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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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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호 16면

1억원 ‘씨앗기금’ 기부한 아름다운가게 휘경점 박은자씨
“가게 수익금으로 8년 간 1억6000만원 이웃 도왔어요”

투자로 진화하는 기부

“그냥 없어지는 돈이 아니라 싹을 틔우는 거잖아요. 이게 자라서 뿌리를 내리고 잎이 돋고 꽃이 피는 거라고 생각해요.”
아름다운가게 휘경점 명예점장 박은자(63·사진)씨가 ‘기부=사회적 투자’라고 말하는 이유다. 아름다운가게는 재활용이 가능한 중고 물품을 기증받아 되파는 곳이다. 지난 24일 오전 박씨가 일하는 서울 동대문구 휘경동의 아름다운가게를 찾아갔다. 약 66㎡(20평) 면적의 매장에 재활용 옷가지ㆍ그릇ㆍ잡화 등 7000여 점의 물품이 가득 차 있었다. 진열대 사이로 아이를 품에 안은 주부와 외국인 유학생 등이 요리조리 살펴보며 쓸 만한 물품을 고르고 있었다.

박씨는 2003년 휘경점을 설립할 때 ‘씨앗기금’으로 1억원을 흔쾌히 내놨다. 전업주부인 박씨가 평생 알뜰살뜰 가계 살림을 꾸려나가면서 모은 돈이다. 씨앗기금은 가게를 설립하는 데 들어가는 권리금ㆍ보증금과 인테리어 비용 등을 가리킨다. 이후 휘경점에서 가게 운영 수익금을 모아 지역사회의 불우한 이웃들을 지원한 금액은 1억6000만원에 달한다. 박씨가 ‘씨를 뿌려 싹을 틔운’ 기부금의 수익률이 현재까지 160%나 된다는 얘기다.

박씨는 “8년 전 이 가게에 기부를 결심한 것은 체계적이고 투명하게 관리될 것이란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가게 수익금을 한 해에 두 번씩 어렵게 사는 지역주민들에게 나눠준다. 그때마다 직원들이 서류심사부터 현장답사까지 약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꼼꼼하게 일을 처리한다”고 말했다. 이어 “한 푼이라도 허투루 낭비하지 않고 꼭 필요한 곳에 쓰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며 더욱 믿음을 갖게 됐다”고 덧붙였다.

박씨는 이미 30년가량 꾸준히 기부를 실천해 온 ‘기부 베테랑’이다. 1980년대 초반부터 서울 성북구의 중ㆍ고교생 가운데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골라 장학금을 주고 있다. 지금까지 수백 명의 학생들이 박씨의 장학금을 받았다. 20여 년 전에는 주변에 사는 시각장애인들이 돈이 없어 안과 수술을 받지 못한다는 말을 듣고 수술비를 선뜻 내놓기도 했다. 최근에도 쪽방에서 외롭게 사는 독거노인들에게 식사를 제공하고 경기도 의정부시에 있는 고아원에 부정기적으로 후원금을 보내는 등 나눔과 봉사를 실천하고 있다.

박씨는 “내가 가진 기부 유전자는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것”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어렸을 때 생일에 어머니가 차려주는 아침상을 받으면 미역국뿐이었다”며 “하지만 오후에는 어머니가 우리 남매를 데리고 불고기ㆍ떡ㆍ과자 등을 챙겨 고아원이나 양로원을 찾아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시 정성껏 음식상을 차려 드리면 외롭게 지내던 어르신들이 환하게 웃으며 기뻐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고 전했다.

그러나 박씨가 나눔을 실천하는 일이 순탄치 만은 않았다. 박씨는 “극히 일부였지만 장학금을 전달한 학교에서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실망한 경우도 있었다”며 “장학금을 받은 학생 명단도 대충 적어놓고 지급 내역도 짜맞추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고 토로했다.

박씨의 기부 활동은 어느새 해외로도 진출했다. 지난해 10월에는 네팔의 칼리카 지역에 2층짜리 학교 건물을 지어줬다. 1층에는 초등학생과 중학생 187명을 위한 교실 다섯 개를 만들고, 2층에는 학생과 지역주민이 함께 사용하는 도서관을 꾸몄다. 박씨는 “20여 년 전 인도에 가본 적이 있는데 학교도 가지 않고 길거리에 구걸하러 돌아다니는 어린이들을 보고 너무 가슴이 아팠다”며 “그때부터 언젠가 저개발 국가 어린이들을 위한 학교를 세우겠다고 결심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내가 남에게 받는 위치가 아니라 줄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며 “앞으로도 매년 계획을 세워 기부를 계속하고 최종적으로는 복지시설을 설립하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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