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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아시스 4집〈스탠딩 온 더…〉

중앙일보

입력

순악질 여사도 울고 간다는 막강 눈썹의 두 형제 노엘 갤러거(Noel Gallagher, 보컬/기타)와 리엄 갤러거(Liam Gallegher, 보컬)의 독재 하에 굴려지고 있는 밴드 오아시스는 지난 세기 록 음악계가 남긴 최고의 걸작품이다.

브릿 팝과 신스 팝 계보의 맨 윗전을 차지하는 두 그룹 스미스(THE SMITHS)와 뉴 오더(NEW ORDER)를 배출해낸 영국 음악계의 성지(聖地) 맨체스터의 유니크한 발견물로, 90년대 브릿 팝/록계의 춘추전국 시대를 평정해버린 오아시스는 천만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그 뛰어난 음악성보다는 갤러거 형제의 기행과 독설, 갖가지 해프닝으로 더 유명한 그룹이다.

'변변한 히트 곡도 못내는 노땅 뮤지션들은 후배들의 앞 길을 막지 말고 그만 사라져 주시지'라는 독설은 물론이거니와 '이렇게 말하면 건방지다고 하겠지만 어쨌든 오아시스는 지구 최고의 밴드다'라고 건방진 태도와 두둑한 자신감을 내세우며 언론과 동료 뮤지션들을 향해 한 목소리를 내는 그들이지만 '총기 사용이 자유로운 미국에서 살았다면 리엄의 머리통을 날려버렸을 거다' 내지 '리엄을 밴드에서 내쫓고 싶지만 그 녀석을 애지중지하시는 어머니가 날 죽이려 드실 것 같아 그렇게 못한다'는 노엘 갤러거의 발언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서로를 잡아먹지 못해 앙앙거리는 이 두 형제의 노골적인 감정 대립은 데뷔작 발매 직후부터 끊임없이 밴드의 존속을 위협해왔다.

1992년, 리엄 갤러거와 폴 '본헤드' 아더스(Paul 'Bonehead' Arthurs, 기타), 폴 '귁스' 맥귀건(Paul 'Guigs' McGuigan, 베이스)과 토니 맥캐롤(Tony McCarroll, 드럼)에 의해 운영되던 카피 밴드 레인(RAIN)에 뛰어난 작곡가이자 프로듀서, 그리고 실력 있는 기타리스트 노엘 갤러거가 가입함으로써 탄생한 그룹 오아시스는 1993년, 그들의 라이브를 보고 한 눈에 반한 크리에이션(Creation) 레코드사 사장 앨런 맥기(Alan McGee)에게 전격 발탁, 발매 첫 주에 영국 앨범 차트 정상으로 진입한 데뷔작 [Definitely Maybe]('94)를 발매하며 영국 음악계의 미래를 짊어질 최고의 신인 밴드로 낙점 받았고 'Wanderwall'과 'Champagne Supernova' 등의 히트곡을 배출하며 미국에서만 4백만 장 이상을 판매고를 올린 두 번째 앨범 〈(What's The Story) Morning Glory?〉('95)를 통해 세계적인 스타급 반열에 올라섰다.

하지만 3집 〈Be Here Now〉('97)는 전세계적으로 6백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전작의 성공에 훨씬 못 미치는 결과를 낳으며 밴드를 크게 실망시켰고 오아시스가 신작에 대한 방향성으로 고심하는 동안 B-사이드 싱글 곡들을 간추린 비정규 앨범 〈The Masterplan〉('98)이 그들의 근황을 대신했다.

2파운드 짜리 동전에 새겨진 아이작 뉴튼(Isaac Newton)의 문구를 앨범명으로 사용한 4집 〈Standing On The Shoulder Of Giants〉는 또 다른 모습으로 거듭나는 오아시스의 새로운 출발점이다. 이 앨범을 마지막으로 오리지널 멤버 '본헤드'와 '귁스'가 탈퇴하며 오아시스는 데뷔작 발매 후 영입된 드러머 앨런 화이트(Alan White)를 비롯하여 헤비 스테레오(HEAVY STEREO) 출신의 기타리스트 젬 아처(Gem Archer)와 라이드(RIDE)의 베이시스트 앤디 벨(Andy Bell)을 백그라운드에 거느린 새로운 진용을 갖추게 되었고 그들의 모든 앨범을 제작했던 오웬 모리스(Owen Morris)의 품을 떠나 유투(U2)와 마돈나(Madonna), 매시브 어택(MASSIVE ATTACK)의 프로듀서로 유명한 마이크 '스파이크' 스텐트(Mike 'Spike' Stent)와 손잡으며 신작의 새로운 방향성을 모색했다. 또한 이 앨범은 리엄 갤러거가 최근 설립한 인디 레이블 빅 브라더(Big Brother)의 첫 발매작으로서 그 의미를 더한다(리엄이 인디 레이블 설립에 열을 올리는 동안 노엘은 오아시스의 옛 엔지니어였던 마크 코일과 베이시스트 폴 스테이시와 결탁, 사이드 밴드 '테일거너'(TAILGUNNER)를 결성했고 곧 데뷔작을 발매할 예정이다).

비틀즈의 광신도들답게 그간 오아시스가 발매한 작품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확고한 로큰롤 지상주의였다. 하지만 케미컬 브라더스(CHEMICAL BROTHERS)나 골디(Goldie) 같은 테크노 계열 아티스트와의 작업이 노엘 갤러거에게 상당한 영향을 주었는지 이 앨범을 통해 들려지는 사운드는 좀 별나다. 발매되자마자 영국 싱글 차트 정상에 오른 첫 싱글 'Go Let It Out'이나 로큰롤의 왕성한 원기를 그대로 전하는 'I Can See A Liar', 2집의 'Don't Look Back In Anger'처럼 노엘 갤러거의 보컬이 감동의 홍수를 일으키는 'Where Did It All Go Wrong', 그리고 리엄 갤러거가 가사를 붙인 첫 번째 작품으로, 자신의 의붓아들 제임스 커(James Kerr:지난 10월, 리엄의 아들 레넌 프랜시스 갤러거를 출산한 부인 팻시 켄지트의 아들)에 대한 사랑을 부드러운 어조로 노래한 'Little James'처럼 오아시스 본연의 사운드를 즐길 수 있는 곡들도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다큐멘터리 필름 'The Isle Of Wight Festival'('70)에 영감 받아 만들었다는 인스트루멘틀 트랙 'Fucking In The Bushes'와 노엘 갤러거가 태국에 머무르는 동안 작곡했다는 사이키델릭 넘버 'Who Feels Love', 노이지한 키보드 선율과 퍼즈 톤의 기타 리프로 이끌어지는 'Put Yer Money Where Yer Mouth Is'와 몽환적인 터치로 그려진 'Roll It Over' 등 다양한 샘플링과 다량의 신서사이저 음향을 도입한 이들 트랙들에서는 비틀즈의 정통 로큰롤 사운드를 테크노/앰비언트의 방법론으로 풀어나가는 밴드의 실험적 터치가 빛을 발한다.

'만약 내가 남들보다 멀리 볼 수 있다면 그건 거인의 어깨 위에 서있기 때문일 것이다'라는 아이작 뉴턴의 말처럼 거인의 어깨 위에서 세상의 저 먼을 바라보고 있는 앨범 〈Standing On The Shoulder Of Giants〉를 통해 오아시스는 한 차원 진일보한 사운드의 세계로 첫 발을 내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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