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결혼·출산 소식 사보에 함부로 못실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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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일본의 대형 석유 도매업체인 코스모 석유의 사보 책임자가 최근 수십 년 전통의 고정 코너를 중단했다. 입사 12년이 지날 때마다 사원들의 변화된 근황을 소개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것이 지난달부터 시행되고 있는 '개인정보보호법'에 저촉된다는 판단 때문에 폐지한 것이다. 결혼 기념일을 맞은 사원을 축하하는 칸, 자녀 출산 정보도 사라졌다.

개인정보보호법이란 '본인의 동의없이 제3자에게 개인정보를 제공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것이다. 개인정보의 유출이 큰 사회 문제로 부각하면서 지난달부터 도입됐다. 이를 위반하면 민사상 배상 책임뿐 아니라 형사 책임도 물을 수 있다.

그런데 이 법으로 기업들마다 사보 제작에 비상이 걸렸다. 사보는 사실상 회사 내 직원들의 개인정보를 소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직원들의 결혼, 자녀 출산, 신입사원 소개 등도 엄밀히 따지면 개인정보에 속한다. 대부분의 기업은 본인 사전 동의를 얻기 위해 바빠졌다. 그러나 동의를 얻지 못해 사보 기획 자체가 취소되는 경우도 생기고 있다.

최근 대형 자동차회사 계열사 사보의 경우 신입사원의 생년월일과 출신 학교, 고향과 취미 등을 묻는 설문에 "이는 개인정보이므로 원하는 분만 답변해도 무방합니다"라는 글을 추가했다. 신입사원 소개란에 일부 얼굴사진이 누락되는 사보도 등장했다. 본인 동의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본 게이단렌(經團連) 홍보센터나 일본 홍보협회 등에는 "사보 만들기 힘들어 못하겠다"는 항의가 매달 수십 건씩 쏟아지고 있다.

지바(千葉)상과대학 후지에 도시히코(藤江俊彦) 교수는 "사원의 개인정보는 사원의 인격이라는 의식을 경영자들이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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