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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금 내릴 수 있다 ⑥ 13개 부실대학 세금 낭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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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13개 부실대학 실태

지방 4년제 D대는 2년 전 강의실이 절반가량 남아돌았다. 지금도 사정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당시 재학생 충원율은 59.1%, 신입생 충원율은 39%에 불과했다. 등록금 외에는 달리 수입이 없었기 때문에 등록금 의존율은 90.4%에 달했다. 이 대학은 학생 수를 부풀리려 2008년 입학전형 계획에 없던 유학생 27명을 정원 내로 입학시키는 편법을 동원했다. 자퇴한 학생을 신입생 충원율에 포함시키기도 했다. 교직원과 직계 가족 19명에게는 장학금을 주고 입학시켰지만 1년 후 모두 그만뒀다.

 국내 처음으로 교육과학기술부가 2009년 12월 선정한 ‘경영 부실 대학’의 실태는 대학 부실 경영의 종착역이 어디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 주고 있다. 이들 대학은 공통적으로 학생 모집에 애를 먹고 있었고, 온갖 편법과 불법을 동원해 허위 학생을 등록하거나 외국인 유학생을 유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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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등록금 의존율을 높여 교육 여건을 악화시키는 악순환을 낳고 있었다. 이들 대학에 정부 지원금이 가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나올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지방 4년제 A대는 신입생 충원율을 높이기 위해 172명을 리콜장학생·만학도장학생 등의 명목으로 허위 입학시켰다가 교과부 감사에 적발됐다. 이 대학은 허위 입학생이 실제 학교에 다니는 것처럼 보이려고 수강 신청과 성적 처리를 한 뒤 제적시키는 방법을 썼다. 지방 2년제 I대는 자퇴한 학생 10명이 재학 중인 것처럼 등록학생 수에 포함시켰다. 지방 2년제 J대는 무기한 휴학을 허용해 신입생과 재학생 중 30대 이상 만학도 비율이 70~80%에 달하고 있다.

 재단 전입금이나 국고 보조금, 기부금 부족도 심각했다. 이런 대학들은 재원 확보를 위해 과도하게 외국인 유학생을 뽑거나 수용 능력을 초과하는 시간제 수업을 운영했다. A대는 2009년 1학기부터 시간제 수업 수강생 8000명을 끌어모았는데, 등록금 수입(22억원)보다 시간제 수강료 수입이 8억원가량 더 많았다. 유학생들은 이탈률이 많았다. 지방 L대(2년제)에서 2년간 외국인 유학생 85명 중 80명이 빠져나가 이탈률이 94.1%에 달했다.

 학생 충원이 어렵자 장학금 지급을 남발하기도 했다. 지방 E대는 2008년 신입생 중 장학생 비율이 99.1%였다. 교직원 임금 체불과 공사비 미지급금 등 재정 압박이 극심했던 상태에서였다. 이들 대학은 결국 퇴출되지 않은 채 살아남아 등록금에 의존해 학교를 유지했다. 13개 경영 부실 대학 가운데 등록금 의존율이 90%를 넘는 곳은 8곳에 달했다.

 교육의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대학 자체 수업 점검 결과 절반가량의 강의가 실제 이뤄지지 않거나(G대), 출석을 조작해 주고 똑같은 실험보고서를 제출해도 묵인해 주며 B학점 이상이 93%에 달하도록 한 곳(J대)도 있었다. 4년제 B대에서는 전임교원이 주당 강의해야 하는 시간이 1~3시간에 불과했다.

 불투명한 예산 관리는 등록금 인상을 부채질했다. I대는 교비회계 수입금을 법인회계로 대여하다 감사에 적발됐고, 지방 4년제 C대에서는 한국사학진흥재단으로부터 융자금을 받아 전 총장이 개인 용도로 사용한 것이 확인됐다. 교과부 관계자는 “경영 부실 대학에 포함된 대학 중 일부는 개선 노력을 거쳐 경영 상황이 나아진 경우도 있다”며 “앞으로도 주기적으로 경영 진단과 실태조사를 실시해 대학 구조조정을 촉진하겠다”고 말했다.

왜 이 지경까지 왔나

4년제 일반대인 E대는 2009년 한 해 동안 정부로부터 27억여원을 국고보조금으로 받았다. 각종 사업 지원금이 대학의 전체 수입 중 16%를 차지하는 큰 금액이다. 하지만 이 대학은 그해 연말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경영 부실 대학으로 지정됐다. 부실 대학으로 지정된 뒤엔 국고 지원 대상에서 제외됐으나 그 직전까지 국민 세금이 들어간 것이다. 이 대학 관계자는 “중소기업청에서 창업보육센터 건물을 짓는 사업비 보조비로 국고보조금을 받았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청 지원을 받은 대학이 연말엔 교과부로부터 부실 대학으로 꼽힌 셈이다. B대 역시 그해 10억원을 받고 연말에 경영 부실 대학으로 분류됐다.

 이처럼 부실대학이 연명하는 과정에서 정부도 세금으로 이들 대학을 지원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2007년부터 2009년까지 3년간 부실 대학에 들어간 국고보조금 총액은 126억6000여만원에 이른다. 본지 취재팀이 대학알리미 공시 사이트를 통해 13개 대학 교비회계(결산자료)에 들어간 국고보조금 현황을 분석한 결과다.

