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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스페셜 - 목요문화산책] 책의 바벨탑, 천국인가 지옥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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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사진 ① 바벨탑(2011년), 마르타 미누힌 작, 각국 대사관 및 일반인에게서 기증받은 3만 권의 책으로 이뤄진 설치미술, 높이 25m, 부에노스아이레스, 아르헨티나 [로이터]


지금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는 한국어를 포함한 세계 각국의 언어로 쓰인 책 3만 권이 높이 25m의 거대한 ‘바벨탑’을 이루고 있다(사진 ①). 유네스코가 이 도시를 ‘2011년 세계 책의 수도’로 지정한 기념으로 미술가 마르타 미누힌이 만든 작품이다. 28일이 되면 이 탑은 해체돼 관람객이 책을 한 권씩 가져갈 수 있고 남은 책들은 새로운 아카이브에 보관될 것이다. 미누힌은 그 아카이브의 이름이 ‘바벨의 도서관(La Biblioteca de Babel)’이라고 했다. 아르헨티나 작가 호르헤 L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1899~1986)의 단편소설 제목에서 따온 이름이다.

보르헤스가 생각한 바벨의 도서관은 대체 어떤 도서관일까? 국내에도 골수 팬이 많은 독특한 일본 코미디·호러만화 『시오리와 시미코』에서 주인공인 여고생 시오리가 그것을 묻는 장면이 있다. 시오리의 단짝친구며 책벌레인 시미코가 설명한다. “바벨탑처럼 무한히 계속되는 거대한 도서관에 무수한 책이 정리돼 있는 거야. 책으로 만들어진 우주지.” 그러자 시오리가 대꾸한다. “책 읽기 싫어하는 사람에겐 지옥이겠구나. 만화책도 있니?”

 불행히도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에는 만화책이 없다. 그곳의 책들은 모두 같은 규격에 검은 활자로만 구성돼 있다. 이런 책들로 벽면이 가득 찬 육각형의 수많은 방이 위·아래·옆으로 계속 끝없이 이어져 있는 것이 바벨의 도서관이다. 이 도서관은 누구도 그 끝나는 지점을 알지 못하는 우주 자체이며 인간은 처음부터 이 안에 있었고 이 안에서 죽는다. 시오리가 알았다면 기절할 일이다.

 더 끔찍한 것은 이 도서관이 책 읽기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지옥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곳의 책들에는 알파벳 22개 글자(영어 알파벳은 26개 글자지만)와 쉼표·마침표·띄어쓰기 공간, 이렇게 25가지 기호가 완전히 무작위로 조합돼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어떤 책은 MCVMVCMCV 이런 식으로 MCV만 반복되다 끝난다. 어떤 책은 단어 또는 문장이 되는 문자 조합을 갖고 있지만 무슨 뜻인지 아리송하다.

그림 ② 바벨탑(1563년), 피터르 브뤼헐(1525~69아버지 브뤼헐) 작, 미술사박물관, 빈

 이렇게 광대하고 혼돈스러운 공간이기에 ‘바벨의 도서관’인 모양이다. 구약성서를 보면 인류가 이름을 떨치고자 하늘에 닿는 거대한 ‘바벨탑’을 세우는 이야기가 나온다. 신은 이것을 막고자 인간의 본래 하나였던 언어를 여럿으로 갈라놓았다. 결국 탑 건설자들은 혼돈 속에서 흩어지게 됐고 탑 건설은 중단됐다. 북유럽 르네상스미술의 거장 피터르 브뤼헐의 ‘바벨탑’(그림 ②)은 이 탑의 이미지를 가장 웅장하고 정교하게 구현한 것으로 이름 높다. 한창 공사 중인 탑의 상부는 이미 구름 위로 솟아 있다. 미누힌의 3만 권의 책 ‘바벨탑’은 이 그림에 바탕을 뒀다.

