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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에 처한 한·미 자유무역협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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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마이클 그린
미국 CSIS 고문

몇 달 전부터 미 정부 고위관리들은 재계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올해 안에 의회에서 비준될 것이라고 말해 왔다. 이들은 한·미 FTA가 미국의 아시아 전략에 핵심적이라는 입장이다.

 FTA는 전략적으로 한·미동맹을 굳건하게 만들 것이며, 아시아 신흥경제가 중국 중심의 동아시아 블록으로 통합되기보다 범태평양 교역에 더 연계되도록 할 것이다. 또 높은 수준의 무역자유화의 기준이 될 것이다. 정치적으로 FTA는 미국의 수출과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오바마 대통령의 의지를 가늠하는 리트머스 시험지이기도 하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후보 시절 한·미 FTA에 반대했다. 얼마 전 백악관 경제자문회의 의장직에서 물러난 오스틴 굴스비는 2008년 선거 캠프 참모 시절 캐나다 외교관에게 오바마 대통령이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기반인 노동조합의 지지가 필요하기 때문에 보호무역주의자인 것처럼 행동할 뿐이라고 말했다가 쫓겨날 뻔했다. 2008년 당시 매케인 후보를 돕고 있던 필자가 오바마 후보 진영을 가장 공격하기 쉬웠던 이슈가 FTA였다. 오바마 캠프 참모들 모두가 개인적으로는 매케인 후보의 의견에 동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오바마 대통령이 2009년 11월 한국을 방문한 뒤 한·미 FTA를 강력히 지지하고 나섰다. 이명박 대통령의 강력한 한·미동맹 수호 의지를 목격한 뒤였다. 이후 후속협상은 어려운 과정이었지만 내실 있게 진행됨으로써 백악관이 진정으로 전략적·경제적·정치적으로 한·미 FTA의 성공을 원한다는 것을 미 행정부 관리들 모두가 알게 됐다.

 그러나 한·미 FTA 비준을 둘러싼 워싱턴 정가의 기류가 급변했다. 공화당이 지배하는 의회는 오바마 대통령에게 한·미 FTA를 파나마 및 콜롬비아와의 FTA 법안과 함께 제출해 달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백악관은 민주당 의원들을 설득해야만 한·미 FTA를 통과시킬 수 있지만 공화당은 쉽게 통과시킬 수 있는 의석을 확보하고 있다. 1993년 빌 클린턴 대통령이 공화당의 도움을 얻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통과시킬 당시와 비슷한 상황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백악관이 한·미 FTA 비준을 머뭇거리고 있는 것이다. 바로 민주당 의원들이 한·미 FTA 비준의 조건으로 공화당에 ‘무역지원조정제도(TAA) 연장 동의’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TAA는 기본적으로 자유무역협정에 불만인 노동조합원들에게 주는 뇌물과 같은 것이다. TAA는 노동자들이 외국과의 경쟁으로 인해 일자리를 잃었을 때 최대 156주 동안 보조금을 받게 하는 제도다. 그 시한이 올해 만료됨에 따라 노동조합은 FTA비준안을 행정부가 의회에 제출하기 전에 TAA 연장법안을 의회에서 통과시키도록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TAA 연장에 강력히 반대하는 공화당은 노동조합의 요구에 맞서기 위해 행정부가 한·미 FTA 등의 비준안을 조건 없이 의회에 제출하기 전에는 상무장관 지명자(존 브라이슨) 인준청문회를 열지 않을 것이라고 위협하고 있다. 공화당은 시장경쟁으로 인한 노동자의 피해를 정부가 지나치게 보상하는 것에 반대한다. 시장경쟁으로 인한 피해를 정확히 측정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전체 노동자의 6.9%에 불과한 노조원들에 의해 악용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정부채무한도 증액 문제를 둘러싸고 공화당이 지배하는 의회와 백악관이 대립하고 있는 상황도 중요하다. 공화당은 정부채무한도 증액에 앞서 대폭적인 예산 감축을 요구하고 있으며, TAA는 예산 감축에 결정적인 걸림돌이다. 결국 한·미 FTA가 워싱턴 정가에서 아무리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2012년 대선 정국에서 핵심 이슈가 될 정부채무한도 증액 문제에 밀릴 가능성이 크다.

 미 재계는 한·미 FTA를 비준하기 위해 상징적 수준에서 TAA 연장에 동의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반면 오바마 대통령은 2012년 대선에서 노동조합의 지지를 얻기 위해 TAA 연장을 강력히 지지하고 있다. 오바마의 이런 입장은 경제 성장과 일자리 확대라는 보다 큰 전쟁에서 공화당에 밀릴 위험성을 안고 있다.

 나아가 백악관의 캠페인 ‘아시아로의 복귀’는 물론 다른 나라들과의 FTA 체결 가능성마저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 따라서 오바마 대통령에게 한·미 FTA 비준 문제는 정치적·전략적·경제적 이해관계 모두에서 큰 도전이 되고 있다.

마이클 그린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일본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