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록뮤지컬 '아보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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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사회주의가 이상조짐을 보이던 1981년, 한 편의 뮤지컬이 러시아에서 초연돼 러시아인의 심금을 울렸다. 알렉세이 리브니코프가 작곡한 < 유노나 이 아보스 >가 그것이었다.

`유노나 이 아보스'는 `어쩌면 희망이...' 정도로 번역되는 러시아어. 체제 비판적 사회성을 담고 있다는 이유로 한때 공연이 금지된 이 작품은 지금은 러시아를 대표하는 `국민 뮤지컬'로 확고히 자리잡았다. 입장권 암표가 10배 넘는 가격으로 거래될 정도다.

이 작품이 왜 그토록 러시아인의 마음을 사로잡을까. 러시아 국경을 너머 세계적 뮤지컬로 각광받을 수 있는 이유는 또 뭘가. 비결을 알기 위해서는 작품내용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원작의 시대배경은 차르(황제) 체제가 종말로 치달으면서 민중의 삶이 도탄지경을 헤매던 1800년대로, 작품 자체가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차르 시종장이던 레자노프는 절망의 나락에 빠진 민중에게 구원과 희망의 땅을 찾아주기 위해 차르의 허가를 받아 유논과 아보스라는 배를 타고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떠난다.

당시의 샌프란시스코는 가톨릭 국가인 스페인의 영토였다. 현지에 도착한 레자노프는 18세의 청순한 콘치타와 뜨거운 사랑에 빠지나 자신이 이곳에 오게 된 사명을 깨닫고 깊은 고뇌에 빠진다. 사명이란 다름아닌 민중구원이다.

민중을 구원할 것인가, 아니면 사랑을 택할 것인가. 고뇌의 시간이 통절한 아픔으로 지난 뒤 레자노프는 러시아에 남겨둔 민중에게 돌아가기로 하나 안타깝게도 귀국도중 죽음을 맞는다.

콘치타가 그의 죽음을 알기까지는 36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러야 했다. 물론 그 이전에 입소문으로 그 사실을 듣긴 했으나 콘치타는 이를 믿지 않은채 장구한 시간을 침묵의 기다림으로 보냈다. 인류구원과 사랑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이 작품은 1970년대 이후의 사회주의 침체와 민중 절망과 겹쳐 러시아에서 당시 큰 관심을 끌었다. 변화와 새로움에 대한 열망이 그만큼 컸다는 얘기가 된다.

이런 메시지는 러시아는 물론 미국, 유럽 등 곳곳에서 보편성을 얻어 작품을 세계적 명작이 되게 했다. 국내에서는 1994년 < 유논과 아보스 >라는 제목으로 초연된 데 이어 2월 12일부터 23일까지 서울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다시 선보인다. 이 작품은 IMF사태 등 경제난과 사회정치적 혼돈으로 시달리고 있는 국내상황과도 맞물려 시사하는 바가 있다. 나아가 갖가지 문제로 허덕이는 지구촌 현실과 겹치기도 한다.

제작자 이혜경 국민대 교수와 연출자 양혁철 씨는 작품의 시대성을 획득하기 위해 원작을 번안해 무대에 올린다. 시기는 21세기 미래의 어느 때로 설정되며 레자노프가 찾아가는 새 유토피아는 샌프란시스코가 아닌 우주의 어느 별이다. 부의 편재와 인구과다로 지구인 중 3분의2가 유리방황하게 되는데, 이들을 구원키 위해 레자노프가 우주항해를 결심한다는 내용으로 구성된다.

레자노프는 선장으로서 미지의 별에 도착하지만 황폐하기는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알고 지구로 귀환하던중 부하들과 갈등한다. 레자노프는 진정한 자신의 구원이 콘치타의 순수한 사랑에 있다고 깨닫지만, 부하들은 새 별을 찾을 때까지 항해를 계속하자고 주장하는 것이다. 결국 레자노프는 부하의 뜻에 따라 지구를 스쳐 다시 우주의 바다로 항해하고, 콘치타는 밤마다 창가에 불을 밝힌채 레자노프가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이 작품은 절망에서 희망을 찾으려는 인간의 치열한 노력이 그대로 드러난다. 이와 함께 광막한 우주가 아닌 따뜻한 마음에 구원의 불빛이 있음도 암시한다. 더더욱 감동을 안겨주는 것은 이같은 구원과 사랑이 바로 기다림에 있다는 사실을 전하며 그 사랑에서 미래와 구원을 확신하고 있다는 점이다.

< 아보스 >는 `알렐루야' 등 모두 20곡이 넘는 주옥같은 멜로디와 화음으로 무대를 아름답고 장대하게 꾸민다. 러시아 정통오페라에 당시의 저항정신을 대변하는 미국적 록음악을 접목시키되 이를 번안작품에 맞게 재구성함으로써 러시아적이자 미국적이며 한국적인 느낌을 동시에 안겨주게 된다. 문의: 02-910-4387. [서울=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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