서 진솔하고 생생하게 묘사해 세계인들의 마음에 경종을 울렸다. 실제 겪은 이야기를 그날그날 옮겨 적은 일기의 힘은 의외로 컸다. 소녀의 꾸밈없는 전쟁 소설이나 정치인들의 연설로도 전할 수 없는 감동과 교훈을 줬다. 안네 프랑크가 전쟁 중에도 긍정적인 마음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도 일기에서 찾는다. 일기장에 마음에 담긴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어 전쟁이 주는 극심한 스트레스도 이겨낼 수 있었다는 말이다. 교과서를 통해 『안네의 일기』의 내용을 파악하고, 신문 기사에서 일기의 가치와 효과를 짚어본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유대인이 일어설 수 있었던 이유는 『안네의 일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소녀가 실제로 겪은 이야기가 독일군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었고 세계를 이스라엘 편에 서게 했죠.” 우리나라에서 일기를 가장 오래 쓴 사람으로 인정받아 한국기네스북에 오른 박래욱(74·서울 자양동)씨의 말이다. 한약방을 경영하는 박씨는 1948년 일기 쓰기를 시작해 지금껏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일상을 기록해왔다. 그도 안네처럼 10대 소년 시절에 전쟁을 겪었다.

박형수 기자

박래욱씨(74)는 매일 오전 3시30분에 기상해 일기 쓰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황정옥 기자]

-일기를 쓰게 된 계기는.

“어머니의 가르침 때문이다. 내가 열 살이 되자 어머니께서 ‘남아 10세면 인생에 흔적을 또렷이 남길 일을 시작해야 한다’며 일기를 쓰도록 지도하셨다. 내용에 대해서는 별 말씀이 없었지만 하루도 거르지 말고 꾸준히 쓰라고 강조하셨다.”

-한국전쟁 등 난리를 겪으면서도 일기를 거른 적이 없나.

“일기는 계속 썼지만 중간에 한 번 소각했다. 어린 마음에 보이는 대로, 들리는 대로 소상히 적어뒀던 게 문제가 됐다. ‘빨갱이가 우리 집에 쳐들어와 어머니 머리채를 틀어잡고 칼을 들이댔다’는 식의 표현이 있었는데, 어머니가 그게 발각되면 몰살당한다며 아궁이에 넣고 태우셨다. 한국전쟁에 대한 기억은 뚜렷하다. 내가 살던 전남 장성에서는 7월 23일 일요일부터 인민군 탱크가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 집은 25일부터 쑥대밭이 됐다. 아버지가 경찰서장이었던 터라 인민군들에게 고초를 겪다 죽임을 당하셨다. 10월 16일엔 어머니마저 희생당했다. 일기에 써둔 게 있어 날짜는 물론 그때 날씨, 심리상태까지 어제 일처럼 그려진다.”

-난리 속에 일기를 쓴다는 게 가능한 일인가.

“마음속에 담긴 울분과 화, 우울함을 털어놓을 곳이 일기밖에 없었다. 열세 살 나이에 하루아침에 고아가 돼 두 살배기 동생을 등에 업고 젖동냥을 다녔다. 밤마다 배고파서 보채는 동생을 안고 울면서 일기를 썼다. 일기가 없었다면 견디기가 더 힘들었을 것이다.”

사진을 붙이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작성한 일기.

-기록하는 습관 덕분에 얻은 게 있다면.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기 위해 늘 노력하게 된다. 오늘 저녁에 하루 일과를 적어 남겨야 하는데 어떻게 한순간이라도 남을 미워하고 죄를 지을 수 있겠나. 일기는 내 삶의 방향을 바로잡아주는 나침반이기도 하다. 얼마 전에 고은 시인을 만났는데 나더러 ‘당신이 우리나라 최고의 역사학자’라고 치켜세우더니 시 한 수를 선물해줬다. ‘일기 70년’을 채우라는 당부도 했다. 일기가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깊이 했다.”

-일기에는 자신의 모습이 그대로 투영된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자신이 어떻게 변해왔다고 생각하나.