 13개 대에 들어간 국고보조금 액수는 해마다 불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 대학의 국고보조금 총액은 2007년 15억원이었으나 불과 2년 만인 2009년엔 86억원으로 불어났다. 부실 판정이 나지 않았다면 국고 지원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도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같은 현상은 정부 각 부처가 대학을 대상으로 경쟁적으로 각종 재정지원 사업을 벌이면서 나타난 부작용이라는 게 대학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올해 교과부로부터 재정지원사업금을 받는 한 사립대 관계자는 “교과부는 지식경제부 지원 사업을 모르고, 지식경제부는 교과부 사업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잘 모른다”고 지적했다. 이러다 보니 한쪽은 돈을 주고, 한쪽은 부실 대학으로 지정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에 대해 독고윤 아주대 경영대 교수는 “국민이 낸 세금이 부실 대학 연명 자금으로 줄줄 새는 건 큰 문제”라고 말했다.

 특히 경영 부실 대학으로 지정된 13개 일반·전문대 가운데 7개 대는 대학 설립이 자율화된 1995년 이후 설립됐다. 대학 설립 자율화란 당시 김영삼 정부가 도입한 대학설립준칙주의(일정 기준만 만족시키면 대학 설립인가를 내주는 제도)를 말한다. 정부가 대학 설립 인가권을 행사하다 일정 기준만 충족하면 인가를 내주는 방식으로 전환한 것이다. 이러한 대학설립준칙주의로 인해 신생 대학이 우후죽순처럼 등장했다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이 바람에 4년제대는 자율화 이후 95년 108개에서 현재 196개로 폭증했다.

 교과부 고위 관계자는 “당시 문교부는 설립준칙주의가 도입되면 대학이 대거 생겨난다고 반대했으나 총리실 규제개혁위원회가 자율화 논리를 내세워 제도 도입을 관철시켰다”고 말했다.

 이처럼 대학 숫자가 늘어나면서 고교 졸업생을 충원하기 힘든 지방 대학들은 자연스럽게 경영난을 겪게 됐다. 인구 감소로 인해 학생 수는 줄고 있는데도 부실 대학은 문을 닫지 않고, 대학 수는 여전하기 때문이다. 충청권 이남 대학에서는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대학들이 속출하고 있다. 특히 앞으로 저출산 여파로 2017년엔 대학 정원 수가 고교 졸업생 수보다 많아진다.

 이번 실태 조사 결과 13개 부실 대학의 재학생 충원율은 평균 59.7%에 불과했다. 정원의 절반을 채우는 데도 허덕이고 있는 것이다. 교과부는 이에 따라 이들 대학의 정원을 감축하고, 주변 대학과 통폐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거부하는 대학에 대해 학교 폐쇄도 검토하고 있다.

 교과부 관계자는 “부실 대학에서 나타난 문제점은 앞으로 국내 대학들이 겪게 될 미래의 고민이 될지도 모른다”며 “대학의 자구노력을 촉구하면서 부실 대학에 대해 구조조정에 나서는 이유”라고 말했다.

연말까지 경영 정상화 못하면 13개 부실대학 강제 폐쇄

재학생 피해 우려 이니셜 보도

중앙일보 실태 보도 배경은

중앙일보가 그간 정부에서조차 공개를 꺼려 온 13개 경영 부실 대학의 실태를 처음으로 공개하는 이유는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켜 향후 신입생과 학부모 등의 피해를 최소화하겠다는 공익적 측면이 크다. 다만 현재 재학 중인 학생과 학부모 등의 불이익을 우려해 관련 대학들의 이름은 이니셜로 표기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2009년 12월 구조조정 대상으로 추려낸 13개 경영 부실 대학은 한계 상황에 도달한 대학들이다. 정부는 이들 대학이 올 연말까지 학교 경영을 정상화하지 못하면 학교를 폐쇄하겠다고 공언했다. 사상 처음으로 대학 문을 폐쇄하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 방안이다.

 그러나 교과부는 현재까지도 법적 근거가 없어 부실 대학 명단을 공개하지 못하고 있다. 대신 지난해 취업 후 학자금상환제(ICL)를 도입하면서 “부실 대학에 학자금 대출을 제한할 수 있다”는 규정을 마련해 해당 대학 23곳을 발표했다. 학자금 대출 제한 대학을 통해 부실 대학을 간접적으로 공표한 것이다. 교과부는 경영 부실 대학과 학자금 대출 제한 대학을 연계해 구조조정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입장이다.

특별취재팀=강홍준(팀장)·김성탁·박수련·윤석만·강신후·김민상 기자

중앙일보 등록금 낮추기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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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액의 대학 등록금 내릴 수 있습니다. 대학의 자구 노력이 우선돼야 합니다. 정부 재정지원은 그 다음입니다. 그래야 국민 세금 부담을 덜고 안정적인 등록금 인하가 가능합니다. 교수·학생·학부모가 모두 머리를 맞대야 합니다.

대학의 불투명한 회계와 낭비 요소의 현장을 신고해 주십시오. 중앙일보가 취재해 드리겠습니다. e-메일(school@joongang.co.kr)과 트위터(http://twitter.com/tuitionreduce) 계정을 열었습니다. 전화는 02-751-5442, 5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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