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중앙시평

국가이익과 민족이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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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장달중
서울대 교수·정치학

정치의 요체는 정책결정이다. 특히 중요한 외교 정책 결정은 예외 없이 국가이익을 둘러싼 갈등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어떻게 국가이익에 부합하는 정책결정을 할 것인가는 정치의 알파요 오메가다.

 아마도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를 다룬 로버트 케네디의 회고록 『13일간(Thirteen Days)』만큼 이 문제를 극적으로 기술한 것은 없을 것이다. 이 회고록에 따르면 ‘케네디 대통령을 가장 힘들게 한 것은 어린 생명들의 죽음에 대한 망령’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지 전쟁만은 막아야 한다는 정책목표를 세웠다. 그리고 동생인 로버트와 러스크 국무장관을 도브리닌 소련 대사에게 보냈다. 소련의 ‘진의’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소련이 정말 미국과 전쟁을 할 셈인지를. 도브리닌은 본국과 교신한 후 “그것은 우리가 원하는 것이 아니며, 소련의 정책목표가 오해됐다”고 말했다. 이렇게 하여 서로의 진의가 탐색됐다. 이 결과 핵전쟁의 위험은 사라졌다. 미국의 정치학 교과서에 가장 흔히 인용되는 일화다.

 북한 핵문제로 남북 대결이 첨예한 우리에게 매우 시사적일 수 있는 일화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이 아직도 생생한 지금 이와 같은 진의 파악의 중요성을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사태의 타개를 위해서는 인내심을 가지고 서로의 진의를 파악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도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내년 3월의 핵안보 정상회의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초청하겠다는 ‘진의’를 북한에 전달했다고 한다. 베를린에서였다. 비핵·개방 3000, 그랜드 바긴에 이은 세 번째 대북(對北) 제의다. 지금 우리의 관심은 과연 이런 제의가 북한의 ‘진정성’있는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는가에 쏠려 있다. 말할 필요도 없이 이런 진의와 진정성의 교환이 남북관계의 밑바탕이 된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정권 말기에 가까워지고 있는 지금까지 이렇다 할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자연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어느 나라고 외교정책의 기본은 국가이익의 추구다. 미국이나 중국, 일본, 러시아 등 6자회담 당사국들은 모두 국가이익의 관점에서 대북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 국가와 똑같이 우리도 국가이익에만 의존해 대북 정책을 추진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우리는 민족이익에 대한 국민적 정서를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물론 냉전 시기에는 모든 것이 분명했다. 안보이익이 곧 국가이익이었다. 하지만 민주화 이후 우리 사회에서는 무엇이 국가이익인가를 둘러싸고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래서 우리의 대북정책은 늘 민족 정서와 국가이익 사이의 갈등에 시달리고 있다. 민족정서가 강해지면 북한이 이상화되고 국가이익이 우세하면 북한이 악마로 변하는 양극단의 시계추 운동이 우리의 대북정책이었다.

 따라서 우리 정치에서 이 양자 간의 갈등은 비극적이다. 왜냐하면 통일이 될 때까지 풀 수 없는 영원한 딜레마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민족정서를 따르다 보면 국가이익이 손상될 수 있고, 민족정서를 무시한 채 국가이익에 집착하다 보면 남북관계가 뒤틀려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역사적인 임무는 이 양자를 어떻게 조화시켜 국민들에게 제시할 것이냐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은 이런 역사적 임무를 소홀히 했다. 위대한 정치가는 강의 깊이를 모른 채 루비콘 강을 건너지 않으면 안 된다. 일단 건너기로 했으면 위험 부담도 감수해야 한다. 가만있는다고 위험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대북정책에 위험 없는 실용적인 중간지대는 없다.

 베를린 제의는 국가이익과 민족이익의 접점을 찾기 위한 이명박 대통령의 마지막 루비콘 강 건너기인지도 모른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북핵 문제를 해결하고, 핵 정상회의의 성과를 올리기 위해서도 이 대통령은 ‘종북’과 ‘반북’을 넘어서는 국가이익 개념을 제시해야 한다. 물론 이에 대해 북한이 진정성을 가지고 나온다 하더라도 그것은 위험과 대가를 수반하는 지루한 게임의 시작일 뿐일 수 있다. 하지만 이 제의에는 우리 민족의 생존이 걸려 있다. 그 때문에 단순한 레토릭으로 끝나지 않고 실천으로 옮겨질 수 있도록 만반의 대비책을 강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장달중 서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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