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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인문학 - 정재승이 만난 사람들] (2) 대중 철학자 강신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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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철학은 난해한 게 아니다. 강신주(오른쪽)씨는 세상을 살아가는 자신만의 방식을 철학이라고 본다. 그는 “직접 만나고 대면하지 않으면 인간관계도 없다”며 트위터의 한계를 지적했다. 왼쪽은 정재승 교수. [변선구 기자]


철학은 세상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행위다. 질문이 없으면, 문학도 과학도, 경제도 없다. 요즘 많은 철학자들은 상아탑의 고담준론(高談峻論)에 안주하지 않는다. ‘왜’라는 질문의 출발점을 일상에서 찾는다. 우리 시대의 사랑과 우정, 가족, 교실 안 풍경, 동네 골목길 이야기에서 철학의 가치와 역할을 역설한다. 철학박사 강신주(44)씨도 그 한 가운데 있는 사람이다. 그는 올 2월 펴낸 『철학이 필요한 시간』에서 그는 ‘나는 왜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로 시작하는 김수영 시인의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를 인용하며 “자신의 삶과 감정에 직면하는 게 참다운 인문학”이라고 말했다. 카이스트 정재승 교수(바이오및뇌공학과)가 서울 신문로 성곡미술관 인근 강씨의 연구실을 찾아갔다. 왜, 지금이 ‘철학이 필요한 때’인지를 얘기했다.

▶정재승= 트위터 얘기부터 해보죠. 요즘 너도나도 트위터를 합니다.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바라보는 철학자의 시선이 궁금합니다. 아나운서 자살사건도 있었죠.

 ▶강신주=SNS는 세상과 만나는 입·출구 역할은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직접적인 대면을 만들어내진 못해요. 그게 한계죠. 저는 그 위험성을 경계합니다. 문맥을 생략하기 때문인데요. 오히려 트위터 때문에 인간관계가 단절될 수 있다고 봅니다. 사람은 몸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에 서로 만나서 접촉해야 관계가 형성됩니다. 트위터는 중개만 하고 빠져야 하는데, 만남은 없고, 온라인에서만 교류를 만들죠. 관념적 공간에 익숙해지는 겁니다. 인간관계가 끊어질 수 있어요.

 ▶정=철학자의 시선은 역시 다르네요. 어떻게 철학을 시작하게 됐습니까.

 ▶강= 고 1때, 친구들하고 지리산에 가서 별을 보았죠. 그것도 은하수를요. 아, 정말 아득하더라고요.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삶이란 게 참 작은 거구나!’ 민주화 시위가 한창이던 1980년대도 그런 프레임으로 보니 점점 생각이 꼬리를 물었어요. 지금 상황 역시 10억년의 프레임으로 보면, 결국 ‘시간의 마디’ 같은 순간이 아닐까. 인문학과 철학은 결국 프레임의 문제입니다.

 ▶정= 프레임, 생각의 틀을 말하는 거죠.

 ▶강=시인 김수영(1921~68)의 일화를 들려 드릴게요. 어느 날 아내가 흘린 머리카락을 치우면서 그는 화가 났대요. 도대체 왜 만날 저런 걸 흘리나! 하고. 너무 화가 났는데, 이런 생각이 들더래요. ‘이 사람도 언젠가는 세상을 떠날 존재인데….’ 그랬더니 잘해주지 못할 이유가 없더라는 거죠. 세상을 다양한 프레임으로 보면 다른 이면이 보여요.

 ▶정=철학자로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게 있나요.

 ▶강=비트겐슈타인(1889~1951)이 그런 말을 했죠. “철학적 문제는 해결이 아니라 해소다”라고요. 맞아요, 영원한 해결은 없어요. 순간적으로 해소될 뿐이죠. 그리고 또 새로운 문제가 생기죠. 저는 자기 삶, 자기 색을 유지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강의하다 보면, 가끔 독백한다는 느낌이 들어요. 아무 대답이 없고 반응이 없을 때요. 답답해요. 배를 몰고 가는데, 바람이 불지 않는 느낌이죠. 저항하는 느낌이 훨씬 좋아요. 그게 소통의 시작이니까요. 인문학은 자기 이야기를 갖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자기의 구도, 자기 프레임을 갖게 됐다면 제대로 셔터를 누를 수 있죠. ‘너만의 프레임으로 셔터를 눌러라!’

 ▶정= 그래도, 아직 해소 못한 게 있겠죠.

 ▶강= 그럼요(웃음). 저 같은 경우, 사람이든 사물이든 가까이 가면 잘 안 보여요. 너무 가까워지면 대상이 잘 안 보여요. 프레임이 안 보이는 겁니다. 자기 목소리를 찾고 표현해야 한다는 점에서 인문학은 고독합니다. 제가 철학을 강의하는 이유는 사람들에게 저마다의 스타일을 찾아주기 위해서라고 생각해요. 결국엔 개인의 목소리를 찾아주는 게 인문학이죠.

 ▶정= 그 외로움과 불안이 필요하기도 하면서 삶을 황폐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강= 그렇죠. 요즘 사람을 보면 자신만의 스타일이 없어요. 최근 일부 카이스트 학생들이 자살을 택하는 것을 보며, 교육이 스스로 통제하고 조절하는 능동성을 키워줬더라면 , 하는 생각이 들었죠. 도는 팽이를 멈추지 않게 하려면 계속 채찍질을 해야 해요. 그걸 누가 합니까. 스스로 해야 합니다. 못 한다면, 옆에서 ‘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해요. 대신 쳐줘서는 안됩니다. 그런데 지금 아이들은 어떤가요. 자신만의 팽이가 뭔지 모르고, 스스로 치는 법도 모릅니다. ‘인문학적으로 건강하다’는 말은 자기 삶을 스스로 채찍질 한다는 뜻이에요. 독일 작가 카프카(1883~1924)를 예로 들어볼까요. 만약, 부모가 시키는 대로 보험업을 했으면 자살했을 거에요. 스스로 글을 썼기 때문에 살 수 있었죠. 무엇을 하든, 스스로 팽이를 돌려야 합니다.

