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한국 핵심산업의 심장을 겨눈 잡스의 칼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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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미국 애플의 스티브 잡스 CEO가 그제 클라우드 시장 진입을 선포했다. 수척해진 모습으로 직접 신규 서비스인 ‘아이클라우드(iCloud)’와 PC 운영체제(OS)인 ‘라이언’, 아이폰·아이패드 운영체제인 ‘iOS5’를 공개했다. 클라우드 서비스는 자료들을 서버에 저장해 놓고 컴퓨터·휴대전화 등 다양한 단말기를 통해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편리한 기능이다. 물론 이 서비스는 애플의 전유물이 아니다.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나 구글 등이 한 발 앞서 선보인 기능이다. 하지만 애플은 이미 아이팟과 아이폰, 아이패드를 통해 새로운 IT 생태계를 창조하는 능력을 입증한 만큼 경계 대상 1호다.

 클라우드 서비스가 일상화되면 세계 산업 판도에 엄청난 변화를 몰고 올 게 분명하다. 우선 컴퓨터와 휴대전화 같은 단말기의 기능이 현재보다 훨씬 간단해진다. 소비자들로선 한층 편리해지겠지만, 전자기기 제조업계엔 끔찍한 악몽(惡夢)일 수 있다. 그만큼 단말기 생산의 부가가치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또 얇고 가벼운 단말기에는 반도체·LCD를 비롯한 전자부품도 그만큼 적게 들어갈 수밖에 없다. 한국은 휴대전화와 반도체 생산으로 먹고사는 나라다. 결국 잡스의 칼날은 우리 핵심 산업의 심장을 겨눈 것이나 다름없다.

 클라우드 서비스의 보편화는 세계 IT 생태계의 주도권을 둘러싼 전면전을 예고하고 있다. 하나의 생태계를 장악한 업체가 제조업계부터 콘텐트 유통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마련이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단말기 제조나 콘텐트 생산업체, 서버 임대업체들이 모두 하청업체로 전락할지 모른다. 애플의 클라우드 시장 진입은 전 세계 IT 생태계를 거머쥐겠다는 야심이 깔려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한국 기업들도 전면전을 피할 수 없다면 단단히 준비해야 한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는 물론 창의적 발상까지 모든 능력을 총동원해 응전에 나서야 할 것이다. 새 스마트폰 흐름에서 잠시 방심한 사이 나락으로 떨어진 노키아의 실패를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