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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 앞에서 말단 직원 할 말 다 할 수 있어야 회사가 성공한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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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호 22면

브리지워터의 운용자산은 870억 달러(약 98조원, 올 초 기준). 지난해 평균 38%의 수익을 거뒀다. 대표 상품인 ‘퓨어알파’ 펀드의 지난해 수익률은 44.8%. 2000년 이래 자산을 연평균 25%씩 불렸다. 1975년 뉴욕 맨해튼의 비좁은 아파트에서 시작해 35년 만에 거둔 성과다.
일부에서는 달리오와 브리지워터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본다. 올봄 브리지워터가 세계 최대 헤지펀드에 올랐다는 기사가 나온 뒤 달리오의 경영철학과 브리지워터의 기업문화를 비판하는 글이 쏟아졌다. 광신도 집단 같다는 이유였다. ‘100조원을 굴리는 사나이’ 달리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시장 보고서 만들다 헤지펀드로 변신
브리지워터는 처음에는 시장 보고서를 팔고, 기업들에 리스크 자문을 해주는 회사였다. 달리오는 매일 보고서를 만들어 고객들에게 보냈다(지금도 ‘데일리 옵저베이션’이라는 이름으로 투자자들에게 매일 보내진다). 당시 보고서를 본 데이비드 모펫 전 프레디맥(미 국영 모기지업체) 최고경영자(CEO)는 “지금까지 읽은 것 중 경제가 어떻게 굴러가는지를 가장 잘 설명해 준 보고서”라고 평했다.

세계 최대 헤지펀드 브리지워터 회장, 레이 달리오의 투자 세계

달리오의 시장 보고서에 깊은 인상을 받은 세계은행의 연금투자부문 최고운용담당자(CIO)는 브리지워터에 500만 달러 채권 투자금을 맡겼다. 이후 브리지워터는 글로벌 채권, 통화, 주식 등에 투자하는 헤지펀드 업체로 변신했다.

달리오의 보고서가 미국 정부나 중앙은행 관계자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력을 발휘했는지를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2009년 금융회사에 대한 스트레스 테스트를 발표한 날, 티머시 가이트너 재무장관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웃음을 띠며 문서를 하나 건넸다. 브리지워터의 보고서였다. 보고서의 표지 제목은 ‘동의한다(We agree)’였다.

브리지워터의 성과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지표는 수익률이다. 브리지워터는 위기에 강했다. 다른 헤지펀드가 마이너스 수익률로 고생했던 1998년, 2003년, 2008년에 큰 성과를 거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문을 닫는 헤지펀드가 속출하는 상황에서도 브리지워터의 퓨어알파는 8.7%의 수익을 거뒀다. 물론 언제나 잘한 건 아니다. 2006년엔 한 자릿수 수익에 만족해야 했고, 시장이 회복세를 보였던 2009년엔 원금 지키기에도 허덕였다. 그럼에도 35년 동안 단 1년만 마이너스 수익을 기록했다. 퓨어알파는 91년 출시 이래 연평균 18% 수익률을 기록했다.
 
스트레스로 2년 안 돼 직원 30% 퇴직
브리지워터는 미 코네티컷주의 시골 마을 웨스트포트의 숲 한가운데 있다. 미 언론은 “브리지워터는 구글과 함께 업계와 동떨어진 곳에 사무실을 둔 대표적인 기업”이라고 평한다. 미 경제전문지 파이낸셜 뉴스는 “애플과 브리지워터는 고객이 대중이냐 기관투자가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라며 “공통의 테마는 혁신”이라고 밝혔다.

브리지워터의 기업문화는 혁신적이고 수평적이다. 달리오는 “투자를 결정하는 데 상하관계는 의미가 없다. 누구에게나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투자를 결정하는 테이블에선 도전하는 걸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2005년 경영철학을 문서화했다. ‘원칙(Principal)’이라 불리는 이 문서는 108페이지에 277개 조항으로 이뤄져 있다. 마치 헌법과 같다. 회사 내부에서만 돌다가 지난해 월스트리트의 가십 사이트인 ‘딜브레이커닷컴’에 공개돼 화제가 되자 아예 홈페이지에 띄웠다.

