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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작용 없고 효과 높은 세포 대량 생산, 난치병 정복 길 열린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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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호 10면

67세 여성인 정희순씨는 오랫동안 파킨슨병으로 고생해 왔다. 초기엔 약을 복용하며 그럭저럭 생활해 왔지만, 최근엔 약효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약 복용 때 팔다리가 꼬이는 이상(異常)운동장애 등 부작용도 생겼다. 뇌심부 자극수술을 하려고 했지만 이 또한 증상을 조금 완화할 뿐 병의 근본적인 진행을 막지는 못한다. 2021년이라면 정희순씨는 어떤 치료를 받을까. 아마 줄기세포에서 만든 도파민 신경세포의 이식을 바탕으로 다른 치료법을 병행해 지금보다 훨씬 더 나은 상태일지 모른다.

중앙SUNDAY 창간 4주년 기획 10년 후 세상 <6> 줄기세포 치료

파킨슨병에 대한 세포 이식치료는 더 이상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파킨슨병은 도파민이란 세포가 소실되면서 생기는 병이다. 그간 낙태아의 신경세포를 이용해 전 세계에서 400여 건의 임상이 시도된 바 있다. 여러 논란이 있지만, 10년 이상 병이 진행되지 않고 증상이 회복된 사례도 있다. 제대로 된 줄기세포로부터 순수 도파민 세포를 분화시키고, 이식 수술 및 검사 방법만 잘 개발한다면 얼마든지 세포치료가 가능함을 암시해 준다. 현재의 줄기세포 연구 속도로 보면 몇 년 안에 이식 가능한 순수 도파민 세포가 만들어질 것이다. 그러면 임상시험을 거쳐 5~10년이 지나면 파킨슨병 치료제가 탄생할 수 있다.

줄기세포 임상시험 연구 활발
상업적 목적의 줄기세포 치료 임상시험 건수는 전 세계에서 230건을 넘는다. 우리나라에선 약 20건이다. 주로 성체줄기세포를 이용한 것이지만, 배아줄기세포 치료 임상도 있다. 미국 제론사가 2009년 1월 미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받아 지난해 10월 처음 척수손상 환자에게 배아줄기세포에서 얻은 올리고덴드로사이트전구체(희소돌기아교세포전구체)를 이식했다. 이 밖에도 미국에서 배아줄기세포 치료제 2건에 대해 임상시험 허가를 내준 상태다. 한국에서도 지난달 27일 차바이오앤디오스텍(차병원 그룹)이 배아줄기세포로 만든 치료제로 망막질환 환자의 시력을 살리는 임상시험을 승인받았다. 시력을 앗아가는 희귀질환을 정복할 길이 열렸다는 의미다. 이번 승인은 인간 배아줄기세포로 만든 줄기세포 치료제를 임상시험하는 국가로선 미국에 이어 두 번째다.

손상된 각막을 줄기세포를 이용해 치료하려는 노력도 이뤄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각막 이상으로 시력을 잃은 환자의 비율이 2000명 중 한 명꼴이다. 환자 수는 많은데 기증되는 각막은 굉장히 적어 각막이식을 위해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산술적으로 100년에 이를 정도다. 최근 줄기세포를 각막세포로 분화시키는 연구가 활발히 진행 중이다. 동물 모델에서는 일부 효과가 확인됐다고 한다.

올해에는 세계 최초로 우리나라에서 성체줄기세포를 이용한 세포치료제 허가가 날 가능성이 크다. 현재 임상시험 중이거나 임상 후 허가를 기다리는 세포치료제는 1세대 세포치료제라 불리는 성체줄기세포를 이용한 것이다. 단순히 줄기세포를 키워서 병든 부위에 이식해 주는 정도다. 주로 성체줄기세포의 분비 물질에 의한 간접 효과에 의존한다. 따라서 효과가 있다 해도 그리 크지 못할 것이다.

좀 더 강력한 효과를 발휘할 제2세대 세포치료제는 배아줄기세포를 이용하는 것이다. 앞으로 5~10년 뒤 가시화될 것이다. 물론 좀 더 우수한 세포를 대량 생산하고, 단순하면서도 고순도의 분화 기술을 개발하고, 이식 후 세포생존율이 높아야 하는 등 많은 연구가 이뤄져야 한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5년가량 더 필요하다. 그 후 임상시험을 거쳐 보편적이고 우수한 줄기세포 치료제가 나오려면 10년쯤 기다려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신경계·심혈관계는 임상시험 단계
몇몇 질병의 경우 줄기세포를 이용한 치료 모습은 어떻게 될까. 세포응용연구사업단은 6개의 임상 과제에 대해 연 400명씩 수년간 임상 연구를 해오고 있다.

