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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5·18 민주주의, 더 깊은 민주화로 가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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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18일 광주광역시 운정동 5·18 민주묘지. 5·18 민주화운동 31주년 기념식이 끝날 무렵 ‘임을 위한 행진곡’이 연주됐다. 그러자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는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이 노래는 지난해엔 행사를 주관한 국가보훈처가 식순에서 제외해 5·18 관련 단체들이 기념식에 불참하기도 했었다.

 손 대표가 일어나자 주변에 앉아 있던 김황식 국무총리와 황우여 한나라당 원내대표(당 대표 권한대행), 국민참여당 유시민 대표 등 여야 지도부도 덩달아 일어났다. 주변 참석자들도 일제히 뒤따라 일어서 노래를 불렀다. 유 대표는 눈시울을 붉힌 채 주먹을 쥐고 팔을 흔들기도 했다. 하지만 김 총리는 노래는 부르지 않았다.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을 맞은 정부와 야당의 입장은 이처럼 미묘하게 차이가 있었다. ‘5·18 민주정신 계승’을 외치면서 서로 ‘민주주의’의 내용도 달랐다.

KBS교향악단 ‘5·18 판타지아’ 연주 KBS가 주최한 ‘5·18 민주화운동 기념음악회’가 18일 오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 민주묘지 특설무대에서 열렸다. KBS교향악단(지휘자 함신익)이 첫 곡으로 ‘임을 위한 행진곡’과 ‘아침이슬’을 합쳐서 편곡한 ‘5·18 판타지아’를 연주하고 있다. 음악회가 끝나자 5·18 민주유공자 유족회 회원들이 무대 위로 올라와 교향악단 단원들에게 감사인사를 전하기도 했다. [광주=프리랜서 오종찬]

 이명박(얼굴) 대통령은 김 총리가 대신 읽은 기념사를 통해 “30년 전 광주는 민주화라는 희망을 이 땅에 심었고 자유와 민주를 향한 그날의 함성은 6월 항쟁으로 이어져 한국 민주주의를 회복시켰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이제 우리는 민주영령들이 성취한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사회 통합을 굳건히 하는, 더 깊은 민주화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 높은 수준의 민주주의’와 관련해 이 대통령은 “관용과 질서 속에서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고 더 큰 공동의 가치를 찾아가는 것”이라며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견해와 이익을 일방적으로 주장하고 극한 대립과 투쟁으로 나아가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지역갈등과 세대갈등, 이념갈등이 높은 사회적 비용을 유발한다. 선진화의 발목을 잡지 말아야 하겠다”는 지적도 했다.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에 이어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의 대전 대덕 입지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 본사의 경남 진주 이전 결정을 놓고 지역 간 갈등이 첨예하게 빚어진 것을 염두에 둔 듯한 발언이었다.

 반면 민주당 등 야권은 ‘야권 통합’에 무게를 실었다. 손학규 대표는 기념식에 앞서 “희생과 헌신이라는 광주정신을 바탕으로 민주개혁진영 대통합의 길을 걸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손 대표는 가장 먼저 일어나 노래를 따라 부른 이유에 대해서도 “민주주의를 다시 일으켜 세워야겠다는 생각에서…”라고 했다.

 정동영 최고위원도 “5·18을 맞아 민주당이 방관자가 아니라 (야권 통합을) 주도하고 중심에 서서 움직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민주노동당 이정희·진보신당 조승수·국민참여당 유시민 대표는 기념식에 참석한 뒤 광주지역 시민단체가 주관한 ‘민주진보 정치세력 통합촉구대회’에 참석하기도 했다.

 4·27 재·보궐선거 때 경남 김해을에서 패배한 뒤 모처럼 공식 행사에 모습을 나타낸 참여당 유 대표는 야권 통합에 관해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유 대표는 16일 당 회의에서 “기존 (독자)노선이 최우선이지만 불가능할 경우엔 차선을 생각하는 게 합리적”이라며 다른 당과 합치는 방안을 고려하는 듯한 발언을 했었다.

 황우여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5·18 민주화운동 당시 전남대 총학생회장이었던 고 박관현 열사의 묘를 찾아 유족을 위로했다. 고인은 1982년 교도소에서 50일간 단식 투쟁을 하다가 숨졌다. 황 원내대표는 “민주영령들이 꿈꾸고 몸 바쳤던 민주, 인권, 화합과 평화를 위해 가슴을 여미고 새로운 각오를 하고 가겠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지도부는 예정에 없이 광주 대우일렉트로닉스 공장도 방문했다. 황 원내대표와 이명규 원내수석부대표, 김성식 정책위 부의장, 이두아 원내대변인 등은 근로자들을 격려하고 중소기업의 애로를 들으며 호남 민심을 챙겼다. 그러나 민주당은 이 대통령이 기념식에 참석하지 않은 점을 물고 늘어졌다. 이 대통령은 취임 첫해를 제외하고는 3년째 기념식에 불참했다. 차영 민주당 대변인은 “이 대통령이 17일 자전거 대회에는 참가했으면서 국가적인 기념식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고 비판했다.

 이에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4·19 기념식도 이 대통령은 한 차례만 참석했다. 대통령 치사를 (장관이 아닌) 김황식 총리에게 대독하게 한 데서 대통령의 뜻이 드러난 것 아니냐”며 “행사에는 갈 수도, 안 갈 수도 있는 건데 시비 걸 것을 가지고 걸었으면 좋겠다”고 반박했다. 이 대통령은 기념식이 열리는 시간에 유엔 생물다양성협약(CBD)·사막화방지협약(UNCCD)·77그룹(개발도상국 연합체) 사무총장들과 접견했다.

김승현 기자, 광주=강기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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