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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 베이너 하원의장…미국 첫 ‘정적과의 골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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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존 베이너 하원의장이 18일 골프 회동을 한다. 왼쪽 사진은 2009년 콩그레셔널 컨트리클럽에서 열린 AT&T 프로암 골프 토너먼트대회에 참가한 베이너가 퍼팅하는 모습. 오른쪽은 2008년 12월 오바마가 크리스마스 휴가 도중 하와이에서 골프를 즐기는 장면. [AP=연합뉴스, 중앙포토]


미국에서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대통령과 존 베이너(John Boehner) 하원 의장의 18일(현지시간) 골프 회동이 화제다. 뉴욕 타임스(NYT)는 이를 ‘골프 정상회담(golf summit)’이라고 불렀다. 민주당 1인자(오바마)와 공화당 1인자(베이너)의 만남이란 점을 부각한 것이다.

바이든 부통령

 오바마의 제안과 베이너의 화답으로 성사된 이번 골프 회동은 여러모로 이례적이다. 우선 미국 대통령 역사상 최초의 ‘정적(政敵)과의 골프’로 기록된다. 지금껏 미국 대통령의 골프는 정치적 동지끼리의 친목 도모에 국한됐다. 하버드대학 골프팀 출신으로 역대 대통령 중 베스트 골퍼로 기록되는 존 F 케네디(John F Kennedy) 전 대통령은 절친했던 민주당 소속 상원의원 2명(윌리엄 시밍턴, 조지 스매더스)과 골프를 즐겼다. 워런 하딩(Warren Harding) 전 대통령도 정치적 성향이 같은 상·하원 의원들만 초대해 내기골프와 맥주를 즐겼다. 유일한 예외라면 골프를 정치에 접목하려 시도했던 린든 존슨(Lyndon Johnson) 전 대통령 정도다. 그는 당초 골프에 관심이 없었으나 1964년 참모들이 민권법 통과에 반대하는 야당(공화당) 의원들과 골프장에서 만나라고 조언하자 이에 따랐다. 68년 2월엔 공화당 소속 전직 대통령인 드와이트 아이젠하워(Dwight Eisenhower)와 캘리포니아에서 한 차례 라운드했다. 그러나 이미 은퇴한 아이젠하워와의 라운드라 정적과의 골프는 아니었다.

 취임 뒤 2년 반 동안 71차례 라운드한 오바마도 측근·친구·각료만 동반자로 골랐다. 오바마는 “야외로 나가 유일하게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4시간”이라며 개인적인 친목 목적으로만 골프를 친다고 강조했다. 그랬던 그가 이번에 처음으로 정적과의 골프에 나선 것은 존슨처럼 ‘골프 정치’에 발을 내디뎠음을 의미한다.

 오바마·베이너 골프 회동에 관심이 증폭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시점이다. 민주·공화 양당은 현재 재정적자 감축과 정부 부채한도 증액 문제 등을 둘러싸고 대립 중이다. 두 개의 전쟁(이라크·아프간) 종료 방안과 리비아 사태 등 외교 현안에서도 맞서고 있다. 상대방에 대한 당파적 증오가 극에 달한 시점에 양당 우두머리가 골프장에서 만나는 것이다.

 백악관의 제이 카니 대변인은 “이번 행사는 사교 활동으로, 두 사람이 골프장에서 정치 협상을 벌일 것으론 기대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미국인들은 없어 보인다. 대다수가 본격적인 담판까진 아니더라도 두 사람 간 격의 없는 첫 스킨십 과정에서 정치 현안들이 허심탄회하게 논의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골프 회동 뒤 간단한 맥주 자리의 가능성도 거론된다.

 미 언론들은 골프 회동의 득실을 계산하는 양측의 신경전이 이미 시작됐다고 분석했다. 오바마는 동반자로 조 바이든(Joe Biden) 부통령을 골랐다. 이로써 미국 권력서열 1위(대통령), 2위(부통령), 3 위(하원의장)가 최초로 나란히 라운드하게 됐다.

 30년 넘는 의회 경력의 바이든은 베이너를 잘 안다. 그뿐만 아니라 다변(多辯)의 분위기 메이커다. 백악관은 또 다른 동반자 한 명의 선택권을 베이너에게 넘겼다. 그는 자신의 지역구인 오하이오주의 주지사로 절친한 사이인 공화당의 존 카식(John Kasich)을 택했다. 카식은 예산 전문가다. 오바마의 설득에 넘어가지 않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두 거물 간 첫 골프 회동인 탓에 소소한 화젯거리도 끊이질 않는다. 싱글 골퍼로 오바마(핸디캡 15)보다 골프 실력이 앞서는 베이너가 과연 현직 대통령을 누를 것인지가 가장 큰 관심사다. 베이너가 큰 타수로 오바마를 누르기 위해 최근 맹연습 중이라는 보도도 나왔다. 또 빌 클린턴(Bill Clinton) 전 대통령처럼 오바마가 수차례의 ‘대통령 멀리건(실패한 티샷을 벌타 없이 다시 치는 것)’을 활용할 수 있을지, 전동 카트를 이용한다면 오바마와 베이너 중 누가 운전대를 잡을 것인지, 소액 내기가 이뤄질 것인지 등이 설왕설래 중이다.

 20세기 초 골프 대중화가 시작된 미국에서 대통령으론 처음 골프를 친 인물은 27대 윌리엄 태프트다. 1910년 첫 라운드를 했다. 이후 18명의 역대 대통령 중 15명이 골프를 즐겼다. 허버트 후버, 해리 트루먼, 지미 카터의 세 사람은 예외였다.

 미 탐사전문기자 돈 반 나타 주니어가 쓴 『백악관에서 그린까지』에 따르면 아이젠하워는 1주일에 거의 두 차례씩, 재임 8년간 800회나 라운드했다. 마스터스 대회가 열리는 오거스타내셔널 골프장의 유일한 대통령 회원이기도 했다. 클린턴·포드 대통령도 골프광으로 분류된다.

 최고수로는 단연 케네디가 꼽힌다. 그는 고질적인 등 부상에도 불구하고 7~9 정도의 싱글 핸디캡을 유지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300야드가 넘는 장타를 자랑했고 조지 H W 부시와 아들인 조지 W 부시 역시 수준급 골프 실력을 가졌다. 하지만 조지 W 부시는 현직에 있던 2003년 말 이라크전에서 미군 희생자가 발생하자 “희생자 부모에게 대통령이 골프 치는 모습을 보일 수 없다”며 골프를 끊었다.

워싱턴=김정욱 특파원, 이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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