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지나친 '미증시 따라가기'

중앙일보

입력

최근 밤잠을 설치는 주식 투자자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우리 시간으로 새벽에 열리는 뉴욕증시의 동향을 체크하기 위해서다.

실제로 외신 야근을 하다보면 "지금 다우지수는 얼마죠, 나스닥은요□" 라고 묻는 전화가 새벽 내내 끊이질 않는다.

세계경제의 글로벌화에 맞춰 투자자들이 시야를 넓혀가는 것은 좋은 일이다.
현실적으로 미국이 세계경제를 좌지우지하고 국내 투자자들이 미국식 투자패턴을 벤치마킹하는 상황에서 미 증시의 움직임을 외면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더구나 국내증시에서 차지하는 외국인 투자 비중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그러나 요즘 한국 증시는 '미국 증시 동조화' 정도가 아니라 '미국 증시 예속화' 라고 할 정도의 이상현상이 번지고 있는 것 같다.

그 단적인 예가 19일 한국 코스닥 시장의 움직임이었다.
이날 코스닥지수는 전날 나스닥 지수의 상승에 힘입어 오름세로 출발했다.
그런데 갑자기 나스닥 선물이 하락세라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무려 9%나 폭락했다.
그러나 정작 몇시간후 개장된 뉴욕증시에서 나스닥은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지수 흐름을 살펴봐도 이같은 양상은 그대로 드러난다.
연초부터 19일까지 나스닥이 떨어진 다음날에는 반드시 한국증시의 종합지수.코스닥 지수가 빠졌다.

일각에서는 이것이 세계적으로 공통된 현상이니까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그렇지도 않다.

한국과 함께 금융위기를 겪었던 태국.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의 경우 미국 증시의 영향을 받기는 했지만 그 진폭은 그리 크지 않았다.

나스닥이 연초부터 13일까지 9% 하락하는 동안 코스닥은 20%가 빠진 반면 태국은 8%, 인도네시아는 1.2% 떨어졌고, 말레이시아는 오히려 6.8% 상승했다.

미국 경제의 입김이 직접적으로 미치는 멕시코도 한국 증시만큼 민감하게 반응하지는 않았다.
글로벌화를 '미국 증시 따라가기' 정도로 여기는 투자자들이 있다면 그 최면에서 빨리 깨어날 필요가 있다.

김현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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