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여자 우습게 보는 남자들아, 이 아줌마에게 걸리면 없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2면

 을쑤니가 사는 법
엄을순 지음, 이프
320쪽, 1만3800원

에세이의 지은이는 안티미스코리아 대회로 한 시절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페미니스트 저널 ‘이프(현 문화미래라이프)’의 대표다. 갑순이도 아닌 을순이란 튀는 이름부터 정체성을 말해주는 듯하지만, 이 50대 페미니스트는 의외로 규수다운 20대를 보냈단다. 이대 나온 여자로서 메이퀸이 될 뻔했고(최종 후보 4인 안에 들었다), 대학 때부터 사귄 유일한 남자친구와 졸업하자마자 결혼해 지금까지 살고 있다. 더 놀라운 건 16년간 미국에서 유학생 아내로 두 아이를 키우면서 부부 유학생들과는 집안 꼴이 달라야 한다며 프로 주부 근성을 발휘했다는 것이다.

 페미니스트가 고작? 실망할 건 없다. 한국땅에 돌아오자마자 전형적인 한국식 마초로 변신한 남편, 여자라면 그저 깔보고 들어오는 안하무인남 등등을 보면서 억눌러왔던 싸움닭 근성이 발휘되니 말이다. 밀리는 주차장에서 ‘년’ ‘18’이란 욕을 해대는 남성에게 “니 눈엔 아줌마들이 다 생식기로 보이냐? 이 자X 같은 새캬”라며 받은 욕을 배로 되돌려주는 장면은 한여름 소나기 못잖게 시원하다. 그녀는 마흔이 다 돼 사진을 전공하는 등 ‘남편’이 아닌 자신의 성취를 찾아간다. 사진기자로 어영부영 발을 들인 ‘이프’를 완전히 접수하며 ‘을쑤니표’ 페미니즘을 구현한다. 축제 같은 안티미스코리아대회를 열어 여성의 몸을 상품화한 미스코리아 대회를 지상파 방송에서 몰아냈고, 5만원권에 신사임당 초상이 들어가는 것도 반대했다. 신사임당은 시댁을 멀리한 원조 페미니스트였는데 여성단체가 왜 반대하냐고? 화폐에 넣은 것은 근대의 ‘현모양처’ 이미지가 덧씌워진 신사임당이라서다. 저출산을 해결하겠다며 낙태 단속을 강화하겠다고 나선 정부에겐 “감방에 갇힌 앞집, 뒷집 아줌마들 면회 가느라 바쁘게 생겼다”며 “벌을 주려면 남자를 벌하라”고 외친다. 여성은 어차피 아이를 갖는 순간부터 평생 짊어지고 갈 죄의식과 상처, 혹은 따가운 시선과 생활고를 패키지로 받으니까.

 취권(醉拳)이라도 추듯 유쾌한 글쓰기라 암만 보수적인 남성이라도 웃을 일이 더 많을 것 같다. 속이 편친 않겠지만.

이경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