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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우 기자의 까칠한 무대] 세종문화회관의 덫 … 악재 끊이지 않는 이유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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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세종문화회관이 4일 검찰 압수수색을 당했다. 30여 년 역사상 초유의 일이다. 혐의는 대관 비리. 최모 본부장이 대극장을 내주는 조건으로 공연기획사 두 곳에서 4000여 만원의 금품을 받았다는 것이다. 최 본부장은 사직한 상태다. 검찰은 7일 구속영장도 청구했다. 혐의가 사실로 밝혀진다면, 30년간 공연계에서 입지를 다져왔던 최 본부장으로선 치명상을 입게 됐다.

 세종문화회관 박동호 사장도 마음이 불편하다. 2009년 취임 당시 최 본부장을 콕 찍어서 데려온 게 박 사장이다. 인사권자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세종문화회관은 연초 뮤지컬 ‘미션’이 리콜 소동을 빚는 등 이런저런 우환이 적지 않았다. ‘미션’ 제작자는 현재 횡령 혐의로 구속돼 있다.

 근데 이 모든 잡음이 박사장 개인의 잘못일까. 기관장으로서 가장 큰 책임이 있는 건 맞다. 하지만 제갈공명 같은 지략가가, 히딩크 같은 리더가 와도 세종문화회관을 운영하기란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 그만큼 꼬여있고, 얽혀있는 곳이 세종문화회관이다.

 우선 국·공립 공연장 고유의 특성이 있다. 한때 문화관료 등이 국·공립 공연장 대표를 계속 맡아오자 “예술적 안목을 갖춘 기업 CEO를 모셔와야 한다”란 목소리가 컸다. 2000년대 중반부터다. 세종문화회관 김주성·이청승, 예술의전당 신홍순 사장 등이 대표적이다. 박동호 사장이 발탁된 것도 이런 분위기에서다. 박 사장은 CJ엔터테인먼트, CJ 푸드빌 대표 등을 지냈다. 공연장 운영부터 외식사업까지 이끄는 세종문화회관 대표로 제격이란 평이었다.

 하지만 최근 이런 소리 쑥 들어갔다. “기업체 대표를 데려다 놓았더니 돈 버는 것에만 치우쳐, 공연장 본래의 공공성이 약화됐다”란 볼멘소리가 적지 않았다. 이런 비판에서 박 사장 역시 자유로울 수 없다. 더 치명적인 건 직원관리였다. 사기업에서 CEO가 “이거 해!”라고 하면 직원들, 바로 행동에 옮긴다. 근데 세종문화회관은 아니다. 겉으론 하는 척 하지만 다들 꿍꿍이가 있다. “세종문화회관에 입사하면 우선 서울시나 높은 곳에 줄 대는 것부터 배운다”라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박 사장을 가장 곤혹스럽게 한 건 서울시의회에 출석했을 때였다고 한다. 내밀한 업무사항을 박 사장보다 시의원들이 더 잘 알고 있었다. 내부직원이나 산하단체 관계자 누군가 일러주었을 가능성이 크다. 청와대·감사원 등엔 세종문화회관 관련 투서가 현재도 수십여 건 쌓여 있다고 한다. 직원간 불신의 골이 그만큼 깊다.

 이번 검찰 수사는 위기만은 아닐지 모른다. 세종문화회관 혁신의 기회가 될 수 있다. 곪을 대로 곪은, 조직의 상처가 고스란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단 칼자루는 서울시가 잡아서는 안 될 터. 세종문화회관과 이리저리 얽혀있는 서울시가 관여했다간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꼴이 될 수 있다. 누가 이 복잡한 실타래를 풀 수 있을까. 솔로몬의 지혜를 가진 자는 누구일까.

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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