‘원칙’의 첫 장에는 “이 원칙에 동의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동의하지 않는다면 회사를 떠나라”고 명시했다. 달리오는 진정으로 진리를 추구하지 않으면 지식을 얻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돈이나 실적이 아니라 ‘탁월함’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아’를 버릴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다.

달리오는 탁월해지기 위해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내가 잘하고 있는지, 동료가 잘하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는 것. 이를 위해 브리지워터에서는 서로를 비판하는 것을 권장한다. 그 비판은 모호해서는 안 된다. 구체적이어야 한다.

‘원칙’의 11번째 항목에는 이렇게 나와 있다. “누군가를 비판할 때는 절대 뒤에서 하지 마라. 앞에서 직접 말해라.” 그런 비판을 견디고 극복할 수 있어야 진정으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달리오는 직원들에게 자신에게도 거리낌없이 비판하라고 장려한다. 최고의 성과를 거두기 위해선 말단사원도 면전에서 회장을 비판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원칙’에는 이런 문구도 있다. “투자 실수를 뭉뚱그려서 비판하지 마라. 잘못한 사람을 콕 집어라.” 실수한 사람을 제대로 비판해야 그 사람이 발전할 수 있어서다.

토론과 비판이 브리지워터에선 끊임없이 이어진다. 대놓고 눈앞에서 비판하는데 견디기 힘들 수 있다. 스트레스를 못 이기고 나가는 직원도 많다. 2년도 안 돼 직원들이 회사를 그만두는 비율이 30%를 웃돈다. 다른 헤지펀드의 이직률이 10%에 못 미치는 것과 비교된다. 퇴직한 직원들은 “회사가 무슨 광신 종교집단 같다”고 폄하한다.

채용 절차도 특이하다. 달리오 회장은 면접 때 지원자들에게 낙태나 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묻는다. 성격 테스트인 MBTI 검사까지 받도록 한다. 이 때문인지 다른 헤지펀드와 달리 브리지워터에는 인문학 전공자가 많다. 이런 직장문화 때문에 소송이 끊이지 않는다. 지금도 직원들이 제기한 소송 두 건이 ‘평등고용기회위원회’에 회부돼 있다.

업계의 악평이 이어지자 직원을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심지어 채용을 담당하는 부서에서조차 최근 잇따라 다섯 명이 회사를 그만뒀다. 그러나 달리오는 확고하다. 끊임없이 묻고 또 도전받아야 하며, 그것이 브리지워터의 성공 비결이라고 확신한다. 그는 “브리지워터는 광신도 집단이 아니라 공동체다. 단순히 월급을 주는 회사가 아니라 의미가 있는 일을 하는 곳”이라고 말했다. 최근 CNBC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시장에서 돈을 벌기 위해서는 독립적으로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창조적이어야 한다. 그러려면 약점과 실수를 직시할 수 있어야 한다. 지난 36년의 성과가 경영철학의 우수성을 증명하지 않았나”라고 말했다.

달리오의 경영철학을 모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2년 이상 근무한 직원이 회사를 그만두는 경우는 드물다. 회장까지 비판할 수 있는 수평적인 토론문화와 가족의 건강까지 챙겨주는 가족적인 분위기에 대해 ‘천국’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브리지워터가 광신도 집단으로 몰리는 건 달리오가 ‘초월 명상’ 수련자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영화감독 데이비드 린치가 2005년 초월명상교육원을 세울 때 123만 달러를 기부했다. 회사 직원 절반 정도가 학비(2500달러)를 보조받아 명상 과정을 수료했다. 달리오는 지난해 10월 잡지 ‘리더스’와의 인터뷰에서 “명상은 정신을 맑게 하고 창조적으로 만든다. 명상이 투자 아이디어를 찾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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