“좀 더 나다워졌다.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 내가 정의하는 세상이 무엇인지가 점점 더 뚜렷해진다는 의미다. 처음에는 피상적인 이야기, 간단한 에피소드를 정리하는 수준이지만 점차 내면의 이야기를 풀어놓을 수 있게 된다. 이런 변화를 겪으려면 적어도 15년 이상 일기를 써야 한다. 내 경우 한 번 소각한 후 1950년부터 다시 쓰기 시작해 지금 60년이 넘었다. 되돌아보면 90년대 들어 쓴 일기부터 비로소 내 숨결이 묻어나는 글이 나온 것 같다. 나다운 글, 나다운 시각을 찾는 데 40년이 걸렸다.”

-최근의 일기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나.

“일기를 쓰다 보면 기록이 점점 더 세밀하고 정확해진다. 글만 읽어도 눈에 보이는 것처럼 생생하게 묘사할 수가 있다. 날씨나 만난 사람에 대한 감흥만 풀어놔도 한두 페이지는 훌쩍 넘어간다. 기록에 대한 사명감 같은 게 생기다 보니 주말이나 쉬는 날이면 우리나라 명소를 두루 찾아다닌다. 후학들이 내 일기를 보고 이 시대의 모습을 좀 더 정확하게 알았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사진도 찍어서 붙여두는 등 제대로 기록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2006년에는 일기를 국립민속박물관에 기증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나는 내 일기를 개인의 기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본 역사의 일부다. 신변잡기도 많지만 해방의 감격, 한국전쟁, 민주화 항쟁 등 사회상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후학들을 위해 이런 기록이 제대로 보존되고 공개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거에서 배울 점이 있다면 계승하고, 잘못된 점은 고쳐나가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 내 일기가 사회 발전에 작은 보탬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 기증했다. 일기장은 내가 직접 종이를 한 장, 한 장 묶어 만드는데, 55년간 써온 일기장이 98권이나 되더라.”

-요즘 젊은이들은 일기를 꾸준히 쓰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종종 학생들에게 ‘일기를 쓰냐’고 물어보면 대다수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쓸 말이 없다’고들 하더라. 학교와 학원을 오가는 일상이 반복되니까 기록할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성숙하고 발전하는 사회일수록 기록 문화가 발달해 있다. 가까운 일본만 해도 적과 싸우다가도 총소리가 잠시 멈추면 주머니에서 종이와 연필을 꺼내 간단히 적고 다시 싸운다. 그런 기록물이 모여 국가의 자산이 된다. 일기를 쓰는 게 단순히 개인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사회적 사명감과 소명의식을 갖고 써나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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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기록이자 사회의 작은 역사

일기에는 그가 살아온 시대상도 반영돼 있어 역사적·사회적 가치도 높다. 개인의 일기가 역사적 사실을 입증하는 객관적 증거가 되기도 한다.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일본 병사의 일기에 한국인 여성 위안소를 찾았던 사실이 기록돼 일본의 만행을 증명하는 자료가 됐다.

일기에서는 평범한 시민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해석한 역사를 엿볼 수 있어 흥미롭다. 1952년부터 일기를 써온 김봉호씨는 “민초들의 삶에 대한 기록만큼 생생한 역사가 있느냐”고 강조했다. 자녀를 위해 적은 육아 일기, 간호사가 환자를 돌보며 기록한 간호 일기, 자녀와 함께 쓴 교육 일기 등이 종종 책으로 출간돼 인기를 끄는 것도 이 때문이다.

관계기사

2011년 6월 25일자 22면

악보 뒷면에 꼭꼭 눌러쓴 반세기 전 육아 일기

2011년 1월 14일자 21면

“21년 쓴 쌍둥이 성장기 우리 가족 역사책이죠”

2010년 11월 9일자 19면 위안소 찾은

일본 병사 일기 “조선 정벌하고 온 즐거운 날”

2010년 8월 19일자 32면 그의 일기장 74권은

6·25전쟁 이후 민초들 삶의 역사다

쓰면 이뤄진다 … 일기의 효과

‘축구를 더욱더 잘 할 수 있도록 노력해 국가대표까지 갈 것이다’ ‘아이스쇼를 보고 나서 나도 스케이트를 열심히 타서 국가 선수가 되어야 겠다고 다짐했다’. 스포츠 스타인 박지성·김연아 선수의 어린 시절 일기다. 일기장에 꿈을 반복해 적고 현실에서 노력한 덕분에 지금은 그 꿈을 당당히 이뤄냈다. 스피드 스케이팅 이승훈 선수의 일기도 화제다. 2010년 밴쿠버 겨울올림픽에서 상대 선수를 한 바퀴 이상 따돌리고 금메달을 목에 거는 명장면을 연출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올림픽이 있기 9년 전, 일기장에 ‘저 아이들을 잡으면 1바퀴 잡는 거다’라고 적은 글귀대로 승리를 일궈냈다.

