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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 (120-최종회)

중앙일보

입력

일러스트 ⓒ 김영진, heakwan@ymail.com

에필로그: 말굽이 하는 말

어둡다. 습기 찬 땅 속이다. 지상에서 얼마나 깊은 곳인가. 깊지 않다. 깊지 않다고 생각한다. 귀 기울이면 아득하게 빗방울이 떨어져 바위에 부딪치는 소리도 들을 수 있다. 쌀알을 씻는 듯한 저 소리는 무엇인가. 옳거니, 바람소리다. 보나마나 운악산 정수리에서 이쪽 관음봉 안골로 휩쓸려 내리꽂히는 바람소리일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듣지 못했던 바람소리 빗소리가 아닌가. 어떤 때는 벌떼들이 윙윙거리는 듯한 소음이 들릴 때도 있다. 어떤 공사를 하기 위해 포클레인 같은 것이 지상을 깎아대고 있는지 모른다. 내가 박혀 있는 이곳이 점차 지표면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뜻이다.

이 음습한 땅 속에 박혀 보낸 세월이 얼마나 될까.
삼 년? 오 년? 아니 십 년이 넘었을 수도 있다. 내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것은 엄청난 굉음과 섬광이다. 아마 어떤 폭발물이 터졌던 모양이다. 굉음과 섬광 다음에 나의 주인 위로 포악하게 쏟아지는 돌덩어리들이 떠오른다. 암벽동굴이 통째로 무너져버렸던 게 확실하다. 나의 주인은 무너져 내린 돌덩어리들의 무덤 속에서도 거의 한 시간 넘게 살아 있었던 것 같다. 끈질긴 생명력이 아닐 수 없다. “너와 함께…… 묻혀…… 다행이야!” 죽어가면서 하던 내 주인의 말. “천 년 넘게…… 내 뼈…… 삭아 없어질 때까지…… 나와 함께…… 있어줘!” 주인이 덧붙인 마지막 말이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다.

나는 고개를 젓는다. 천 년 넘게 함께 있자는 주인의 말을 들어주지 못한 것은 내 탓이 아니다. 시간에 따라 살이 썩고 뼈가 해체되면서 자연스럽게 주인으로부터 내가 분리되어 나왔으므로, 정확히 말하자면 주인이 나를 버린 것이지 내가 주인을 버린 것이 아니다. 나는 지금 살이 다 썩어 없어진 주인의 가느다란 팔뼈에 등을 기대고 있다. 팔뼈는 저 혼자 있다. 두개골과 어깨뼈와 등뼈 등 남은 뼈들은 어디로 다 흩어져 갔을까. 강력한 폭발에 따라 암벽동굴이 무너져 내리는 순간 우박처럼 쏟아지던 돌덩어리들에게 맞아 주인의 팔이 애초부터 몸통에서 분리됐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주인에게 버림받았다곤 생각하지 않는다. 나의 주인에게도 불가항력이었을 테니까. 나는 그렇다, 내가 원해서가 아니라 정말 자연스럽게, 주인의 다른 뼈들로부터 분리되어 나온 셈이다.

나는 말굽이다.
그러나 말굽이라고 불릴 뿐 나는 말굽이 아니다. 아니고말고.

나는 하나의 생명이다. 나의 육체는 생로병사의 순환에 의지하지 않는다. 시간의 잔인한 세례와 무관하다. 다만 오욕칠정만은 없다. 나의 주인은 마지막까지 우주 바깥, 아주 먼 곳에서 유래한 ‘탄생 이전의 슬픔’이라는 감정만은 남겨 지니고 있었지만, 나에겐 탄생 이전과 이후가 다르지 않기 때문에, 그런 감정조차 전무하다. 나는 지고지순할 뿐 아니라 완전하다. 이를테면 나는 말굽 모양을 한 일종의 ‘사이코패스’다. 그러니 당연히 어떤 주인보다 오래 살 수 있다. 천 년이 지나도 변함없이 이대로 살아남을 것이다. 나를 도구로 삼았던 역사가 모든 걸 증명해주고 있지 않은가. ‘도구’라니, 틀린 말이다. 굳이 말해야 한다면, 내가 오히려 나의 주인을 도구로 삼았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처럼 거의 지고지순해질 뻔했지만 마지막 단계를 넘어서지 못한 불쌍한 나의 주인. 오래 살기 위해선 오욕칠정을 완전무결하게, 뿌리째 거세해야 한다는 것을 나의 주인이 끝내 깨닫지 못한 게 너무 아쉽다. 영원히 살려면 감정을 완전히, 티끌 하나 없이 거세하는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야말로 참된 윤리성의 최종적인 표상이다. 만약 나의 주인이 먼 곳에서 온, ‘탄생 이전의 슬픔’까지도 버렸다면 지금도 나처럼 정정히 살아 있었을 것이다. 스스로 꿈꾼다고 감히 말하면서, 사람들은 왜 참된 불멸에 완전하게 다가서서, 그것과 한 몸이 되려고 하지 않을까.

빗물이 스며들어 내 몸을 적시고 있다.
피에 굶주린 나의 깊은 갈증이 이로써 풀리는 건 아니지만, 빗물은 어쨌든 반갑다. 생생한 빗물이다. 생생한 빗물이 이리 쉽게 내게까지 스며드는 것은 내가 곧 지상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의 반증이기도 하다. 날씨가 좋아 포클레인이 작업할 수만 있다면, 내일이라도 내 몸이 지표면에 도달할는지 모른다. 지상에 도달하면 누군가, 새로운 나의 주인, 어쩌면 바로 당신이 부르는 간절한 목소리를 금방 들을 수 있을 터이다. 그러니 조금만 기다려달라. 나도 당신처럼, 너무도 간절히, 어서 당신에게 달려가서, 당신과 완전하게 한 몸뚱어리가 되고 싶다. 진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아니 진화라고 불러도 상관없다. 이왕이면 ‘단풍잎’을 얼굴에 붙이고 살았던 나의 전 주인보다 좀 더 진보한, 좀 더 진화한 새 주인을 만나고 싶다. 세상의 바깥보다 더 먼 곳에서 온, ‘탄생 이전의 슬픔’까지도 완전히 거세된 불멸의 주인을.

그립고 그리운, 아, 바로 당신!

<끝>

* 지금까지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 연재와 함께해주신 독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연재소설은 6월초 ‘문예중앙’에서 단행본으로 발간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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