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380g 기적’ … 9개월 눈 맞춘 만삭 간호사 있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2면

15일 삼성서울병원 신생아집중치료실에서 함은하 간호사가 은식이를 돌보고 있다. 다음 달 출산 예정인 함 간호사는 9개월간 엄마 마음으로 돌봤다. [김태성 기자]


“잘 잤니? 아이 예뻐~.”

15일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신생아집중치료실. 함은하(31·여) 간호사가 은식이를 들어올렸다. 제법 체중이 느껴진다. ‘380g의 기적’이 이런 걸까. 은식이는 9개월 만에 함 간호사의 지극한 돌봄을 받고 3.6㎏의 튼튼이가 됐다. <중앙일보 4월 15일자 20면>

은식이도 함 간호사의 체온을 느낀 듯 칭얼대다 눈을 맞춘다. 금세 편안한 표정으로 바뀐다. 은식이를 돌본 간호사는 40여 명. 함 간호사의 애정이 남다르다. 은식이를 안고 있는 그의 배가 불룩하다. 9개월 만삭이다. 은식이를 처음 만날 무렵 임신을 했다.

처음에는 하루 네 번만 은식이를 만질 수 있었다. 6시간마다 우유를 먹일 때였다. 보통 아기들과 달리 손으로만 받칠 수는 없었다. 일부에만 힘이 가해지면 피부가 손상되고, 감염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함 간호사는 소독포 전체로 아기를 들어올리고 우유는 튜브를 이용해 먹였다. 장 점막이 마르지 않도록 적셔 주는 정도였다.

 혈관을 찾는 건 미로 찾기와 같았다. 열흘 정도까지는 배꼽이 마르지 않아 배꼽 주변의 혈관을 통해 피를 뽑거나 수액을 넣었다. 그 이후에는 팔이나 다리에서 혈관을 찾아야 했다. 9년 경력의 함 간호사에게도 어려운 일이었다.

 기구를 꽂을 수 없다 보니 간호사의 오감(五感)은 아기의 ‘생명 천사’였다. 수시로 은식이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살폈다. 머리에 숨구멍(천문)이 솟아있거나 쑥 들어가 있지는 않은지, 청진기로 호흡을 들어보고 장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는지도 들어봤다. 배가 딱딱하지는 않은지 눌러도 봤다.

 함 간호사는 “오감은 직관으로 연결되는데 아기가 잘 자고 있어도 숙련된 간호사는 정말 편안해서 자는 것인지 아닌지를 알아챈다”며 “피부색이 조금만 달라져도 몸에 문제가 있는지를 느끼는 게 간호사의 오감”이라고 말했다.

 은식이의 폐가 발달하지 못해 호흡을 잘하고 있는지도 살펴야 했다. 생후 사흘째 동맥관을 닫는 심장수술을 받아서다. 함 간호사는 “치료실에서는 간호사가 엄마다. 3교대 간호사 모두 24시간 눈을 떼지 않았다”고 했다. 함 간호사는 배 속의 아기보다 부서질 듯 작은 은식이에게 늘 신경이 쓰였다. 출근하면 은식이 차트부터 살폈다. 상태가 안 좋아지면 더 정성을 쏟았다. 배 속에 있는 아기에게 “형이 힘들어하니까 응원 많이 해줘”라며 속삭이기도 했다.

 함 간호사에게 고비도 있었다. 임신 5개월 무렵 다운증후군이 의심돼 정밀검사를 받았다.

 “검사 결과를 기다리면서 엄마들의 심정을 절절하게 느꼈어요. 이게 엄마 마음, 부모 마음인가 봐요.”

글=박유미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초미숙아=출생 체중이 1㎏ 미만인 신생아를 말한다. 미숙아는 2.5㎏ 미만 또는 임신 37주 미만의 조산아를 말한다. 그동안 가장 체중이 작았던 초미숙아는 2004년 삼성서울병원에서 26주 4일 만에 태어난 434g짜리 여아였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