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핏 “미 재정적자 5분이면 해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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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81·사진)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은 종종 유머로 속내를 드러낸다. 시너지를 못 낸 인수합병(M&A)에 대해 “잠자리에 들 땐 최고의 미녀인 줄 알았는데 깨서 보니 아니었다”고 하는 식이다. 이런 버핏이 7일(현지시간) 또 다시 유머와 비유를 구사해 미국과 유럽의 재정 위기를 진단했다. 미국 경제채널 CNBC와의 인터뷰 자리에서다.

 인터뷰에서 버핏은 “5분 안에 미국 재정적자를 끝낼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연방정부의 적자가 국내총생산(GDP)의 3%를 넘어서면 의원들이 다음 선거에 나갈 수 없도록 하는 법을 만들면 된다”고 말했다.

 버핏의 말은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다. 버핏의 얼굴에도 장난기가 어려 있었다. 미 의원들이 그 법을 만드는 순간 누구보다 먼저 일자리를 잃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재 미국은 부도의 벼랑 끝에 서 있는 형국이다. 연방정부가 빚내 쓸 수 있는 한도가 8월 2일까지 확대되지 않으면 미국은 채무불이행(디폴트)을 선언할 수밖에 없다. 민주·공화 양당은 데드라인을 20여 일 앞두고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다. 누가 먼저 물러서는지 갈 데까지 가보자는 식이다. 이런 때 버핏의 말은 미국인들의 답답한 가슴을 시원하게 해줬다.

 이날 버핏은 농담만 한 것이 아니었다.“누군가 당신의 머리에 총을 겨누고 있을 때 가장 합리적인 해결책을 내놓기 힘들다는 점은 누구나 잘 알고 있다. 서로 머리를 맞대고 협조하면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런데 민주·공화 양쪽 정치인들은 상대 머리에 총을 겨누고 협박하고 있을 뿐”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두 진영의 밀고 당기기를 불장난에 비유했다. “많은 사람이 의견차가 심하지 않아 앞으로 한두 주 사이에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정치인들은 그래서는 안 되는 순간에 불장난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위기의 순간 버핏은 자신이 먼저 노블레스 오블리주(지도층의 도덕적 의무)를 실천할 것임을 약속했다. “(부채 한도가 확대되지 않아) 8월 2일 미국이 부도가 나면 버크셔해서웨이는 세금을 선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부자들이 세금을 더 많이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 세율이 지금처럼 낮은 적이 없었다. 그런 기간이 10년이나 됐다. 그 사이 부의 불평등이 심해졌다. 물론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물린다고 재정 문제가 해결되진 않는다. 문제 해결에 도움은 된다. 어떤 방안도 한 가지만으로 재정 문제를 해결할 순 없다. 여러 조치를 함께 취해야 해결된다”고 강조했다.

 버핏이 유럽 재정위기를 말할 땐 그의 비유법이 더욱 빛을 발했다. 그는 “그리스 사태가 해결된 것이 아니다. 유로 회원국 17개 나라들이 경제력이나 재정상황의 차이를 무시하고 함께 움직이고 있다. 마치 17명이 서로 손잡고 벼랑 끝을 향해 걷고 있는 듯하다”고 말했다. 유로 체제가 파국을 향해 움직이고 있다는 얘기다.

 그는 “그들이 서로 손을 꼭 잡고 있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진 않는다”며 “벼랑 끝에 도달하면 누군가는 손을 뿌리치고 벗어나려고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위기를 겪고 있는 몇몇 나라들이 유로화를 포기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강남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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