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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김서령의 이야기가 있는 집 ⑤ 고제순씨의 원주 흙집 ‘흙처럼 아쉬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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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2면

고제순 선생의 집 전경. 오른쪽 건물은 그가 꼬박 3년동안 지은 살림집이고, 왼쪽에 보이는 작은 집들은 흙집학교 실습을 하며 지은 건물이다.


새는 스스로 집을 짓는다. 벌도 개미도 거미도 스스로 집을 짓는다. 자연계의 모든 생물이 스스로 집을 지어 그 속에서 새끼를 낳아 기른다. 그런데 사람은? 가장 지능이 발달한 사람만이 제 집을 남에게 맡긴다면 이건 뭐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일 아닌가. 대학에서 철학을 강의하던 고제순(52)은 문득 그렇게 자각했다. 그리고 인간인 자신도 몸담고 살 집을 스스로 지어봐야겠다고 결심한다. 그로부터 10년 후. 고제순 선생은 자신이 살 흙집을 직접 지은 것은 물론 다른 사람들에게 흙집 짓기를 가르치는 사람이 되었다.『일주일 만에 흙집짓기』라는 책도 썼다.

글=김서령 칼럼니스트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철학 가르치다 ‘흙집학교’ 교장으로

‘흙처럼 아쉬람’의 안방. 방 한켠에 높이 60㎝ 황토 구들을 놓아 침대로 활용한다. 거실 벽난로가 아궁이 역할을 한다. ‘침대’ 위에 놓인 장농은 아파트 생활을 할때부터 사용했던 것인데, 다리를 자르니 높이가 꼭 맞았다.

거실 벽난로. 벽난로에 불을 지피면 거실과 안방이 모두 따뜻해진다. 천장에는 인도 오르빌 공동체에서 사온 그물 의자를 매달았다.

“책 제목에 ‘배우는’이 생략됐어요. 일주일 만에 다 지을 수는 없지만 일주일 만에 배울 수는 있어요. 살림집을 제 손으로 짓는다는 건 단지 건축비용을 아끼자는 차원의 얘기가 아닙니다. 집 짓기는 일종의 자기수양이에요. 이론과 실천이 분리되지 않는 작업이고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이 동시에 이루어져요. 무엇보다 자기 삶에 뱃속으로부터 올라오는 자신감을 주는 일입니다.”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대학에서 칼 포퍼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던 ‘먹물’ 고제순은 어느 날 ‘머리와 입’으로만 살아오던 삶을 과감하게 내려놓았다. 그리고 거미처럼, 새처럼, 벌처럼 밥과 집과 몸을 스스로 짓고 돌보기로 했다. 구체적으로 흙 속에 씨앗을 묻고 흙과 나무를 이겨 바르고 나무 아래서 심호흡을 했다. 밥과 집과 몸, 우리 삶의 본질은 그것이다. 그걸 직접 해결 못 하면 암만 호의호식하며 살아도 허탕이라는 걸 뼈아프게 깨달은 것은 그의 학문이 철학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보금자리를 짓는 일에 땀과 정성을 바치는 게 아마 만족도가 가장 높은 일일 겁니다. 살림집을 직접 지으며 얻게 되는 기쁨을 건축업자나 목수에게 뺏기는 것은 너무 억울한 일이고요.”

그러나 제 손으로 집 짓는 일이 도시인에게 어디 가당키나 한가. 시간도 없고 땅도 없고 무엇보다 밥벌이할 직장은 어떡하고.

“문제는 생각입니다. 생각에는 힘이 있어요. 생각의 힘이 현실을 움직입니다. 생명이란 몸과 마음과 영혼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제대로 기쁨을 얻을 수 있거든요. 어떻게 길러지는 건지도 모를 음식을 먹고, 오염된 공간 속에서 정신 없이 바쁘게 살고, 몸이 아프면 곧장 약국과 병원으로 달려가는 삶이 제대로 된 삶인가요?”

이건 굉장히 차원 높은 얘기다. 몸을 쓰지 않는 정신 노동뿐인 삶은 필연적으로 불안과 불건강을 낳는다. 그걸 고제순 같은 예민한 이들이 먼저 알아챘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선각자가 됐다. 흡사 1급수에 사는 쉬리나 공기가 오염되면 살지 못하는 반딧불이처럼!

