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문창극 칼럼

신뢰가 무너진 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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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문창극
대기자

파출부, 세차장 일을 하며 모은 돈을 부산저축은행에 예금했다가 날린 할머니가 한 신문사에 편지를 보냈다. “겨울 세차장에서 비닐장갑, 목장갑 2겹, 그 위에 고무장갑을 끼고 일을 해도 손이 쩍쩍 갈라집니다. 그래도 불평 한마디 하지 않고, 이렇게 차곡차곡 쌓아가면 노후에는 편안해지겠지··· 내가 먼저 죽으면 불구의 남편이 요양원에 갈 돈이고 함께 있으면 같이 노후 생활을 할 돈입니다…. 나는 그저 평생 동안 모은 돈을 나라에서 은행이라 하여 그저 맡겼을 뿐입니다. 나라에 저금한 돈을 빼앗아 가는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이 할머니에게 저축은행은 나라와 같은 존재였다. 일반은행보다 이자를 연 1% 정도 더 높이 준다기에 맡긴 것이다. 5000만원을 예금하면 연 50만원을 더 받을 수 있다. 한 달이면 4만원 정도다. 그 불쌍한 돈들을 끌어모아 은행 주인은 몇천억씩 펑펑 써댔다. BIS 비율까지 속인 그들인데 일반 국민이 어떻게 이 은행의 부실을 알 수 있었을까. 이 할머니 말대로 나라를 믿고 맡긴 것이다.

 가족과 모처럼 하는 외식이라 방송에 났다는 소문난 맛집을 찾는다. 그 맛집이라는 것이 어떻게 방영됐는가? 비밀 소스가 있고, 음식 잘 만드는 욕쟁이 할머니가 있고, 손님들은 “최고예요”라며 엄지손가락을 쳐든다. 여기에 연예인까지 가세한 완벽한 사기극이었다. 방송은 신뢰를 생명으로 하는 언론기관이다. 그래서 신문에 나고 방송에 났다면 사람들은 그대로 믿는 것이다. 우리는 시장경제의 강점에 대해 말하곤 한다. 왜 시장경제가 통제경제보다 우월한가? 각 사람이 자기의 판단에 따라 자유롭게 경제활동을 하는 것이 정부가 주도하는 것보다 더 현명하고 효율적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이때의 전제는 각 사람이 자기 주변의 정보와 상황을 누구보다 더 잘 알기 때문에 이런 판단들이 모이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최선의 교환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따라서 시장이 제대로 돌아가려면 믿을 수 있는 정보가 자유롭게 유통되어야 한다. 위의 두 사건은 시장경제의 기본이 무너지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정보의 유통을 쥐고 있는 사람들이 사익을 위해 이를 왜곡시켰기 때문이다. 은행을 감독할 감독원이 뇌물을 받고 이 은행이 튼튼한 것처럼 믿게 만들고, 정보를 공정하게 다루어야 할 방송 관계자들이 돈을 받고 거짓 정보를 퍼뜨린 것이다.

 시장은 그대로 두면 약육강식이 될 수밖에 없다. 재벌들은 정부의 규제를 뚫고 나갈 인적·경제적 자원이 넘친다. 법을 제정하는 국회를 주무르고, 정부 출신의 최고 관리들을 로비스트로 고용한다. 공정질서를 위한 규제가 발동되기에 앞서 먼저 선수 칠 능력을 가지고 있다. 시장경제의 이러한 구조적 문제점 때문에, 정부와 언론의 엄중한 윤리에 기반한 철저한 감시가 요구되는 것이다. 그런데 작금의 사태는 감시자들의 부패로 최소한의 기본윤리마저 무너지고 있다. 시장의 감시 감독을 맡은 사람이 그 권한으로 사적 이익을 추구한 것이다. 부패를 대가로 감시기능을 포기한 것을 넘어 거짓까지 조작했다. 우리가 겪고 있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문제, 소득의 격차 문제도 어떤 면에서 본다면 이러한 시장 감시체계의 무능과 붕괴에서 비롯된 것이다.

 대통령이 외유로 자리를 비우자 장관들이 국무회의에 참석하지 않아 회의가 무산될 뻔했다. 우리 정부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이다. 각자가 맡은 공적 자리의 책임과 의무보다는 대통령이 어떻게 보느냐에 매달려 있다. 대통령이 자리를 비우면 국무회의조차 열리지 못하는 수준의 정부다. 이런 공직자들이 시장을 제대로 감시 감독할 수 있을까. 왜 정부의 기강이 이렇게 됐는가. 선거를 하자니 사람이 필요하고 정권을 잡고 나면 그 사람들을 써주어야 한다. 능력, 사명감, 정직 등의 자질보다는 내 사람이 우선이다. 인사 스타일도 문제다. 말 잘 듣는 사람만 골라 쓰니 자연히 눈치꾼들만 모여들게 되어 있다. 겉으로 생색나는 일만 하지, 안이 썩어 들어가는 데는 관심이 없다.

 이런 식이라면 파이를 먼저 키운 후에 나중에 나누자는 얘기를 할 수 있을까? 대기업은 자기 덩치 키우기에만 열중하고 이를 감시해야 할 정부나 언론은 자기 이익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면 소득이 4만 달러가 된들 무슨 상황이 달라지겠는가. 강자들끼리만의 세상이 되는 것이다. 겉은 번지르르하게 3만 달러, 4만 달러를 내세울지 몰라도 속병 앓는 사람처럼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나라가 되는 것이다. 시장경제와 성장은 필요한 것이지만 공정한 시장과 건강한 성장이 더 중요한 시점이 됐다. 불신의 파도는 배를 뒤집는다. 정부는 공정한 감시자로 돌아오라. 국민이 믿을 수 있는 정부를 만들라.

문창극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