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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일고 인맥이 만든 부산저축은행 사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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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저축은행 사건은 역대 정권과 관련된 비리사건 중 독특한 형태를 띠고 있다. 서로 갈등하는 영남과 호남, 지난 정권과 지금의 정권 모두가 얽혀 있다. 사건은 부산에서 터졌고 피해자들은 대부분 부산 사람이다. 그런데 사건을 일으킨 당사자들은 호남 출신이다. 부산저축은행 임원진과 이들을 둘러싼 금융권 인사를 포함한 10여 명의 광주일고 출신이 사건의 핵심 인물이다. 특정 고등학교가 단일 사건에서 무더기로 연루돼 있는 것도 특이하다. 노무현 정부 때 급성장하면서 커진 부실을 이명박 정부 들어 로비로 수습하려다 실패해 두 정권 모두가 엮이게 됐다. 여야 정치권과 전·현직 관료들을 대상으로 한 로비 의혹이 줄줄이 제기되고 있는 이유다.

부산저축은행 사건 의 과정은 다음과 같다.
부산저축은행은 창업주인 박상구 전 회장이 1981년 부산상호신용금고를 인수해 설립했다. 그는 금호아시아나그룹 박삼구 회장의 사촌이다. 당시 삼양타이어(현 금호타이어) 사장으로 일하다 돌연 회사를 넘기고 부산으로 이주했다. 이유는 나중에 알려졌다. 목포상고 동문인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정치자금을 제공한 사실을 놓고 전두환 정권이 회사를 포기하라고 압력을 넣었다는 것이다.

박 전 회장은 연고도 없는 부산에 와서 특유의 사업 수완으로 부산저축은행그룹을 성장시켰다. 그는 2004년 본인 지분 중 45%씩을 각각 자녀와 임직원들에게 나눠 주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나머지 10%로는 청산문화복지재단을 만들었다.

회사 경영을 이어받은 아들 박연호 회장은 임원진을 자신이 나온 광주일고 동문들로 채웠다. 박 회장을 포함해 주요 주주와 임원 등으로 부산저축은행을 경영한 6인의 수뇌부가 모두 광주일고 출신이다. 박형선 해동건설 회장은 2003년에 9.11%의 지분을 취득해 2대 주주가 됐다. 박형선 회장 역시 광주일고 출신으로 김양 부회장과 동기다.

부산저축은행은 박형선 회장이 들어온 뒤 승승장구하면서 국내 저축은행 업계 자산 규모 1위로 성장했다. 같은 시기, 부산저축은행 못지않게 성장한 업체가 바로 박형선 회장이 소유한 해동건설이다. 여수에 본사를 둔 해동건설은 2002년 박 회장이 인수해 노무현 정부 때 급신장했다. 2003년 275억원이던 매출은 매년 늘어나 2010년엔 매출 1014억원으로 인수 7년 만에 268%의 성장을 이뤄 냈다. 2004년에 광양만 3단계 2차 컨테이너 공사를 시작으로 굵직한 수주를 따내며 사세를 키웠다. 특히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호남뿐 아니라 울산신항 남방파제 공사, 낙동강 다산지구 공사 등 영남에서 큰 공사에 참여하며 영역을 전국구로 확대했다.

고교 동문으로 네트워크를 꽉 짜 놓았기 때문에 부산저축은행의 문제는 밖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 2월 17일 부산저축은행이 부실 금융기관으로 지정돼 영업정지를 당하면서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검찰은 4월 13일 불법 대출 혐의로 박연호 회장 등 10여 명을 구속했다. 23일엔 영업정지 직전 특혜 인출에 대한 수사에 착수하면서 광주일고 출신의 연결고리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검찰은 지난 2일 5조원대의 불법 대출과 2조5000억원의 분식회계 혐의로 박연호 회장 등 21명을 기소했다.

하지만 이때까지도 부산저축은행 대주주 및 임원의 비리에만 포커스가 맞춰졌다. 이후 부산저축은행이 로비스트 윤여성씨를 통해 정·관계에 로비를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사건은 커졌다. 같은 달 27일 박형선 회장이 구속된 데 이어 30일에는 감사원 기밀문건 등을 부산저축은행에 넘겨준 대가로 1억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은 이자극 전 금감원 부국장이 구속됐다.

31일에는 부산저축은행 검사에 앞서 금감원에 잘봐 달라는 청탁을 한 혐의로 은진수 전 감사위원이 구속된 데 이어 김종창 전 금감원장이 청탁을 받았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이달 3일에는 부산저축은행의 퇴출 저지 청탁 등을 대가로 금품을 받은 혐의로 김광수 금융정보분석원장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검찰은 이제 부산저축은행이 캄보디아에 5000억원을 투자한 과정에 수사를 집중하고 있다. 대형 프로젝트가 가능했던 게 권력의 비호가 있었던 거 아니냐는 것이다.

이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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