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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 희생 제단에 목을 바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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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철호
논설위원

진실의 반대는 거짓이 아니다. 망각(忘却)이다. 많은 문제가 해결되기보다 잊혀지면서 끝난다. 연초부터 우리 사회에 숱한 쓰나미가 몰려왔다. 거센 파도가 할퀴고 간 자리에 남은 진실이 문득 궁금해진다. 불과 100여 일 전의 일본 원전사고를 기억하시는지? 방사능 괴담으로 야단법석이 났다. 경기도와 전북은 교육감 지시로 학교들이 재량 휴업에 들어갔다. 전국의 상수도 사업장은 모두 대형 비닐을 덮어씌웠다. 민주당 이미경 의원은 “4월의 편동풍과 여름 태풍을 타고 방사능이 날아올 것”이라 예언했다.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은 오늘도 비상근무를 한다. 전국 71곳에서 5분마다 방사선량을 측정하고, 매일 공기 중 시료를 체크한다. 잠시 극미량의 세슘·요오드가 검출된 것을 제외하면 석 달 내내 측정치는 전혀 이상이 없었다. 태풍 메아리 때도 ‘이상 무(無)’였다. 이미 미국·중국·러시아 기상청은 평상 근무로 돌아간 지 오래다. 방사선 측정주기는 15분, 대기 시료는 한 달에 한번 체크로 끝낸다. 당사국인 일본을 제외하면 한국만 유일하게 전시체제다. 이동명 방사능탐지분석실장은 “매일 방사능 영향이 없다는 것 자체를 반복적으로 분석한다”고 했다. 그에게 기한을 묻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우리 사회가 방사능 괴담을 잊을 때까지.”

 연초의 KAIST 학생 자살 사태도 마찬가지다. 당시 학생식당에는 “비인간적인 무한경쟁, 우리는 행복하지 않다”는 대자보가 나붙었다. 온갖 비난이 쏟아졌다. 궁지에 몰린 KAIST 는 차등등록금을 없애고 영어 강의도 손질했다. 우리 사회의 기억은 딱 여기까지다. 하지만 이후 예상과는 다른 현실이 펼쳐지고 있다. 지난 4월 연쇄자살의 비극 속에서 KAIST는 외국 고교 졸업생을 모집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정반대로 엄청나게 우수한 학생들이 몰려든 것이다.

 올해 합격생 80명의 미국 대학수학능력시험(SAT) 평균 점수는 2185점(2400점 만점). 미 명문대인 매사추세츠공대(MIT)와 맞먹는 수준이다. 영어 독해는 20점 낮았지만, 수학은 MIT보다 오히려 20점 높았다. SAT 2380점을 받은 학생도 면접에서 떨어졌다. 상당수 합격자는 프린스턴·MIT·칼텍·코넬대에 동시 합격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입학허가서를 찢고 KAIST 에 온 학생도 있었다. 면접을 담당한 윤달수 입학사정실장은 “외국 학부모들의 반응은 예상과 정반대”라고 전했다. ‘더 철저하게 공부시켜 달라’는 쪽이었다. 진실은 이렇게 뒷모습을 봐야 제대로 보이는 법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또 하나의 쓰나미를 경험하고 있다. 거대한 포퓰리즘이다. 프로 바둑의 세계에서 가장 금물은 손 따라 두는 바둑이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 정치권은 변덕스러운 대중의 정서에 너무 쉽게 따라간다. 집권여당조차 우르르 ‘반값 등록금’과 ‘무상급식’에 투항했다. 복지의 사각지대는 일부러 외면한다. 있는 집 아이들이 학교 매점에서 마음껏 ‘먹고 싶은 것’을 살 때 ‘살 수 있는 것’만 사거나 발길을 돌리는 가난한 아이들은 잊고 있다. 그나마 8월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붙잡고 있는 오세훈 서울시장이 새삼 돋보인다. 그는 한나라당 지도부와 친박 진영마저 등을 돌리면서 계륵(鷄肋) 신세가 됐다.

 오 시장의 소신이 섣부른 자충수인지, 대권을 향한 정치 흥행 카드인지 판단하기 쉽지 않다. 다만 모두가 “당신들을 모두 행복하게 해주겠어!”라고 외치는 세상이다. 이럴 때 누군가는 “용기와 희망, 그리고 아주 약간의 돈만 있어도 살아갈 수 있다”고 목소리를 내야 한다. 쓰나미 뒤의 불편한 진실을 생각하면 포퓰리즘의 제단에 자신을 희생하는 것도 값진 일이다. 주민 투표율 33%에 오 시장의 정치적 목숨이 걸려 있다. 생사의 기로에 선 그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다. 대학로의 연극 ‘염쟁이 유씨’에 나오는 이야기다. “공들여 쌓은 탑도 언젠가 무너지겠지. 그래도 끝까지 무너지지 않는 건 그 탑을 쌓으면서 바친 정성이여. …죽는다고 무서워 마시게. 잘 사는 게 더 어렵고 힘든 세상이여….”

이철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