연세대 박국인 교수는 “목뼈를 다치면서 척수손상으로 팔다리가 완전히 마비된 환자에게 신경 줄기세포를 이식하고 약 1년 이상 관찰해 보니 줄기세포를 이식받지 않은 환자에 비해 30% 정도 증세가 나아졌고 특별한 부작용도 없었다”고 말했다. 이런 효과는 만성 환자보다는 발병 초기에 더 큰 효과를 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 교수는 “향후 5년쯤 지나면 신경 영양인자 등을 분비하는 줄기세포, 이식된 줄기세포의 생존과 신경의 재생을 촉진하는 고분자화합물, 나노 물질 등과 융합을 통한 줄기세포 치료제의 임상시험이 본격적으로 진행될 것”이라며 “일부 급성 퇴행성 신경계 분야에서는 손상된 신경기능의 20~30% 이상을 재생하는 능력을 보일 세포치료법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대략 10년 후엔 급성 퇴행성 신경계 질환뿐만 아니라 만성 퇴행성 신경계 질환에 줄기세포를 이용한 본격적인 임상시험이 가시화되고, 세포치료법이 일부 확립될 것이다. 특히 척수손상, 뇌졸중 같은 일부 신경계 질환에서 세포치료제가 효능을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걷지 못하는 환자가 벌떡 일어나 정상인처럼 걷는 기적이 일어나기는 어렵지만, 장애등급을 한두 단계 낮출 수 있을 정도로 세포치료 기술은 향상될 것이다.

서울대 김효수·강현재 교수팀은 심혈관 질환에 대한 줄기세포 치료를 주도하고 있다. 김 교수는 “여러 가지 줄기세포를 이용해 임상연구가 수행되고 있는데 급성 심근경색증 환자의 경우 심근수축력이 2~5% 정도 좋아졌다”며 “이 외에도 환자 생존율을 높이고, 심근경색증의 재발을 막아줄 가능성을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는 급성 심근경색증 이외에 만성 심근경색증, 비허혈성 심부전, 하지혈관 질환 등으로 치료 적용범위가 확장될 것으로 보인다. 치료기법과 줄기세포의 종류도 다양화하고, 사이토카인·유전자 등 새로운 치료기법을 병합하는 복합 세포치료법이 주류를 이루는 쪽으로 진화할 전망이다. 이렇게 되면 현재 치료법보다 심근 수축력의 개선 효과가 두 배 이상 향상될 것이다. 10년 후쯤이면 대규모 임상 연구를 통해 줄기세포치료가 표준적인 임상치료의 일부로 편입될 것이다.

생체재료 융합, 3차원적 조직 재생도
줄기세포치료는 다른 첨단 치료법과 병행되지 못할 경우 한계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다양한 방법이 시도되고 있다. 생체 재료와 융합해 3차원적 조직 재생을 꾀하거나, 여러 가지 줄기세포 활성 물질을 병행하는 요법이 더해지면 시너지(융합) 효과를 낼 수 있다. 인체 내 줄기세포를 활성화해 병든 부위로 이동하게 하는 연구가 큰 주목을 받게 되고, 일부는 실용화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세포치료제를 체내에 이식하지 않고도 치료효과를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병든 부위에서 생긴 특정 신호가 줄기세포를 활성화시켜 병든 부위로 이동시키는 현상을 규명하게 된다. 그러면 이를 매개하는 물질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많이 넣어줌으로써 줄기세포가 병든 부위로 더 많이 이동해 상처가 쉽게 아물고 조직 기능이 빨리 회복되게 할 수 있다.

10년보다 더 먼 미래의 예측은 쉽지 않지만, 줄기세포를 이용한 보편적 치료법은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결국 자리를 잡게 될 것이다. 이것은 기존의 치료법들과 보완 내지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암과 파킨슨병 등 난치병 치료에 큰 공헌을 하게 될 것이다. 또 신약개발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단, 미국의 미래학자 겸 발명가 레이 커즈와일의 말처럼 ‘21세기의 절반이 가기 전에 인류가 질병의 고통에서 벗어나고 원하는 만큼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시대’는 쉽게 오지 않을 것으로 본다. 이론적으로만 보자면 그의 주장은 그럴듯한 가상현실이다. 하지만 인간의 몸은 하나의 소우주다. 새로운 치료법을 발견했다 해서 머잖은 미래에 인간이 죽음에서 해방될 것처럼 기대하기는 어려운 게 진짜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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