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도전! 창업 스토리 ⑫ 안정식 ㈜비앤피 사장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9면

안정식 비앤피 사장이 베이비프라임 브랜드로 납품하는 제품들을 설명하면서 활짝 웃고 있다. 이 회사는 영·유아 의류와 용품 2000여 가지를 공급하고 있다. [조문규 기자]


100만원권 가계수표 40장, 그리고 과태료 40만원을 대납해 얻은 고물 승합차….

 ‘베이비프라임’ 브랜드로 영·유아 의류와 용품을 공급하는 안정식(49) ㈜비앤피 사장은 15년 전 이렇게 사업을 시작했다. 비앤피는 젖꼭지·젖병부터 각종 의류(0~3세용), 유모차까지 2000여 종의 제품을 취급하고 있다. 경기도 고양시 사리현동 물류창고 겸 사무실에서 만난 안 사장은 말 그대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왔다. 그는 초등학교 문턱에도 못 가 봤다. 호적이 없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어디서 어떻게 태어났는지 모릅니다. 여섯 살 무렵 강원도 강릉에서 어머니를 만났는데 정신적으로 정상이 아니었고, 의붓아버지와 동생들이 냉랭하게 대해 같이 살기 힘들었어요. 2년쯤 뒤에 무작정 집을 나와 식당 일, 구두닦이, 넝마주이 등을 하며 지냈습니다.” 그러다 또래 친구들이 속속 입대 영장을 받고 군대에 가는데 영장을 못 받아 경위를 알아보다 자신의 호적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안 사장은 1978년에야 겨우 호적을 갖게 됐다. 강원도 횡성에서 살던 당시 동네 어른들이 증인을 서준 덕분이었다. 생일도 그때 생겼다. 담당 공무원이 실제 나이보다 두세 살 어린 62년생으로, 생일 역시 기억하기 좋다고 현충일(6월 6일)로 정해 줬다.

 이후에도 그는 서울과 강원도의 이삿짐센터·가방공장·오토바이 수리점 등을 전전하다 82년 서울 시흥3동에 있던 가방 수출업체 서원산업에 견습생으로 들어가게 된다. 월급 없이 먹여 주고 재워 주는 조건이었다. 어렵사리 들어간 회사에서 그는 9개월쯤 지나 회사 간부와 싸움을 한 게 되레 전화위복이 됐다. 자초지종을 묻는 사장에게 ‘기숙사 보일러도 안 돌아가고, 밥도 엉망인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대들었는데, 이를 계기로 간부들의 횡령 비리가 드러나고 자신은 정직원이 된 것.

 “사장님 권유로 한글을 배우면서 정말 열심히 일했어요. 신나게 일하다 보니 작업 개선 아이디어도 많이 냈죠. 한번은 대만에서 수입하던 가방용 합판 소재를 국내 업체에서 절반도 안 되는 가격에 납품받도록 건의해 보너스도 듬뿍 받았습니다. 거의 매년 승진하다시피 해 92년엔 공장장을 맡게 됐죠.” 그는 같은 회사에서 미싱사로 일하던 부인 이조왕(48)씨와 단란한 가정도 꾸렸다. 하지만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중국산의 공세에 밀려 회사의 경영 사정이 갈수록 나빠졌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94년 8월 정든 직장을 떠났다. 어려운 이를 보면 도와주지 않고는 못 배기는 성격 탓에 퇴직 당시 남은 돈은 고작 1700만원. 이 돈으로 서울 응암동에 전셋집을 얻고 부인 이씨와 함께 야채장사를 했다. 그러다 우연히 유아용품이 유망하다는 뉴스를 접하게 된다. 그는 아내에게 장사를 맡기고 유아용품 회사에 무보수 영업직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1년 가까이 일을 익힌 뒤 창업에 나선다. 우선 부인 이씨가 장사하면서 거래하던 서울 응암동 수협의 지점장을 찾아가 통사정해 받은 가계수표 4000만원으로 물건을 구입했다. 그런 뒤 고물 승합차에 싣고 다니며 유아용품점에 납품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그는 성실함과 친화력으로 승부를 걸었다. 납품 매장을 방문할 때마다 청소를 해 주고 점주와 가족의 생일 때마다 선물을 챙겼다. 이 덕분에 매출이 계속 늘긴 했지만 늘 찜찜한 구석이 있었다. 특정 품목은 품질과 안전성이 의심쩍은 외국산을 취급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유명 브랜드 제품조차 단가를 낮추려고 중국과 동남아에서 만드는 경우가 많았다. 결혼 9년 뒤에야 어렵게 첫 아들을 얻었던 그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아기’를 위해 믿을 만한 제품을 자체적으로 만들기로 결심한다. 가방 봉제를 해본 경험을 살려 각종 면제품을 개발해 국내 위탁생산을 시작했다. 2001년엔 ‘베이비프라임’ 브랜드도 만들어 상표등록도 했다. “한번은 직원이 뒷돈을 받고 품질이 떨어지는 내의를 받아 왔더라고요. 납품받은 의류는 집에서 삶아봐 이상이 없는지 확인하는데 적발된 것이죠. 제품을 쌓아놓고 불태우려 하자 잘못을 시인하더군요. 이후엔 해당 직원도, 80여 곳의 납품업체도 품질을 철저히 지키게 됐습니다.”

  안 사장은 “올해 유모차 판매를 본격화하고 하반기엔 베트남·중국 등에 수출을 시작할 계획이어서 연매출 50억원을 넘길 것”이라고 각오를 밝혔다. 지난해 매출은 30억원이었다. 그는 종업원 13명의 작은 회사를 경영하고 있지만 품질만큼은 최고라는 평판을 듣는 게 꿈이라고 했다.

글=차진용 산업선임기자
사진=조문규 기자

안정식 사장의 약력

1962년 강원도 출생

82년 서원산업 입사

94년 서원산업 공장장으로 퇴사

96년 진우상사 창업

2008년 ㈜비앤피 설립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