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가 버려야 할 것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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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9호 02면

격렬한 논란이 벌어졌던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입지 선정이 지난 16일 최종 마무리됐다.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에는 앞으로 7년 동안 5조2000억원이 투입된다. 50개 연구단의 절반쯤이 속하게 될 기초과학연구원 본원과 중이온가속기는 대전과 그 인접 지역으로 모으고, 연구단의 일부는 경북과 광주 등에 분산시킨다는 게 큰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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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 정치적 논란의 대상이 됐던 건 안타깝다. 하지만 입지 선정이 마무리된 만큼 이젠 과학벨트에 정치와 당략이 아니라 ‘과학’을 담아야 한다.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를 통해 지금까지 홀대받던 기초과학 연구가 크게 도약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그러려면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에서 버려야 할 것들이 있다.

우선 ‘국제’를 버려야 한다. 초기에 과학벨트가 모델로 삼았던 실리콘밸리는 미국 캘리포니아의 실리콘밸리이지 ‘국제 실리콘밸리’가 아니다. 현재의 모델로 삼고 있는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소도 ‘국제 막스플랑크 연구소’가 아니다. 뛰어난 기초과학 연구는 자연스럽게 국제화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굳이 국제라는 수식어를 붙일 필요가 없다. ‘국제’를 강조하는 이유가 외국의 노벨상 수상자를 연구소 소장으로 모셔서 한다는 식의 생각 때문이라면 이보다 더 한심한 것도 없다.

둘째로 ‘비즈니스’를 버려야 한다. 과학계는 2006년 당시에 유력한 정치인이던 이명박 서울시장에게 과학과 예술이 어울리는 ‘은하도시’를 만들자고 아이디어를 냈었다. 과학과 예술의 은하도시가 언제, 어떻게 과학비즈니스벨트라는 이름으로 개명했는지 알 수 없지만, 아마 비즈니스맨 출신인 대통령의 성향과 관련 있었을 것이다.

문제는 기초과학이 비즈니스와 결합함으로써 얻는 이점보다는 잃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이다.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는 엄청난 고용 효과와 경제적 부가가치를 만들어낸다는 식으로 선전되고, 국민은 ‘한국형 원소’의 발견 같은 연구가 수백조원의 부가가치를 가져올 것이란 공상에 빠져 있다. 이렇게 사업과 이윤을 강조하다 보면 기초과학 연구가 아닌, 응용 가능성이 큰 원천 연구나 응용연구 위주로 연구단을 꾸릴 수밖에 없다. 이럴 경우 제대로 된 기초연구는 요원해진다.

마지막으로 ‘벨트’를 버려야 한다. 벨트는 지역 개발과 밀접하게 연결된 개념인데, 앞서 얘기했듯이 기초과학 연구단이 지역 개발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좋은 연구소가 생기면 지역의 자랑이 될 수는 있고, 또 과학자들이 지역 주민과 학생을 위해 대중강연 같은 걸 할 수는 있지만 연구소가 지역 개발을 낳는 것은 아니다. 1개 연구단이 사용하는 100억원의 연구비는 지역의 밥집과 술집에 뿌려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국제’와 ‘비즈니스’와 ‘벨트’를 버리고 나면 남는 것이 무엇일까. 좋은 연구단 50개가 남는다. 대학과 정부 출연연구소에서 못하는 새로운 연구를 위한 연구단 50개가 생긴다는 희망이 남는다. 새로 생기는 연구단은 책임자의 권한하에 작은 연구소를 꾸리는 것과 비슷하고, 이럴 경우 기존 대학 실험실에서는 하지 못했던 모험적이고 학제적 성격의 연구가 가능해진다. 기존의 정부 출연연구소에서 하고 있는 원천·응용 연구가 아니라 보다 급진적이고 실험적이면서 규모가 큰 기초연구가 가능하다는 의미다. 물론 능력이 있지만 사심은 없는 사람들이 이 연구단들을 책임져야 한다.

과학벨트가 모델로 삼고 있는 80개의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소는 대학이나 기업에서 할 수 없는 대형 연구, 모험적 연구, 학제 간 연구를 수행한다. 막스플랑크 연구소에서 시작한 실험적인 연구가 대학에서 수용되면 연구소는 발전적으로 해체된다. 수십 년 동안 유지돼 온 이런 다이내믹스가 세계 최고의 연구소를 만든 것이다. 막스플랑크 연구소의 모토는 “통찰이 응용에 선행해야만 한다(Insight must precede application)”는 플랑크의 경구다. 이 경구를 다시 생각해 보는 것이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에서 정치적 수사를 걷어내고 기초과학의 미래를 다시 생각해 보는 작업의 첫걸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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