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여자로 분장하면 웃기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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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이휘재 남희석의 멋진 만남〉(1월 8일)에서 이휘재는 또다시 '그녀'의 선택을 받지 못해서 벌칙을 받아야 했다. 우스꽝스러운 분장과 연기를 하게 하는 이 벌칙으로 아주 자주 등장하는 것은 여자 분장이다. 이번에 이휘재는 테크노의 여왕으로 분장하고 나왔다.

남자가 여자로 분장하는 것은 웃음을 만들어내기 위해 흔히 사용하는 방법이다. 특히 아마추어 코미디에서는 단골로 등장한다. 예를 들어 학교 행사에서의 장기 자랑에서 '미스 00학과'로 분장한 남자들이 미인대회 퍼레이드를 펼치는 것은 드물지 않은 일이다. 대학교를 찾아가서 학생들의 노래, 춤, 개그 등을 보고 그 예선을 통과한 학생들이 학교 홍보 뮤직 비디오를 만들기도 하는, 강호동이 진행하던 프로그램에도 여자로 분장한 남자들은 거의 매회 등장했다. 그런 경우에는 항상 가슴에 커다란 공 같은 것을 집어넣고 엉덩이를 흔들면서 걷거나 성적인 유혹의 메시지를 내보내는 연기를 한다.

남자가 여자로 분장하는 것은 진부하기까지 한 웃음의 공식이다. 그렇다면 여자가 남자로 분장하는 것은 어떤가? 여자가 남자 흉내를 내는 것은 별로 우습지 않다. 코미디에서 여자가 남자로 분장하고 나오는 경우도 별로 없거니와 있다고 해도 남자의 몸매와 옷차림을 흉내냈다는 점 때문에 웃음을 끌어내지는 못 한다. 남자가 진한 화장을 하고 이른바 "헤픈" 여자의 교태로운 웃음과 몸짓을 흉내낸다는 것 만으로 몇 초 안에 웃길 수 있는 것과는 다르다.

남자가 여자로 변하는 것은 일종의 "망가짐"의 코미디다. 몸을 던져 "망가진" 모습을 보여주는 것, 스스로를 우스꽝스럽고 바보스럽게 만드는 것과 같은 종류라 할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남성·남성다움은 여성·여성다움보다 더 높게 평가되기 때문에 남자가 여자로 변하는 것은 낮은 지위로 떨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여자 분장을 하는 것은 바보 연기를 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발휘한다.

그렇다면 여자가 남자 흉내를 내는 것이 우습지 않은 이유는, 여자가 남자로 변하는 것은 사회적 지위의 상승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여자들의 사회적 진출이 늘어나면서 여자들은 어느 정도 남성적 특징이라고 여겨지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게 되었다. 여자들의 옷도 남자 옷과 비슷해져 왔다. 여성 정장이라고 하는 것은 남자 양복을 변형시킨 것이다. 남성적 이미지가 '능력'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능력 있는 여성으로 보이고 싶은 여자들은 이런 옷차림을 하라고 권유받는다. 이렇듯 현실에서 여자들은 어느 정도 남성성을 발휘할 것이 기대되고 있으므로 여자가 남장을 하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될 수 없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남성다움, 여성다움은 사회적 문화적으로 부여된 의미를 말하는 것이지, 남녀의 신체적 특성에 따라 타고난 특성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그리고 혹시 있을지 모를 오해를 피하기 위해 또 하나 덧붙이고 싶은 것은, 남성다움이 사회적으로 더 높은 평가를 받는다는 것은 남성의 우월성의 증거가 아니라 여성에 대한 사회적 차별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남자를 여자로 분장시키는 것은 많은 경우 여자들에게는 별로 우습지 않다. 여자 몸을 과장해서 희화화시키거나 남자들이 원하면서 동시에 경멸하는 "헤픈 여자"를 묘사할 때는 더욱 그렇다. 〈멋진 만남〉의 벌칙 중에 가장 재미있고 인상적인 것으로 기억되는 것은 변기, 복사기다. 앞에서 이야기한 복잡한 사회적 배경을 다 무시하고 단순히 재미만을 위해서라도, '여자 만들기'라는 진부한 공식은 폐기하는 게 더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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