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주, 마지막 날 ‘무덤’ 17번 홀 세 번 만나 동률 → 역전 → 우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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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주(뒤)가 16일(한국시간)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에서 연장 끝에 우승을 확정 지은 후 자신의 오랜 캐디인 앤디 프로저와 포옹하며 기쁨을 나누고 있다. 최경주는 인터뷰에서 “앤디는 내 마누라나 형 같다. 포기해선 안 된다는 말이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폰테베드라비치 AFP=연합뉴스]


최경주(41·SK텔레콤)가 ‘골퍼들의 무덤’으로 악명 높은 소그래스 TPC 스타디움 코스의 17번 홀(파3)에서 제5의 ‘메이저 대회’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의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1982년부터 이곳에서 대회가 열린 이후 올해까지 29년 동안 이 홀에서는 숱한 기록이 쏟아졌고 대회 막판 극적인 반전 드라마가 연출됐다.

봅 트웨이(미국)는 2005년 대회 3라운드에서 볼을 네 차례나 워터해저드에 빠뜨린 끝에 12타(9온3퍼트)로 홀아웃했다.

골프장에서 집계하고 있는 이 한 홀에서 기록된 최다 티샷 횟수는 무려 27차례다. 26년 전인 1985년 안젤로 스파뇰로라는 한 아마추어 골퍼는 티샷을 27차례나 워터해저드에 빠트리는 바람에 이 한 홀에서만 55타 만에 온 그린에 성공하는 눈물겨운 기록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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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홀은 PGA 투어가 열리는 여러 골프코스 가운데 마스터스가 열리는 오거스타내셔널 골프장 12번 홀(파3·155야드)과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난도가 높은 파3 홀로 손꼽힌다. 그린이 워터해저드의 가운데 둥둥 떠 있기 때문이다. 물로 빙 둘러싸인 이 홀은 길이가 137야드밖에 되지 않는다. 대회 마지막 날에는 130야드로 세팅됐다. 그러나 그린 크기가 작고 그린 가운데가 솥뚜껑처럼 솟아 있어 공을 높은 탄도로 정확히 날리지 않으면 워터해저드로 줄행랑을 치는 홀이다. 짧아도 문제고 길어도 문제다. 최경주는 이날 하루에만 지옥 같은 이 홀에서 세 차례나 플레이했다. 그러나 이 지옥의 홀이 최경주에게는 기회의 홀이었고 역전 드라마를 완성하는 무대였다.

 3라운드 잔여 홀 플레이 때는 파를 잡아 이 홀에서 보기를 한 데이비드 톰스(미국)와 공동선두에 올랐다. 4라운드에서는 핀 3.2m에 볼을 떨어뜨려 극적인 버디로 톰스를 제치고 1타 차 단독선두에 나섰다. 톰스가 18번 홀(파4·462야드)에서 5.3m 거리의 버디 퍼트를 성공하는 바람에 연장전에 끌려 나갔지만 연장전을 18번 홀에서 치르지 않고 17번 홀로 결정된 것은 오히려 최경주에게는 행운이었다. 18번 홀은 2온이 쉽지 않아 롱게임이 좋은 톰스에게 더 유리했기 때문이다.

연장 첫 번째 홀. 다시 17번 홀 티박스에 선 최경주는 티샷이 다소 길어 홀에서 12m 떨어진 곳에 떨어졌고 톰스의 티샷은 홀 앞쪽 5.5m에 멈췄다. 위기였다. 최경주는 침착하게 첫 퍼트를 홀 90㎝에 갖다 붙이며 톰스를 압박했다. 톰스는 기회를 잡았다는 듯이 공격적인 버디 퍼트를 했는데 홀을 1.5m나 지나쳤다. 마음을 다스리지 못한 톰스의 파 퍼트는 홀 왼쪽을 돌아 나왔고, 그걸 본 최경주는 90㎝ 파 퍼트를 작렬시켰다.

최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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