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진출 외국계 기업 한국여성 돌풍

중앙일보

입력

국내에 진출한 외국계 기업에 여성 돌풍이 불고 있다.

영국계 모발(毛髮)관리회사인 '스벤슨 코리아' 는 최고경영자를 비롯한 95명의 직원이 모두 여성으로 구성된 '아마조네스' 기업. 스벤슨은 한국진출 2년만에 영업망을 5개로 늘리고 지난해 4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 회사 김숙자(金淑子.45)사장은 "한국에 똑똑한 여자가 많은데 놀랐고 이런 여성들이 제대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데 또 놀랐다는 미국 외교관의 말을 듣고 여성만으로 회사를 구성했다" 고 말했다.

최근에는 리바이스 코리아의 대표에 여성이 발탁됐고 지난해 수입차 시장에서 최고 판매실적을 올린 딜러도 크라이슬러의 이환숙 대리다. 벤츠는 이에 자극받아 최근 스튜어디스 출신의 여성 판매사원을 전격 채용했다.

외국기업들은 채용과 직무 배정은 물론, 임금에서도 성차별이 거의 없다. 비자 코리아는 입사 면접시험에서 "결혼하면 그만 두겠다" 는 여성 지원자는 아예 뽑지 않는다.

이 회사의 권영욱 상무는 "여직원들에 전문성과 책임감을 불어넣기 위한 것" 이라며 "직무평가를 해보면 여사원들의 능력이 남성보다 훨씬 높게 나온다" 고 말했다.

또 홍콩 상하이은행의 계열사인 HSBC증권은 이정자(43)씨를 서울 지점장으로 발탁했고, 실리콘 제조업체인 한국 다우코닝은 고객 서비스팀장에 민선희씨를 앉혔다.

이 자리는 고객이나 거래회사와 술 접대를 빼놓을 수 없는데도 회사측은 과감하게 여성을 배치했으며, 이 지점장과 민 팀장은 각각 2년과 5년째 장수하고 있다. 외국기업들은 여성인력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는다.

한국P&G는 최장 8개월(6개월은 무급)의 출산 휴가를 보장하고, 가사를 돌볼 수 있도록 2시간 먼저 출근해 그만큼 일찍 퇴근하는 플렉시블(Flexible)근무제도를 운영 중이다. 이 회사는 2년 연속 신입사원 가운데 여성비율이 70%를 웃돌 정도로 여성 채용에 적극적이다.

피자헛 코리아도 여직원이 출산휴가를 가면 동료에게 일을 분담시키는 대신 일정기간 업무를 맡을 인턴사원을 채용한다. 편안한 마음으로 출산 휴가를 떠나고 여직원들이 돌아올 자리가 보장돼 있다는 안도감을 심어주기 위해서다.

회사측은 "결혼이나 출산으로 퇴직하는 여직원이 거의 없다" 며 "전문가를 키우는데 상당한 회사비용이 투입된 만큼 여직원 퇴직은 기업에 큰 손실" 이라고 말했다.

한국 IBM은 지난해 10월 서울 양재동 교육문화회관에 2백10명의 여성 부장.팀장.사원을 모아놓고 '여직원 회의' 를 열었다(전체직원은 1천5백70명). 최고 경영자들이 여직원들 앞에서 회사의 여직원 활용 방침을 설명하고 이들의 애로와 고충을 들었다.

이 회사는 98년부터 최고 경영자 직속의 여성위원회를 발족시켜 여직원들의 의사를 전달받을 수 있는 채널을 마련해 놓았다.

삼성중공업에서 건설장비 부문을 인수한 볼보건설기계 코리아는 남성위주의 중공업 분야에서 '금녀(禁女)' 의 벽을 깨고 있다. 여직원 비율을 높이고 간부로 중용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인사 총책임자로 지난해초 부임한 컬트 존슨 부사장은 "한국 기업들에선 간부급 여성은 찾을 수도 없고 여성인력이 하나 같이 부족하다" 며 "이 때문에 기업문화가 상명하달식 관료주의로 흐르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고 지적했다.

주한 유럽상공회의소(EUCCK)의 조나단 리 인력개발위원장은 "한국기업이 남성 인력 위주의 인사조직을 고집하면 여성 특유의 유연하고 꼼꼼한 사고가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지식경영 시대에 고전할 것" 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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