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류관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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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창작 오페라는 역사적 인물을 부각시킨 '위인전' 일색이다. '황진이' '이순신' '백범 김구' 에 이어 이번에는 오페라 '류관순' 이 탄생했다. 이미 잘 알려진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면 스토리 텔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주인공의 파란만장한 생애 자체가 주는 감동을 넘어 작품의 전체적 짜임새가 주는 예술적 감흥으로 이어지려면 대본.음악.연출에서 고도의 예술성이 필요하다.

고려오페라단이 지난 2~6일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올린 오페라 '류관순' (대본 윤대성.작곡 박재훈.연출 배윤호) 은 3.1절과 유관순 열사 순국 80주기라는 추모행사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었다.

서막과 피날레를 비롯해 1, 2막이 합창 위주로 꾸며져 있어 마치 유관순 추모 칸타타 같은 구성이었고 뉴서울필하모닉(지휘 이기균) 의 치밀하지 못한 앙상블 탓이기도 하겠지만 전체적으로 관현악 편곡은 엉성했다.

연극 대본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대사는 오페라의 러닝타임에 비해 너무 길었다. 그래서 아리아와 레시터티브의 구분이 애매해 아리아에 대한 집중력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았다. 유관순 열사의 애국혼과 신앙.사랑 중 어느 한쪽에 집중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주역 가수 2명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향도 두드러졌다. 4일 공연에서 소프라노 김인혜(유관순 역) 가 부른 '이 민족을 구하소서' , 테너 박치원(유관순을 사랑하는 동네 오빠 이창환 역) 이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사한 유관순의 시신을 붙들고 부르는 '아, 관순아' 정도가 인상적이었고 나머지는 가사를 급히 주워담기에 급급한 노래들 뿐이었다.

빈약한 무대를 가리기 위한 스포트라이트의 남발에도 불구하고 밧줄과 비좁은 창문으로 감옥의 답답함을 잘 형상화한 3막 서대문 형무소 무대는 수준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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