그뿐 아니라 다이어트 일기, 학습 일기 등 자신의 상황과 목적에 따라 적은 일기로 효과를 봤다는 사람이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일기를 쓰면 꿈을 이룰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말한다. 자신의 꿈을 머리로 생각하고 입으로 되뇌며 손으로 쓰고 눈으로 보는 등 오감으로 반복하기 때문에 각인 효과가 크다는 말이다.

관계기사

2010년 2월 27일자 4면 “스케이트 열심히 타서

국가 선수가 되어야 겠다” “힘들어도 참아!

어차피 해야 하는 거 열심히 하자”

2010년 2월 25일자 28면 ‘저 아이들을 잡으면

1바퀴 잡는 거다’ 9년 전 일기처럼 이승훈 1바퀴

추월하는 순간, 메달 색깔 달라졌다

2009년 5월 4일자 29면

3안타·우승·MVP … 일기에 쓴 대로 해냈다

2007년 1월 4일자 13면 “연아야, 일곱 살 때 쓴

일기 그대로 피겨 여왕 꿈 이뤘구나”

기록 문화가 성숙한 사회 만들어

미국은 자서전의 나라다. 고위직에 오른 사람이 회고록 형태의 책을 펴내는 문화가 정착돼 있다. 회고록에는 자신의 업적을 나열하고 잘못을 합리화하는 내용이 포함되기도 하지만 후임자들이 자신이 했던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일기를 기반으로 남긴 꼼꼼한 자서전은 현재와 미래를 살아갈 이들에게 지침이 되기도 한다. 일기를 쓰는 문화가 전대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성숙한 사회로 이끄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이번 주 주제와 관련된 NIE 활동 이렇게

1. 안네(사진)는 자신의 일기장에 ‘키티’라는 이름을 붙이고 친구와 대화하듯 일기를 썼다. 자신의 일기장에 이름을 붙이고 앞으로 어떤 식으로 일기를 써 나갈지 계획을 세워본다.

2. 아래 기사는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 일본군 병사가 쓴 일기의 한 대목이다. 일기를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이 무엇인지 적고, 『안네의 일기』가 왜 중요한 가치를 갖는지 유추해본다.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일본 병사가 한국인 여성 위안소를 찾았던 사실이 기록된 일기가 공개됐다. 일본 시민운동가 다나카 노부유키(59)는 일본 육군 제6사단 소속이었던 아버지 무토 아키이치(당시 22세·2007년 사망) 분대장이 1938년 전쟁터에서 쓴 일기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에 기증했다.

무토는 38년 2월 21일 일기에서 ‘오늘은 즐거운 나들이다. 이시카와와 둘이서 먼저 조선 정벌에 나섰다. 순서는 네 번째였다. 도미코, 경상남도’라고 썼다. 정대협 김동희 국장은 “병사가 쓴 위안부에 관한 자료는 매우 희귀한 것으로 ‘(위안부 관련) 증거가 없다’고 부인하는 일본 정부를 반박할 수 있는 자료”라고 말했다.

<중앙일보 2010년 11월 19일자 19면 위안소 찾은 일본 병사 일기>

3. 일기에 자신의 꿈을 기록하면 이뤄진다는 말이 있다. 다음 기사를 읽은 뒤, 꼭 이루고 싶은 자신의 꿈을 기록해본다. 

덕수고 내야수 이인행(18·3학년)은 잠들기 전에 일기를 쓴다. 제43회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결승전을 하루 앞둔 1일 밤에도 그는 펜을 꼭 잡았다. 론다 번의 『시크릿』을 통해 배운 ‘긍정의 힘’이 그의 손을 움직였다. ‘우리는 꼭 우승한다. 결승전에서 3안타를 친다. MVP는 내 차지다’.

그리고 다음날 경기에서 3안타(4타수 3타점 2득점)를 쳐내는 맹활약을 펼쳐 상대팀인 상원고의 막판 추격을 따돌리고 덕원고가 우승하는 데 힘을 보탰다. 대통령배는 그에게 MVP·수훈상·최다 안타상을 선사했다. 일기에 쓴 그대로였다.

<중앙일보 2009년 5월 4일자 19면 3안타·우승·MVP 일기에 쓴 대로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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