“삶의 세 가지 토대는 식(食)과 주(住)와 의(醫)잖아요? 이런 삶의 바탕을 아무것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면서 무슨 박사(博士)입니까. 협사(俠士)지요, 협사! 수십 년간 제도교육을 받고 유학에 학위를 손에 쥐었지만 다 헛공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과감하게 인생을 전환한다. 삶의 근본을, 밥과 집과 몸을,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길을 궁리한다. 대안은 일단 시골로 가서 농사지으며 사는 삶이었다. 다행히 아내가 동의해줬다.

“아내가 동의하지 않았다면 못했겠지요. 아내 지해진(52)은 제 길의 동지이고 친구입니다.”

우선 자연농업을 공부해 먹을거리 자급자족을 시작했고, 통나무 집과 전통가옥을 공부하고 주말엔 온 가족이 함께 전통주택을 찾아다니는 건축기행을 계속했다.

살림집 옆에 지어놓은 20㎡(6평) 크기의 원형 황토흙집 내부. 고제순 선생이 사랑방 겸 명상의 장소로 사용하는 곳이다. 방바닥에 옻 염색을 한 삼베로 도배를 한 게 이색적이다(사진 왼쪽). 원형 흙집 아궁이. 옹기 두 개를 얹어 장식을 했다.



“우리 전통가옥이란 한마디로 흙집이었어요. 초가집·너와집·기와집이 지붕재료는 달라도 전부 흙과 나무라는 자연소재로 지은 집이란 걸 알게 됐지요.”

그리하여 강원도 원주시 흥업면 매지리 회촌마을에 130여㎡(40여 평)짜리 흙집을 짓고 들어온 것이 2000년이다. 원주의 아파트에서 내왕하며 짓느라 거의 3년이 걸렸다. 원형·피라미드형·장방형이 에너지를 모으는데 좋은 구조란 걸 알아 거실 천장은 피라미드꼴로 만들었다.

“에너지가 좋아서 그런지 피라미드 천장 아래 제비가 먼저 집을 짓더군요.”

곧이어 초등학교 4학년, 1학년의 딸아이들은 이 마을 초등학교로 전학시켰다.

“다들 아이 교육은 도시에서 해야 하는 줄로 알지요? 저와 아내는 확신하는 게 있었어요. 어린 시절을 자연 속에서 보내는 게 최고의 교육이라는 확신!”

나는 십여 년 전 토지문화관에 두어 달 머물렀다. 무료해지면 산책 삼아 천천히 윗마을로 걸어 올라가곤 했는데 그때 산 속에 비닐하우스를 치고 혼자 흙집을 짓던 사람이 지금 보니 고제순 선생이었다. 소나무 널빤지를 잘라 보름 동안 혼자서 너와 지붕을 이었다고, 집을 짓는 기쁨이 지금껏 맛본 만족감 중 최고라고 눈을 빛내던 이가 바로 그였다니!

거실에서 눈에 띄는 건 흙으로 만든 벽난로인데 위쪽엔 물을 담은 옹기단지를 박아놨다. 물이 데워지면 겨울철 훌륭한 가습기 역할을 한단다. 벽난로에 장작을 넣으면 그 열이 안방 구들 침대를 달군다. 안방엔 바닥보다 60㎝ 높인 구들을 놓아 침대처럼 쓴다니 탁월한 고안이다. 구들을 놓을 때도 그냥 돌만 깔지 않고 군데군데 숯을 묻었다. 아랫목에서 맥반석이 달궈지는 10㎡짜리 황토 찜질방은 이동도 가능하도록 개발했고 장판엔 종이 대신 옻 염색한 삼베를 발랐다.

“흙속의 생명들이 우리에게 에너지 나눠주죠”

고 선생 부부가 집 앞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유학파 박사인 고 선생이 귀농을 결심했을 때 유일하게 반대하지 않은 사람이 바로 고 선생의 부인, 지해진 여사다.



그의 호는 ‘여토(如土)’, 즉 ‘흙처럼’이다. 집 이름도 ‘흙처럼 아쉬람’이라고 지었다. 아쉬람은 명상을 위한 작은 집 정도의 뜻인데 흙을 이겨 집을 짓는 일도, 거기 깃들어 사는 일도, 자기수행의 일종이라는 의미가 읽힌다.

