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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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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1925년 봄, 베이징여자사범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40대의 루쉰(魯迅, 1881~1936)은 17년 연하의 여제자에게 연정(戀情)을 품었다. “때때로 상념이 생겨납니다. 상념의 강도가 자꾸만 거세지는데 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중국 민족 개조론을 주창한 당대 최고의 사상가 루쉰은 제자 쉬광핑(許廣平, 1898~1968)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나는 작은 고슴도치, 당신은 작은 연꽃송이”라는 애교스러운 표현도 있다. 그는 ‘상념’에 잡혀 170여 통의 연애편지를 보내며 사랑의 불꽃을 태웠다. 결국 쉬광핑과 새 가정을 꾸리고 생애 마지막 10년을 함께 보냈다. 기혼과 미혼, 스승과 제자, 나이 차, 관습을 뛰어넘을 수 있었던 힘은 “동지적인 연애”였다고 쉬광핑은 회고했다.

 25년 전인 1986년 한국의 늦가을, 군사 권위주의가 억누르고 있었다. 그때 한 편의 시(詩)가 대중의 심금을 울렸다. 영원히 작별해야 하는 부인에 대한 애틋하고 애잔한 정(情)을 담아낸 시였다. ‘이제 또 한 번의 저무는 밤을 어둠 속에서 지우지만/이 어둠이 다하고 새로운 새벽이 오는 순간까지/나는 당신의 손을 잡고 당신 곁에 영원히 있습니다.’ 30대 초반의 시인 도종환의 ‘접시꽃 당신’은 암울한 시대상황 속에서도 사랑을 갈구하는 우리의 감성을 촉촉히 적셨다.

 사랑만큼 인간을 고뇌와 행복에 빠지게 하는 열정은 없을 것이다. ‘호모 에로스’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작은 죽음(le petit mort)’을 경험하는 게 사랑이라고 프랑스의 소설가 조르주 바타유(Georges Bataille, 1897~1962)는 단언했다. “모든 욕망이 통제를 벗어나 흥건히 분출되는 망아(忘我)적 현상”이 연인의 육체적 오르가슴이며, 이는 거듭남으로 이어지는 작은 죽음과 흡사하다는 것이다.

 제 짝을 찾지 못하는 고학력·고소득의 ‘골드 미스’가 늘고 있다. 남성의 학력과 지위가 자신보다 나아야 한다는 전통적 결혼관이 걸림돌이다. 학벌, 재력, 용모를 지나치게 따지는 타산적인 사랑은 짝짓기를 어렵게 한다. 사랑은 ‘버림’이라고 했다. “내가 오직 나만을 위한 독립적인 인격이기를 바라지 않는 것”이라고 철학자 헤겔은 주문한다. 고구려 시대 바보 온달에게 시집간 평강공주, 미용사와 동거하는 줄리아 길라드 호주 총리에게 짝의 기준은 무엇이었나. 피고 지는 꽃처럼 청춘도 한때라고 했는데.

고대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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