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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병들 갑판 오르며 경례 … “세금으로 구입한 무기에 경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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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조지 HW 부시’ 항모전단장 노라 타이슨(Nora Tyson·54) 제독은 10일(현지시간) 건장한 남자들을 대동하고 미국 버지니아주 노퍽 해군기지에 나타났다. 항모전단은 항모에 호위선단과 지원선단을 합친 하나의 전투그룹이다. 70여 대의 항공기를 거느린 1개 항모전단은 웬만한 중소국가의 공중·해상 전력 전체와 맞먹는 화력을 지니고 있다. 여성인 그가 데리고 나온 남성들은 호위 순양함·구축함의 함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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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의에 찬 모습의 타이슨 제독은 “오사마 빈 라덴 사살 이후 세계는 당장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를 정도로 예측 불가능해졌다”며 “첨단 무기를 갖췄지만 테러를 포함한 모든 비상상황에 각별히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항모전단의 중심인 ‘조지 HW 부시’함은 미 해군이 보유한 10척의 니미츠급(만재배수량 10만t 이상) 항모 중 가장 최근에 취역(2009년)한 최신형이다. 타이슨 제독은 이 항모의 별명이 ‘어벤저(avenger·복수하는 자)’이고 모토는 ‘행동하는 자유(freedom at work)’라고 소개했다. 도발하는 적에게는 이를 되돌려주는 복수가 필요하고, 자유는 지키기 위해 행동하는 사람들만이 얻을 수 있다는 교훈을 압축한 것이다.

 항모단장과 함장을 비롯한 승조원들은 출동을 앞두고 한결같이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었다. 공보장교 브라이언 바두라 중위는 “테러와 무장한 해적·마약상과의 대결, 쓰나미와 태풍을 비롯한 자연의 공격 등 예기치 않은 일이 언제든 일어날 수 있어 출동한 항모는 언제든 경계를 늦출 수 없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군 관계자는 “미 해군 소속 네이비실이 활약한 빈 라덴 사살은 커다란 성과이긴 하지만, 솔직히 우리는 빈 라덴 추종자들에 의한 보복 테러를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긴장된 출항을 앞두고 짐을 든 해군 장교와 수병들이 속속 도착했다. 이들은 배에 오르기 전까지는 비교적 자유로워 보였지만 일단 항모 갑판에 발을 내딛는 순간 군복 입은 사람은 거수경례로, 사복 입은 사람은 부동자세로 항모에 대해 각별히 예의를 표했다. 군기가 잘 잡힌 모습이었다. 수병 브라이언 굿윈은 “국민의 세금으로 구입한 엄청난 전력의 무기체계에 경의를 표하는 것은 해군의 전통”이라고 말했다.

 수병 조슈아 캐글은 3살 된 딸 줄리를 오른 팔에 안고 나타났다. 둘째를 가진 부인 켈리는 “남편을 보내려니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또 다른 수병 짐은 어머니 미셸과 함께 왔다. 미셸은 “우리는 3대째 해군 가족”이라며 아들을 자랑스러워했다.

 항모에 올랐다. 입구에서 맞닥뜨린 안내자는 여군 수병이었다. 한국에선 익숙지 않은 상황이라 여군이 몇 명이나 탑승하느냐고 묻자 “수병은 수병일 뿐(Sailor is Sailor)”이란 답변이 돌아왔다. 광활한 운동장 같은 격납고에선 군인들이 분주하게 점검 작업을 하고 있었다. 5대의 헬기와 수십 기에 이르는 비행기의 연료통이 보였다.

항모 내부 곳곳에는 브라이언 루터 함장(대령)이 작성한 복무 지침이 붙어 있었다. 외국 항구에 도착했을 때의 주의사항이 인상적이었다. “한 명 한 명 스스로 미국을 대표하는 대사로 여기고 처신에 존엄과 겸손을 갖추라.” 항모 승조원들에게 전사 겸 외교관이 될 것을 주문하는 글이었다.

노퍽 미 해군기지(버지니아주)=김정욱 특파원

◆조지 HW 부시함=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 해군 전투기 조종사로 활약했던 조지 HW 부시(아버지 부시) 미 41대 대통령의 이름에서 따왔다. 2009년 취역한 최신예 항공모함이다. 대서양을 기본으로 발트해부터 지중해까지, 유럽과 아프리카 북부 지역 해상이 작전권이다. 해상안전 확보, 재난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 기타 긴급 상황에 대한 대처 등이 임무다. 갑판에는 최대 90대의 비행기와 헬기를 수용할 수 있다. 치과 의사만 5명이고 병동은 80개에 달한다. 바닷물에서 신선한 물을 추출해내는 기술을 통해 미 항모 중 최초로 친환경 오수처리 시스템까지 갖췄다. 약 6000명이 상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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