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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생태의 본 모습,새의 눈으로 샅샅이 훑어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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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4호 05면

광대한 설원(雪原)을 가젤(초지나 사바나 등에서 무리 지어 사는 영양류의 일종) 떼가 뜀박질한다. 그 뒤를 늑대가 맹렬하게 추격한다. 늑대를 잡기 위해 인간 사냥꾼도 분주하게 움직인다. 동아시아의 젖줄 아무르 일대에서 벌어지는 풍경이다.KBS 다큐멘터리 ‘동아시아 생명대탐사 아무르’(1부는 지난해 12월 19일, 2~5부는 4월 6·7·13·14일 밤 10시 방영)가 5부작의 여정을 끝냈다. 수목 드라마와 같은 시간대에 편성돼 고전이 예상됐지만 시청률은 뜻밖이다. 3부(7일) ‘타이가의 혼’이 자체 최고(12.0%, AGB닐슨미디어리서치, 전국 기준)를 기록했고, 2부(6일) ‘초원의 오아시스’와 함께 동시간대 2위를 달렸다. 덕분에 3사 드라마 시청률이 주춤했을 정도다.

KBS 다큐멘터리 5부작 ‘아무르’

‘아무르’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지상파 3사가 잇따라 방송 중인 ‘오지 자연 다큐’ 중 하나다. MBC ‘아마존의 눈물’이 20%대 높은 시청률로 화제가 된 뒤 ‘아프리카의 눈물’(MBC), ‘최후의 툰드라’(SBS), ‘푸른 지구의 마지막 유산 콩고’(KBS) 등이 뒤를 이었다.

자연 다큐이긴 하나 이들이 담는 풍경은 ‘동물의 왕국’류의 야생과는 다소 다르다. 물고 뜯고 먹고 새끼를 낳는 자연의 풍경이야 매한가지이지만, 그들과 함께 사는 ‘인간’을 비춘다. ‘아무르’에선 수백, 수천㎞를 헤엄쳐 강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 떼와 이를 기다렸다 잡아먹는 곰 무리, 그 틈에서 연어를 포획하는 인간을 볼 수 있다. 생태 질서를 교란시키지 않기 위해 어부는 어린 고기를 강으로 돌려보낸다. 사슴과 멧돼지를 잡아 생활하는 오로촌 사냥꾼은 희생물에 대한 제의를 잊지 않는다. 자연에 대한 예의이자 생명의 순환 고리 안에 자신이 있다는 생사관이다.

이런 자연관을 심화시키는 게 조감도(鳥瞰圖·bird’s eye view)로 포착한 땅과 바다다. 카메라는 곧잘 하늘에서 내려다 본 밀림과 굽이치는 개천, 광활한 초원을 비춘다. 말을 탄 인간이 달리고, 노루 떼가 이동하며, 물범이 유빙 위를 지난다. ‘최대한 가까이’에서 ‘최대한 멀리, 높이’로 바뀐 카메라의 시선은 대자연의 경이로운 숨바꼭질을 한눈에 비춰준다.

이러한 항공 촬영은 BBC의 명작 다큐 ‘살아있는 지구’(원제 ‘Planet Earth’)에서 각광받은 기법이다. 관조하듯 ‘행성 지구’를 조망한 이들의 접근은 이후 자연 다큐의 틀을 바꿔놓았다. 받침이 된 게 기술장비의 발달이다. 그 전까진 헬기에서 촬영하더라도 화면이 심하게 흔들려 보기에 불편했다. 그런데 ‘짐볼’(혹은 ‘김볼’)이라는 보조장비는 헬기에서 무진동 촬영을 가능케 했다. MBC ‘눈물’ 시리즈의 수려한 영상도 ‘시네플렉스’라는 장비의 도움을 받았다.

새의 눈으로 바라본 자연 다큐는 무엇이 달라졌을까. 일단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니 시야가 시원하다. 헬기와 함께 움직이는 화면은 시청자에게 역동성을 전해준다. 실무적으로도 이점이 있다. 헬기에서 늑대가 가젤을 모는 장면을 촬영하다가 무전기로 지상 촬영팀에 일러주면 길목을 지켰다가 근접 촬영하는 식이다(다만 헬기 소음으로 생태계에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 아프리카 등 주요 촬영지에선 하강 고도에 관한 규정도 생겼다).

그 덕분에 우리는 정지된 자연이 아니라 움직이는 자연을 본다. 계절이 바뀌면 새들은 광활한 하늘을 날아 이동하고, 순록 떼는 푸른 초원을 찾아 남하한다. 유빙이 부서지는 난관 속에 북극곰은 갈 곳을 잃고 망망대해를 떠돈다. 원시 인류도 대자연의 변화에 따라 대륙과 대양을 이동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인간은 자연의 흐름까지 바꾸는 존재가 됐다. 기후의 변화, 생태 질서의 교란이 초래하는 동물들의 이동이 예사롭지 않은 이유다. 그 모습을 인간이 ‘새의 눈’으로 바라본다. 동물의 무리 안에 있었지만 이제는 떨어져 나온, 그러나 결코 완전히 떨어져서 살 수 없는.

‘왜 아무르인가’에 대해 김서호 CP(책임 프로듀서)는 “한반도 생태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는 지역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몽골에서 발원해 러시아와 중국의 국경을 가르고 오호츠크해로 흘러가는 아무르 강은 동북아 생태의 보고(寶庫)로 꼽힌다. 한반도에서 멸종한 시베리아(아무르) 호랑이가 자연 서식하는 곳이기도 하다. ‘새의 눈’으로 조감한 한반도 생태의 원형을 보면서 다시 생각한다. 아무르와 한반도를, 나아가 지구를 동시에 조감하는 더 큰 눈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마도 그것은 기술 장비의 발달로는 해결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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