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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환영의 시시각각

체벌과 다원주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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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김환영
중앙SUNDAY 사회에디터

잘못을 저질렀으면 그에 따르는 값을 치러야 한다는 생각은 동서양 공통이다. 죗값을 치르는 유력한 방법 중 하나는 몸에 고통을 주는 체벌이다. 전통적으로 체벌을 행사해온 주체는 국가·학교·가정이다.

 체벌을 없애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해온 것은 서구(西歐)다. 서구에는 체벌권을 행사하는 기관이 하나 더 있었다. 바로 교회다. 서구인들에게 죗값은 죽어서도 치러야 하는 것이었다. 15세기 말 대량으로 발행된 면벌부(免罰符)만 해도 죗값을 면제해 주는 조건 중 하나라서 인기가 있었다.

 근대화와 세속화 과정을 거치며 지옥과 천국의 구별은 불투명해졌다. 만민구원설(萬民救援設)은 궁극적으로 누구나 구원받는다고 주장했다. 지옥도 ‘살 만한 곳’이 됐다. 지옥과 천국의 차이는 신(神)으로부터 분리되느냐 아니냐의 차이일 뿐이라는 신학도 등장했다. 지상에서 지옥과 가장 비슷한 곳은 감옥이다. 지옥과 마찬가지로 감옥도 점점 ‘살기 좋은 곳’이 돼갔다. 스웨덴의 교도소 생활은 ‘천국’을 방불케 한다는 평가도 있다.

 대부분의 국가는 형사제도에서 체벌을 추방했다. 상당수 선진국은 학교뿐만 아니라 가정에서까지 체벌을 금하고 있다. 미국도 체벌 문제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상당수 심리학자·교육학자·운동가들이 ‘모든 종류의 체벌은 나쁘다’며 체벌 반대 운동을 전개해 왔다.

 체벌금지가 역사의 대세인 것처럼 보이지만 체벌 옹호론도 소멸된 것은 아니다. 최근 두 가지 사례가 주목을 받았다. 피터 모스코스라는 경찰 출신 학자는 『매질옹호론』이라는 책을 썼다. 모스코스 교수는 ‘살점이 떨어져 나갈 수도 있는’ 매질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는 현재의 미국 교도소 제도보다 싱가포르 등의 국가들이 실시하고 있는 ‘매질(flogging)’이 더 효과적이며 더 인간적이라고 주장한다. 5년 형에 처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매질 10회가 더 낫다는 것이다. 모스코스 교수는 230만 명이나 되는 사람이 교도소 생활을 하고 있는 미국에서 교도소는 가정을 파괴하고 범죄자를 훈련시키는 비인간적인 산업이 됐다고 지적한다.

 두 번째 주목할 만한 사례는 뉴올리언스에 있는 세인트어거스틴 고등학교에서 발생한 사건이다. 성요셉성심회에서 운영하는 이 학교는 최근까지 60년 동안 학생들을 체벌하는 전통이 유지됐다. 최근 이 고등학교의 존 래피얼 이사장이 다른 곳으로 전출됐다. 체벌을 없애라는 그레고리 에이먼드 대주교의 요구에 래피얼 이사장이 반발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학교 학생회의 반응이다. 나무로 만든 노로 엉덩이를 때리는 체벌(paddling)이 현실 세계에서 필요한 규율 정신을 배우는 데 필요하다며 체벌의 부활을 요구한 것이다.

 미국 사례로부터 참조할 만한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다원주의다. 다원주의는 개인·집단이 기본으로 삼는 원칙·목적이 서로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태도다. 다원주의가 정착하면 다원주의로부터 융통성도 발휘될 수 있다. 미국에서 21개 주는 학교 체벌을 허용하고 29개 주는 금지한다. 노스캐롤라이나주의 맥도웰카운티 같은 경우는 학생들에게 체벌을 가할 것인지를 학부모에게 직접 결정하게 한다.

 미국의 ‘천천히 정신’도 참조할 만하다. 형사상 체벌이 처음 없어진 것은 1790년 펜실베이니아에서다. 마지막으로 폐지된 곳은 1972년 델라웨어주다. 태형이 사문화된 지 20년이 흐른 다음이었다. 미국은 그 어느 나라보다 학교 체벌에 대한 연구를 많이 한다. 그러나 미국이 학교 체벌을 완전히 없애기 전까지 상당한 시일이 필요할 것이다.

 학교 체벌 금지라는 교육정책의 방향 자체에 대해서는 누구도 반대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 학교 현장에서 발생하고 있는 사례들은 체벌 금지로 나아가는 방법과 속도에 수정이 필요할지 모른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교육현장에서 체벌을 몰아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다원주의와 융통성이다.

김환영 중앙SUNDAY 사회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