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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우리금융 매각 무산이 호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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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한애란
경제부문 기자

우리금융지주 매각이 사실상 물 건너갔다. 20일 신제윤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국회가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따르겠다”며 금융지주회사법 시행령 개정을 포기했다. 금융지주사가 다른 금융지주를 인수할 때 보유지분 하한선을 95%에서 50%로 낮춰주려던 계획을 철회한 것이다. 이미 입찰에서 빠진 산은금융지주는 물론, 다른 금융지주사도 우리금융 인수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지난해 말에 이어 6개월 만에 두 번째 매각 무산이다.

 금융당국이나 공적자금관리위원회로선 난감하게 됐다. 무리하게 민영화를 추진하다 정치권의 저항에 부닥쳤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지금 봐선 다음 정권 이후로 미뤄질 거란 전망이 더 그럴듯해 보인다.

 그런데 시장 반응은 다르다. 민영화 무산 소식을 기다렸다는 듯 우리금융 주가는 급등했다. 21일 우리금융 주가는 전날보다 4.84% 오른 1만3000원으로 장을 마쳤다. 하루 새 오른 폭으론 올 들어 가장 크다. 보통 인수합병(M&A) 기대감은 인수 대상 회사 주가를 끌어올리고, M&A 무산은 주가에 부정적인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우리금융은 반대였다. 매각이 개시됐던 지난달 1만3550원에서 줄곧 하락했다. 교보증권 황석규 연구원은 이렇게 설명했다. “민간이 경쟁적으로 참여하는 M&A였다면 당연히 주가가 많이 뛰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관이 주도하다 보니 주가에 마이너스다.” 어차피 정부가 정해놓은 게임인 만큼 가격 급등을 기대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공정한 경쟁이 이뤄질 것”이라던 김석동 금융위원장의 말을 애초 시장은 믿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날 주가 상승엔 매각 무산을 반기는 보고서도 한몫했다. 이트레이드증권은 이날 우리금융 투자의견을 ‘중립’에서 ‘매수’로 상향 조정했다. “민영화 방안이 여전히 표류 중이지만 금융당국의 시행령 개정 포기로 최악은 끝났다”는 게 이 회사 하학수 연구원의 주장이다. 무디스 역시 “산은지주의 우리금융 입찰 참여 무산은 우리금융과 전체 은행권 신용도에 긍정적”이라고 평했다.

 그동안 김석동 위원장은 “민영화를 통해 우리금융지주의 기업가치를 극대화할 것”이라며 의지를 다져왔다. 위원장의 말과 따로 노는 우리금융 주가, 그 이유를 한번 금융위가 곱씹어봐야 할 때다.

한애란 경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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