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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북 폭로 쇼, 다음 정부와 거래 노렸다면 오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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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강찬호
정치부문 기자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이던 2008년 12월. 조지 W 부시 행정부와 핵검증 의정서 채택을 놓고 설전을 벌이던 북한은 돌연 6자회담 결렬을 선언하고 문을 걸어잠갔다. 그해 여름 영변의 핵 냉각탑을 폭파하며 비핵화에 한발 다가서는 듯했던 북한이 태도를 바꾼 건 미국이 권력교체의 과도기였기 때문이었다.

 북한은 오바마가 당선되기도 전인 그해 10월 그의 외교 브레인들을 평양에 초청했다. 임기 말 대통령 부시 대신 국제협조주의를 내건 오바마가 취임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빅딜을 해보겠다는 의도가 분명했다. 그러나 오바마가 집권한 지 2년 반이 흘렀지만 북한은 미국과 대화다운 대화를 한 번도 하지 못했다. 그새 북한을 옥죄는 미국의 제재망은 더욱 촘촘해졌다. 북한은 ‘스토커’란 비아냥을 들을 만큼 미국에 대화를 애걸하고 있다. 그러나 돌아오는 답은 “먼저 한국과 관계를 개선하라”는 한마디뿐이다. 급기야 북한은 2년 전 호기롭게 걷어찼던 미국의 식량지원을 “하루빨리 재개해 달라”고 구걸하는 신세가 됐다. 당시 “영원히 끝났다”고 선언했던 6자회담에 대해서도 “아무 조건 없이 언제든 열자”고 매달리고 있다. 미국은 누가 대통령이 됐건 북한의 비핵화에 대해선 입장이 같을 수밖에 없는 나라임을 간과한 대가다.

 북한이 1일 남북 비밀접촉 사실을 공개하면서 “이명박 정부와는 영영 대화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정권교체기의 미국을 상대로 한 외교와 적잖게 닮았다. 평양 당국이 “1년 반만 지나면 남측에 유화적인 정부가 들어설 것”이란 기대에서 이런 막가파식 폭로 쇼를 벌였다면 또 다른 오판일 수 있다. 내년 12월 대선에서 어느 후보가 승리해도 북한의 핵무장을 용인할 리가 없고, 천안함·연평도 사건에 대한 국민의 보편적인 감정을 무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북한이 그때까지 대화를 거부하며 버티는 대가는 기하급수로 커질 것이다. 북한은 근시안적인 꼼수 대신 대화를 통한 정면돌파만이 자신들의 안보와 발전을 꾀하는 길임을 깨달아야 한다.

강찬호 정치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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