 ▶정=사회의 욕망을 내 욕망으로 착각하고 지금까지 팽이를 돌려온 학생도 많을 거에요.

 ▶강=정확한 지적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다른 이의 욕망으로 살아가요. 자신이 뭘 원하는지 모르는 겁니다. 이성복 시인의 시를 읽고 ‘아, 연애란 이런 거구나! 할 필요 없겠다!’ 마음먹고 쿨하게 연애를 접는 건 불행한 삶이죠. 차라리 이성복 시를 모르더라도 몸으로 부딪혀 연애를 하는 삶이 행복한 겁니다. 삶에서 가장 필요한 건 자기 욕망이에요.

 ▶정=책에서 언급하신 ‘집어등(集魚燈)’처럼,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끌리는 욕망에 시달리는 존재 아닙니까. (※ 집어등은 강씨의 『상처 받지 않을 권리』에 등장하는 용어. 심해의 오징어는 오징어잡이 배에 매달린 집어등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화려한 불빛은 목숨을 바쳐서라도 도달하고 싶은 치명적 유혹을 안고 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강= 그렇습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프레임이 너무 넓다는 데 있어요. “부부 관계가 다 비슷하지 않겠어?” 이런 식의 프레임이죠. 고치려는 아무런 의지가 없잖아요. 대신 우리 집 거실에 있는 냉장고나 TV를 없애자, 이런 식의 좁은 프레임이 필요합니다.

 ▶정=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우리 사회의 집어등에서 자유롭지 못할 겁니다. 가장 큰 문제는 뭘까요.

 ▶강= 교육부터 바뀌어야 합니다. 지금 교육은 관리에 비중을 두고 만들어진 시스템이죠. 아이 스스로 팽이를 돌리게 할 기회를 주지 않잖아요.

 ▶정= 현재 제도권 교육에서 실천할 수 있는 게 있을까요

 ▶강= 지금 현실에서 희망을 찾기란 쉽지 않죠. 그래도 대안을 찾는다면, 학생 수를 줄여달라고 하겠습니다. 교사가 학생들에게 관심을 갖고 대화하기에는 감당해야 할 학생 수가 너무 많아요.

 ▶정= 당신만의 스타일을 찾는 데 도움을 준 철학자가 있겠죠.

 ▶강= 가장 영향을 준 사람은 김수영입니다. 저와 감수성이 비슷해요. 또 꼽자면 불교의 나가르주나, 비트겐슈타인입니다. 비트겐슈타인은 어려웠지만 어렵다는 데 매력이 있었어요. 철학은 별을 따는 행위와 같아요. 철학은 미래에 읽히는 책이기도 합니다.

 ▶정= 요즘 사람들에게 필요한 화두를 든다면요.

 ▶강= 내가 우리가 돼야 해결되는 문제가 많습니다. 지금 시대는 나에서 우리로 나아가는 과도기 같습니다.

 ▶정= 인문학, 어디로 가야 할까요.

 ▶강= 사실, 인문학자들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습니다. 다 직장 다니면서 가끔 책 쓰는 정도잖아요. 현실 안으로, 세상 속으로 뛰어 들어가 사람들을 만나 야죠. 강연 현장에서 사람들을 만나면 개개인의 아픔, 상처가 보여요. 그러면서 사람들은 말합니다. “인문학이 이렇게 재미있었나요?” 그런 말을 들으면 사실 미안하죠. 타인의 고통을 읽어나가는 인문학이 필요합니다.

정리=이은주 기자, 김민영(프리랜서 작가)
사진=변선구 기자

강신주씨의 책책책

◆『철학이 필요한 시간』(사계절·2011)= 일반인이 현실에서 부딪히는 고민에 대한 조언을 담은 철학 에세이. ‘타인에 대한 배려’ 등 48개 주제로 동서양 철학자들의 저작을 소개했다.

◆『철학 VS 철학:동서양 철학의 모든 것』(그린비·2010)=동서양 철학자를 대비시킨 철학 입문서. 철학의 역사를 일상의 비유로 풀었다.

◆『상처받지 않을 권리』(프로네시스·2009)=이상·샤를 피에르 보들레르·피에르 브루디외 등 문인·사상가를 통해 바라본 현대인의 의식구조와 욕망.

◆강신주=1967년 경남 함양 생. 연세대 대학원 철학과 박사. 철학의 대중화·일상화를 추구한다. 대학은 물론 상상마당 등 대중아카데미에서 철학을 강의하고 있다. 동양철학과 서양철학, 철학과 문학을 넘나들며 소통과 사유라는 주제를 탐구해왔다.

◆정재승·강신주 대담 동영상은 ‘희망의 인문학’ 캠페인 홈페이지(http://inmun.yes24.com)에서 볼 수 있습니다. 분야별 추천 도서에 대한 서평을 홈페이지에 올려주세요. 선정된 독자에게 도서지원금을 드립니다. 이택광(경희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저술가 박권일(『88만원 세대』 공동 저자), 정혜윤 PD(CBS 라디오), 강신주 박사(철학)의 인문칼럼도 홈페이지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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