“도대체 흙이 뭐가 그렇게 좋아요?” 그의 얼굴에 돌연 밝은 기운이 감돈다. 어쩌면 고제순은 그 말에 대답하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 같다.

“흙은 생명 그 자체입니다. 흙 1㎏ 안에는 4000억의 일반균류와 500억의 박테리아들과 7000억의 방사성 균류가 깃들어 삽니다. 왜 살까요? 살기 좋으니까 살겠지요? 그 생명들이 우리에게 생명 에너지를 나눠줍니다. 보도블록을 한번 보세요. 보도블록엔 풀이 안 나도 그 사이에 조금 끼인 흙에는 풀이 돋고 때로는 꽃도 피잖아요? 콘크리트가 생명을 죽이기 때문입니다. 시멘트를 덮어쓰고 사는 생명은 지구상에 인간이 유일해요. 우매하고 우둔하지요. 그걸 뻔히 알면서 제가 어떻게 흙집을 예찬하지 않고 배기겠습니까.”

그는 아파트도 흙으로 지을 수 있다고 했다. “H빔 세우고 벽에 흙 바르면 안 될 게 뭡니까.“ ‘흙처럼 아쉬람’ 홈페이지(www.mudashram.com)에 접속하면 자신의 깨달음을 이웃과 나누며 생명문화운동에 맹렬 정진 중인 그를 만날 수 있다.

기초→구들→황토벽돌→서까래

7박8일 교육 1000명이 다녀갔다

고제순 선생에 따르면 집 짓기는 “종합예술이요, 종합학문”이다. 손수 짓는 집 짓기 과정을 통해 문제해결 능력과 창의력이 길러지고, 노동의 즐거움과 성취감을 체험하면서 삶에 자신감이 생긴다.

 그 세계에 더 많은 사람이 눈을 떴으면 하는 바람으로 그는 2004년 ‘흙집학교’를 시작했다. 누구나 손수 자신의 집을 지을 수 있도록 구체적이고 손쉬운 공법을 알려주겠다는 의도에서다. 강원도 원주시 흥업면 회촌마을 백운산 자락에 자리잡은 그의 집이 학교가 됐고, 그에겐 ‘교장’ 직함이 생겼다.

 그의 흙집학교 정규 교육은 7박8일 프로그램이다. 15~20명의 교육생이 일주일 동안 숙식을 같이하며 그의 지도에 따라 10㎡(3평) 내외의 흙집을 직접 짓는다. 기초를 닦은 뒤 구들을 깔고, 황토벽돌을 쌓고, 기둥을 세우고, 서까래를 걸고, 너와를 얹는 등의 과정이다. 자연스레 전기대패·톱·절단기 등의 장비 다루는 법도 익히게 된다. 그는 “집은 크나 작으나 짓는 과정과 이치는 동일하다”며 “작은 흙집을 지을 수 있으면 큰 흙집도 지을 수 있다”고 했다.

 정규반 과정은 장마철(7월)과 겨울(11~2월)을 빼고 매달 열린다. 벌써 48기, 1000여 명이 교육을 마쳤다. 49기 교육은 11일부터 프랑스 남부 발랑스에서 진행된다. 재불화가 방혜자 선생의 초청으로 성사된 강좌다. 교민뿐만 아니라 현지 프랑스인들도 참석할 예정이다.

 “지난해 7월엔 미국 미시간주 랜싱에서 흙집짓기 교육을 했어요. 전통 구들에 대한 현지인들의 관심이 대단했죠. 실습하며 지어놓고 온 18㎡(5.5평) 원형 흙집이 지역 명소가 됐다네요.”

 정규반 교육비는 65만원. 구들 놓는 법만 가르치는 1박2일짜리 ‘구들반’과 흙집을 위탁 시공하는 건축주들을 위한 ‘특강반’(2박3일)도 매달 진행한다. 교육비는 각각 15만, 30만원이다.

 흙집학교 곳곳에는 그동안 실습생들이 지어놓고 간 흙집이 즐비하다. 간혹 실습한 흙집을 해체해 교육생 중 원하는 사람에게 재료비만 받고 팔기도 하지만, 여전히 25채나 남아 있다. 그는 이제 이 흙집들의 활용방안도 고민 중이다. “흙집이 아토피와 기관지 천식, 만성피로증후군 등에 좋은데 휴양시설로 이용해도 좋지 않겠느냐”고 되물었다.

이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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