 그러나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은 바벨탑과 달리 인간이 만든 공간이 아니다. 그 육각형 방과 책들은 태초부터 있었다. 아마도 보르헤스는 서구에서 중세 때부터 이어져 온 ‘자연의 책’ 개념에서 영감을 받았으리라. 자연 또는 우주는 하나의 책과 같아서 모든 자연현상은 의미가 있으며 읽어 낼 수 있다는 사상이다. 중세철학의 거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신의 뜻을 담은 두 가지 신성한 책이 있는데 하나는 성서이고 하나는 자연이며, 무식한 사람도 ‘자연의 책’은 읽을 수 있다고 했다. 근대과학의 장을 연 갈릴레오 갈릴레이도 그 두 가지 책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갈릴레이는 반대로 ‘자연의 책’이 더 해독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림 ③ 책 정물(1628년께), 작자 미상, 판자에 유채, 알테 피나코텍, 뮌헨

 사실 우리는 늘 자연과 우주의 현상을 보고 있지만 과연 그 의미를 읽고 그 법칙을 꿰뚫고 있는가? 동서고금의 수많은 학자와 종교인과 예술가들이 그에 대한 나름의 답을 내놓아 왔지만 어느 것이 절대적인 답인지 아는가? 아니, 그 현상에 정말 의미와 법칙이 있긴 있나? 그런 고민에 빠져 있는 우리는 바로 바벨의 도서관에서 해독할 수 없는 책을 붙잡고 고민하는 인간과 같은 존재다.

 바벨의 도서관은 25개 기호로 가능한 모든 조합의 책을 다 포함할 정도의 크기다. 가능한 모든 조합이므로 가능한 모든 책이 있다. 뒤죽박죽 문자 조합으로만 된 책도 있겠지만 이 도서관의 기원과 인간의 운명이 적힌 지혜의 책들도 어딘가에 있는 것이다. 도서관 속 인간들은 그런 책들을 찾아 육각형 방들을 순례한다. 그러나 그것은 우주 속에서 먼지 찾기다. 절망한 그들은 서로 싸운다. 어떤 이들은 자신들이 쓸모없다고 판단한 책들을 마구 파괴한다. 어떤 이들은 일종의 구세주(지혜의 책을 읽어 신과 같이 됐다는 ‘책의 인간’)를 찾아다닌다.

 보르헤스는 이렇게 말한다. “인류는 소멸해 가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러나 ‘도서관’은 영원히 지속되리라. 불을 밝히고, 고독하고, 무한하고, 부동적으로, 고귀한 책들로 무장하고, 쓸모없고, 부식하지 않고, 비밀스러운 모습으로.” 그러나 보르헤스는 동시에 “무질서의 반복인 신적인 질서”를 발견할 영원한 순례자를 기대한다.

 이 말은 바로크시대 네덜란드의 대학 도시 레이던에서 그려진 책 정물화(그림 ③)를 연상시킨다. 이 그림은 거대하고 영원한 ‘자연의 책’ 앞에서는 인간의 책이 보잘것없고 시간과 함께 허물어진다는 것을, 그래도 인간의 수명보다는 길게 남으며 ‘자연의 책’을 해독하려는 후대의 인간들에게 희미한 빛이 돼 준다는 것을 암시한다. 거대한 ‘바벨의 도서관’, 즉 자연 혹은 우주 속에서 그 비밀을 알려고 몸부림치는 인간의 순례는 계속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문소영 기자

보르헤스, 시력을 잃어버린 도서관장…

『바벨의 도서관』 속에 있는 모든 인간은 필연적으로 사서(司書)다. 이 단편소설은 늙어서 눈이 거의 보이지 않는 한 사서의 독백으로 돼 있다. 이 소설이 발표될 당시 보르헤스(사진)는 40대 초반의 나이로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립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하고 있었다. 중도우파 성향의 그는 페론 정권의 포퓰리즘 정책을 비판하다 도서관에서 해고당했다. 10년이 지난 뒤 페론 정권이 군사쿠데타로 무너지자 국립도서관 관장 직을 맡아 사서 일에 복귀했는데, 이때 그는 유전적 문제로 시력을 거의 잃고 있었다. 그의 말대로 “80만 권의 책과 어둠을 동시에 갖다 준 신의 아이러니”였다. 『바벨의 도서관』은 자기 자신에 대한 예언적인 작품이기도 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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